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되고 싶어 전학을 택한 제자
문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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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개학식이 끝난 3월 둘째 날. 꽃피는 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꽤 강하게 기승을 부리던 날. 진로 상담실에 들어서자마자 인사도 하지 않고 퉁명스러움이 느껴지는 소리로 질문을 던지는 하늘이. 불만과 짜증, 그러니까 두려움이 담긴 어투였지만 하늘이의 낮고 굵은 목소리는 듣기에 참 좋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 시작되는 날. 다른 친구들은 새로운 결심을 하고 출발선에 서 있는데 하늘이는 떠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새 학기가 되면 하늘이와 같은 고민을 안고 상담실에 들어서는 친구들이 꽤 있다. 그런 친구들 대부분은 상담실 문을 열어둔 채로 그냥 들어온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친구에게 부담을 주는 많은 사람과 함께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 생각하느라 뒤로 돌아 문을 닫을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담을 시작한 지 몇 년 후에야 알게 된 현상이다. 하늘이도 마찬가지다. 문을 닫지 않은 것은 전학과 관련해서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또 어쩌면 자신의 마음속에서 두 가지 다른 생각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피냐, 선택이냐?”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질문을 던졌으나 하늘이는 질문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전학을 가겠다는 것이 아니고요. 절차를 물어보러 왔는데요.”
차갑고 건조한 어투로 말하는 하늘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하늘이의 표정을 보고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왜 전학을 가려고 하니? 그 이유를 알면 좀 더 절차를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원하는 대학의 국문과나 문예창작학과로 진학하려면 내신 성적이 좋아야 하는데요. 우리 학교가 자사고라서 그런지 애들이 공부를 너무 잘해서 제가 따라가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일반고에 가서 내신을 따려고요.”
“그렇구나. 그러면 우선 글을 얼마나 잘 쓰는지를 알아봐야겠네. 선생님도 글 쓰는 사람이란 것은 알고 있니?”
“그래서 왔어요. 선생님 책도 도서관에서 다 읽어봤어요.”
하늘이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다. 그러면 선생님하고 글쓰기 배틀해 보자. 그런 후에 전학 가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하늘이와 나는 각자 다섯 개의 단어를 써서 서로에게 건넸다. 10분 동안 그 단어를 활용해서 글쓰기 시합을 했다. 내가 하늘이에게 건넨 단어는 ‘동전, 비린내, 구두, 계단, 하늘’이었다. 하늘이는 나에게 ‘히드클리프, 개선문, 바람, 꼰대, 금붕어’ 이렇게 다섯 단어를 적어주었다.
- 오늘도 하늘은 보지 않고 사람들의 구두만 주구장창 바라보고 있다.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눈동자를 움직이지 말아야 했다. 앞을 못 보는 것처럼 보여야 더 처량해 보이니까. 움직이지 않아야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김딸구 씨는 조심스레 시선을 옮겨 깡통을 바라본다. 동전 몇 개만 추위에 오들거리듯 뒹굴고 있었다. ‘너풀’ 그 위로 만 원짜리 한 장이 떨어진다. 적선 사업 초기라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 천사의 얼굴을 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세련된 전문가처럼 고개를 숙인 채 음흉스러운 미소만 혼자 조용히 짓고 있다. 천사는 그 사람이 아니라 저 만 원짜리 종이니까 말이다. ‘펄럭’ 또 한 장의 만 원. 오래 살아야 한다. 그래야 이런 기적과 만날 수 있다. 오늘은 비린내 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저 계단 하나 정도 오를 힘은 더 생길 것이다. 아니다. 한 계단 더 밑으로 내려가야 내 삶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더 비참해야 나의 적선 사업은 윤기가 날 것이다. 신마저도 감동 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
- 나는 꼰대다. 내 앞에는 히드클리프가 앉아 있다. 깔바도스를 마시던 라빅과 개선문에서 만나기로 했던 떠돌이 히드클리프. 그는 언제나처럼 변함없이 약속을 어겼다. 그는 악동이니까. 그래서 슬픈 악동이니까. 결국 외로운 악동이니까, 약속을 어기는 것이 그에게는 어울릴 수도 있다. 심수봉의 노래가 우리가 마주 앉은 카페에 흘러 다닌다. ‘우리는 너나 없는 나그네,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그 소리에 맞춰 거리엔 찬바람이 불고, 거리의 온도를 잘 모른 채 바다로 가고 싶은 어항 속 금붕어는 춤을 춘다. 다른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함께 갖고 있는, 난폭하게 춤을 추는 금붕어의 이름은, 폭풍의 언덕에 서 있는 히드클리프다. 그리고, 나다.
오랜 시간, 아주 오랜 시간 하늘이와 나는 서로의 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딸구 씨 느낌이 어떠세요?”
“김딸구의 본명이 히드클리프였네요. 별명은 어항 속 금붕어고요.”
하늘이는 나의 글에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문학적 감각이 뛰어난 친구였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이해하지는 못한 듯했다. 나는 하늘이에게서 나를 점점 진하게 보고 있었다.
“좀 생각해 보고 다시 상담해야겠지?”
“그런 것 같네요.”
상담실 문을 열고 나서는 하늘이의 뒷모습이 꼭 저 나이 때 나를 닮아도 무척 많이 닮은 듯해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글을 쓰고 싶지만,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매 순간 글쓰기를 포기해야 했던, 그러나 매 순간 포기하지 못하고 다시 글쓰기를 반복했던 그날들. 방법을 찾기 위해 힘겹게 보냈던 외로운 시간들이 떠올랐다. 말하지 않았지만 하늘이의 마음이 내게로 들어와 있었다. 하늘이가 앉아 있던 자리와 그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셀 수 없이 많은, 그들을 바라보며. ‘이제부터는 저도 함께 가도 될까요?’라고 말했다. 하늘이의 삶을 염려하는 고운 이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고식 같은 인사였다.
장면 둘. 1976년 이른 봄, 그리고 삼십 년 후
고향 제주에서 서울로 전학을 왔던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매일 울었다. 고향 친구들이 그리웠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했던 소녀가 지독하게 보고 싶었다. 하루를 살아내기 힘겨웠던 부모님과 나이 어린 여동생 앞에서는 나의 슬픔을 이야기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일기를 썼다. 그 소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일기를 쓰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월세를 걱정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상금이 걸려 있는 ‘전국 생명보험 수기 쓰기’에 응모하였다. 처음으로 응모한 글쓰기였다. 어찌어찌 원고는 썼으나 우편 요금이 없었다. 담임 선생님께 전후 사정을 말씀드리면서 우편 요금을 빌려달라고 했다. 상금을 타면 꼭 드리겠다고 했다. 가만히 바라보시던 선생님께서는 함께 택시를 타고 가서 원고를 접수하고 짜장면까지 사주셨다. 그리고 나는 운이 좋게도 은상을 받았다.
삼십여 년이 지난 후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점심시간만 되면 운동장 한구석에 우두커니 서서 울고 있는 나를 자주 봤었다고, 도와주고 싶었는데 교사 초년병 시절이라 어떻게 할지 잘 몰랐다고, 그러다가 내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당신께서 도와 줄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고 말씀하셨다.
“문경보가 전학을 왔을 때 말이야. 보석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져서 내게 온 줄 알았어. 횡재한 것 같았다 이 말이야. 자네 글은 또 어떻고. 정말 따뜻해. 사람 눈물을 쏙 빼놓고 말이야. 읽고 나면 마음이 얼마나 편안해지는지 몰라. 그러니까 힘들어도 글은 계속 쓰시게. 그건 자네에게 주어진 사명 같은 거야. 아! 그리고 이젠 힘든 일 있으면 이야기 좀 하고 살게. 초등학교 때 자네는 너무 착했어. 너무 웃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해줄 자리를 못 찾아서 힘들었다 이 말이지. 허허”
이젠 하늘 꽃자리에 계신 선생님은 모든 제자를 보석 같다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하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응원과 덕담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들은 삶이 힘겨울 때면 선생님을 찾았다, 아! 삶이 힘들 때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리고 나는 지금 선생님의 자리에 있고, 내 앞에는 나처럼 글쓰기를 좋아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는 하늘이가 있었다.
장면 셋. 목련꽃 피어나기 시작할 때
하늘이는 이 주가 지난 후에야 왔다.
“생각을 정리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죄송해요. 몇 가지 여쭤보려고 해요. 괜찮으세요?”
“그래. 그런데 그냥 말로 하지 말고 종이에 쓰고 나서 질문할래? 그게 좋지 않을까?”
하늘이가 씩 웃으며 파일에서 질문을 적은 종이를 꺼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하늘이를 향해 나도 씩 웃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보다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하하. 하늘아. 나 고등학교 때 너보다 글 못 썼어. 그리고 말이야. 문학판은 경쟁하는 자리가 아니야. 저마다의 꽃을 피워내는 자리야. 그러니까 비교하려는 마음은 내려놓는 것이 좋아.”
“두 번째 질문인데요. 글은 어떤 존재인가요?”
“그건 좀 복잡한데…. 사람마다 다른 의미일 것 같다. 선생님에게 글은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 친구였어. 그래서 내 글의 첫 번째 독자는 항상 나였지. 물론 내 글을 읽고 함께 공감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뿌듯해지기도 하고 고마워지기도 했지. 그럴 때면 선물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지. 선물이 참 좋은 것이지만 반드시 삶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말이야.”
“마지막으로 여쭤볼게요.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 가야만 글을 제대로 쓸 수 있나요?”
“아니.”
내 짧은 대답을 듣고 하늘이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러다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자. 그러면 이번엔 선생님이 물어보자. 글쓰기는 생각하지 말고 내 질문에 대답해주길 부탁해. 넌 왜 전학 가고 싶니? 대답하기 어려우면 질문을 바꿔볼 수도 있다. 전학을 가는 것으로 결정했을 때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니? 그리고 왜 떠오르니?”
하늘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종이에 의미 없는 낙서만 했다.
“두 번째 질문할게. 역시 글쓰기만 제외하고 생각을 해보길 바란다. 전학을 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니? 전학을 안 간다고 할 때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니? 그 사람들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이니?”
하늘이는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하늘아. 넌 글을 만질 줄 아는 재능을 타고났어. 그건 내가 보증할 수 있어. 중학교 때 문학 영재 스쿨에 다닌 경력, 각종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을 보면 객관적으로 증명도 된 재능이지. 글도 좋아. 차가운 표현 속에 따스함도 있고 멋있어. 난 개인적으로 네가 책을 내면 가장 먼저 사 보는 독자가 될 마음도 있어. 그러니까 네 문제의 중심은 문학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뭘까? 너를 갈등하게 하는 그것들은 뭘까? 이 학교에 남아 있고 싶기도 하고, 전학을 가고 싶기도 한, 두 가지 마음을 갖게 한 그것은 무엇일까?”
장면 넷. 전학 가던 날
또 이 주가 흘렀다. 하늘이가 상담실에 오더니 목캔디와 함께 편지를 나에게 건넸다.
- 선생님. 오늘 전학을 갑니다. 제가 전학을 망설였던 것은 욕심과 시선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사고에 다닌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 같은…. 어쩌면 좋은 대학 국문과나 문창과에 가고 싶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같은 이유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박수 받으려 하고, 고향 순천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깨달음이고, 고백입니다. 국문과나 문창과가 아닌 다른 학과로 진학을 고민했던 것도 어쩌면 글쓰기에서 최고가 되지 못하거나 좋은 대학을 못 가면 다른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을 못 견디게 될 것 같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글쓰기와 공부를 할 때 편안해질 것 같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눈치 보면서 돌아가지 않고, 정면 승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과는 주어지면 유쾌하게 받아들이고, 거기서 다시 시작해보려 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자유, 여유를 선물 받은 것 같습니다. 많이 감사합니다. 중학교 친구들이 있는 순천 고등학교로 전학 가서 친구들과도 즐겁게 지내면서 글도 쓰고 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이 학교가 그립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 그리움도 글로 풀어내려고 합니다. 아! 어쩌면 국문과나 문창과로 진학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글을 계속 쓰려고 합니다. 문학은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라는 선생님 말씀 늘 가슴에 새기면서 살겠습니다.
하늘이의 어깨를 잡고 함께 창밖을 바라보았다.
“목련이 막 피기 시작했네. 참 예쁘다. 하늘아. 전학을 가도 여기 친구들은 여전히 네 친구들로 남아 있고, 여기 선생님들도 네 선생님으로 남아 있다는 거 알지?”
하늘이와 함께 교문까지 천천히 걸었다. 교문 밖에서 인사를 하고 걸어가는 하늘이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전학을 한두 명 보내본 것도 아닌데 새삼스레 마음이 허했다. 옆을 지나가던 입사 동기 선생님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하늘이 저놈 보면 말이에요. 꼭 문 선생님 생각나요. 둥글둥글한 외모에 글쓰기 좋아하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고…. 참 좋은 친군데…. 이런, 울어요? 문 선생님 주말에 바람 한 번 쐬셔야 마음이 좀 편안해지시겠어요.”
그랬다. 하늘이와 상담했던 지난 한 달, 나는 나와 만나고 있었다. 타향으로 전학을 왔던 어린 나를 하늘이를 통해 계속 만나고 있던 것이다. 그러니까 하늘이에게 건넸던 마지막 덕담은 사실 떠나온 것들은, 그리운 것들은 나의 삶에서 빠져나간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풍요로운 내 자신임을 기억하라며 나 자신에게 던지는 다독거림이었다 하늘이와 상담을 했던 지난 한 달은 전학을 와서 힘겨웠던 어린 나를 치유하게 된 시간이었다. 내 제자, 내 친구, 나와 닮은 꼴 하늘이가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문경보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교육전공 졸업
서울시교육청학부모지원센터 학부모교육 강사
자기주도학습 코칭전문가
문청소년진로연구소 소장
한국독서치료연구소 부소장
대광고등학교 진로진학 컨설턴트
서울 YWCA 청소년부 자문위원
한국 인성 교육협회 위촉교수
前 중동 중학교, 대광 중고등학교 국어교사
대광 고등학교 진로 교사, 상담실장, 생활관장
영락 고등학교 심리학 강사, EBS 출연교사
저서 「외로워서 그랬어요」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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