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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창] 시월 상달에_정승열 법무사(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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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용 기자 | 2022.10.11 09:56 입력

정승열.jpg


※ 외부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일 년 중 춥지도 덥지도 않은 5월과 10월은 기념일과 행사가 참 많다. 10월은 개천절과 한글날이 주말과 겹쳐서 대체휴일로 연거푸 사흘씩 쉬게 되었다. 직장인들이야 쉬는 날이 늘어도 고정된 월급을 받으니 좋겠지만, 영세한 개인사업자들은 공휴일 근무자에게 1.5배의 일당을 주어야 하니 죽을 맛이다. 그런데, 다른 국경일이나 기념일도 마찬가지이지만, 고작 30분 남짓 기념행사를 하는 겉치레를 버리고 개천절과 한글날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단군 임금 기록은 사서가 아니라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 근거한다. 현존 최고 사서인 삼국사기 서문에서 김부식은 고기(古記)· 삼한고기· 신라고사· 구삼국사와 김대문의 고승전· 화랑세기· 계림잡전과 최치원의 제왕연대력 등의 국내 문헌과 삼국지· 후한서· 진서(晉書)· 위서(魏書)· 송서· 남북사· 신당서· 구당서 및 자치통감 등 중국 문헌을 참고했다고 밝혔지만, 삼국사기는 단군왕검의 2300년을 건너뛴 삼국시대부터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식민사학자들은 삼국유사 기록은 아예 믿지 않고, 정사인 삼국사기조차 초기 기록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에게서 역사를 배운 우리 강단사학자들도 아예 고조선을 전설이나 신화로 치부하고,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동서양 각국의 교과서며 박물관에서도 한국의 역사를 그렇게 가르치고 있으며,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중국은 고구려, 발해를 자국의 지방정권으로 편입시키는 이외에 한반도까지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도 역사를 날조하여 유구한 천신의 자손이라고 하는데, 우리 학계에서는 동아시아의 지리를 기록한 가장 오래된 책인 산해경(山海經)에 나타나는 8천 년 전 조선의 기록조차 믿지 않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소개하고 있는 산해경은 하나라 우왕 때 백익(伯益)의 저술이라고 하는데, 중국과 한국ㆍ일본ㆍ월남ㆍ티베트ㆍ몽골 등 인접국가의 고대 문화와 역사를 그림으로 소개한 산해도와 글로 소개한 산해경이 있었으나, 지금은 산해경만 남아 있다. 동진의 곽박(郭璞)이 최초로 산해경의 주석(山海經注)을 펴냈는데, 곽박은 18장 해내경에서 ‘천독국이 곧 고조선이다’고 밝혔다. 또, 청의 학자 오임신(吳任臣)은 곽박의 산해경주를 보완하는 산해경광주(山海經廣注)에서 더욱 분명하게 해내경과 대황경은 모두 고조선의 역사를 기술한 ‘고조선의 사기’라고 했다. 그의 주장은 송의 나필(羅泌)이 노사(路史)의 각주에서 ”해내경과 대황경은 조선기(朝鮮記)이다.”라고 밝히고, 송의 라벽(羅璧)이 펴낸 식유(識遺), 명의 동사장(董斯張)이 편찬한 광박물지(廣博物志), 고기원(顧起元)의 설략(說畧), 청의 장기(蔣驥)가 편찬한 산대각주초사(山帶閣註楚辭) 등에서도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역사의식이 있는 사학자들이라면 우리의 기록이 부족하면 최소한 삼국사기에서 참조했다는 밝힌 중국 등 인접국가의 사서를 연구하여 우리 조상들의 사정이나 내용을 찾아보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일제 식민사학자들보다 더 고루한 역사 인식으로 외국 문헌에 나타나는 고조선, 부여, 북부여 등의 지명이나 국호도 동명이소(同名異所)라고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외국에서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몽골 과학원의 발란도르지 수미야바타르(Sumiyabaatar)박사는 한민족의 시원으로 거론되는 바이칼 호수 북쪽의 ‘고리’는 몽골족의 일파인 코리(KHORI) 족의 음역이며, 부랴트 언어는 우리말과 같은 알타이어계로 분류한다. 헤이룽강 상류에 부여가 거주하던 지금의 길림.농안.장춘 지역이니, 이곳이 고리국(高離國) 또는 북부여를 달리 부르는 명칭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리국에 관해서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타나지 않지만, 장수왕 때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기면서 고려라고 불렀으며, 중국 사서에도 고구려를 고려라고 표기한 내용이 많다. 즉, 구당서.신당서 등에서 고구려왕을 고려대왕 혹은 고려왕 등으로 불렀으며, 발해도 대외적으로 ‘고려’라고 했다. 고리족은 맥족과 예족으로 분파되었는데, 중국 측 사서는 부여에서 남하한 주몽이 세운 고구려를 ‘코리=고리'를 한자로 음차하여 '구려(句麗)’라고 표기했다. 고리 앞에 붙은 ‘고구려’의 ‘(高)’는 고구려 왕실의 성씨라고 한다. 또, 주몽의 출신지에 관하여도 삼국사기·삼국유사는 중국 사서 통전을 인용하여 북부여라고 하지만, 후한서·논형(論衡)·양서.위략(魏略)에서는 고리국이라고 했다. 위서(魏書).주서(周書)·수서(隨書)에서는 부여라고 했는데, 이들은 외형상 넓은 얼굴과 작은 눈, 높은 광대뼈가 가장 두드러지고, 중국 한족에는 없는 엉덩이의 몽고반점, 고수레 풍속, 솟대, 흰옷, 서낭당, 장승 등의 풍습을 갖고 있다. 또, 주몽이 맥족이라는 사실도 광개토대왕 비문에서 '수묘인(守墓人) 호구'에 대한 부분에서 한(韓)과 예(濊)에 대한 구절에서도 나타나는데, 학자들은 몽골족의 일파인 고리족의 주몽이 맥족인 부여를 흡수하여 고구려를 세운 뒤 고조선의 예족과 합쳐져 '예맥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 핀란드의 언어학자 람스테트 교수(Gustaf John Ramstedt: 1873~ 1950)는 한민족은 혈통상 몽골족의 일파인 퉁구스족에 속하고, 언어학상 우랄 알타이 어족에 속한다고 했다. 그는 역사 비교언어학적 방법으로 각 언어 사이에 음운 대응의 규칙성을 찾아서 싱안링산맥 북동쪽의 퉁구스인, 남동쪽의 한국인, 북서쪽에 몽골인, 남서쪽에 튀르크인으로 분리했다. 그리고 알타이어도 현대의 퉁구스어군· 몽골어군· 튀르크어군, 그리고 한국어로 나눴는데, 앞으로 유전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더욱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역사를 가르치는 우리 사학자들이 크게 각성해야 할 것 같다.

 

한편, 우리는 지금까지 훈민정음이 세종의 씽크탱크인 집현전 학사들의 작품인지, 세종과 안평대군 등 세종 일가족의 작품인지도 불분명한 상태다. 그것은 왕조실록에 훈민정음 창제에 관한 전혀 기록이 없다가 세종 24년 10월 상한에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기록이 불쑥 나타났기 때문인데,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에게 한글을 실험하게 하여 창제 3년 후 비로소 반포하면서 용비어천가를 지었다. 우리 사학자들은 정확한 우리 역사를 밝히도록 분발해야 한다.

 

이렇게 삼국시대부터 2,000여 년의 역사만 가르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가 지금처럼 정밀한 달력이 없었던 반만년 전의 특정일을 개천절이라고 기념하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천절이나 한글날을 국경일로 정한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개천절부터 한글날까지 한 주일가량을 건국과 전통문화에 대한 국민축제 기간으로 벌여서 모든 국민이 나라 사랑과 역사 연구 기풍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또, 세계화 시대에 외국어 사용도 필요하지만, 진정으로 한글을 사랑을 사랑한다면 신문이나 방송에서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을 자제해주었으면 좋겠다.

[ 이선용 gosiweek@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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