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앤피뉴스 - [설성제의 다락]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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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성제의 다락] 여기에서

피앤피뉴스 / 기사승인 : 2023-12-27 11: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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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천 김대규 화백의 <십자매>

 

여기에서

설성제(수필가, 논설위원)


가끔 지역민을 위한 운동장을 걷는다. 그때마다 늘 마주치는 고양이가 있다. 키 크고 덩치도 좋고, 호피 무늬가 설핏 그려진 갈색 털에서 귀티와 위엄까지 어려 있다. 그런데 몽당 꼬리다. 어쩐지 겨우 붙어있는 조막만 한 꼬리가 참으로 부조화다. 누구든지 운동장을 어슬렁거리는 몽당 꼬리 고양이를 보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한참 동안 바라보게 된다. 잘생긴 모습보다 잘린 꼬리에 대한 생각으로 각자 자신의 꼬리를 떠올려보는 모양이다.

고양이에게 꼬리가 없다는 것, 참 만만치 않은 삶이겠다. 꼬리로 방향을 파악하고 신체의 균형을 잡고, 감정표현과 의사소통까지 한다니. 조물주께서는 어찌하시다 이 중요한 기능들을 한꺼번에 꼬리 속으로 몰아넣으셨는지. 이놈은 그것을 소중히 지키지 못하고 어쩐 일로 댕강 잘라먹고 모가지만 달아놓았는지. 아무리 멋지고 잘생긴들 측은한 구경거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몽당 꼬리 고양이는 운동장 가장자리로만 다닌다. 집도 절도 없는 모양이다. 몸 따라 마음에 상처도 만만치 않겠다 싶다. 풀 속이나 뒤지며 먹이를 찾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그런데 녀석은 다른 이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모양이다. 그에게도 필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먹이를 잡는 것. 드넓은 운동장이지만 먹잇감 구하기가 어렵다. 뒷골목이나 하수구 쪽으로 가야겠는데 잘려나간 꼬리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운명처럼 떨어져 내린 여기에서 살아가는 수밖에. 누군가 흘린 부스러기라도 찾는다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지.

여느 날과 다름없이 걷다가 몽당 꼬리 고양이가 운동장 언덕을 조르르 달려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어머나, 그래도 저만큼은 달릴 수 있구나 싶어 대견했다. 오랜 시간 몽당 꼬리에 익숙해지고 이 대신 잇몸으로도 웬만한 달리기는 할 수 있는 모양이다. 녀석은 이제 빠른 걸음으로 걷더니 내 앞을 지나갔다. 눈이 조금 떨어져 있는 모래땅을 주시하고 있었다.

거기 까치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까치는 모래땅을 파헤치는 중이었다. 고양이 녀석이 그토록 찾고 찾아 헤맨, 얼마나 간절했던 먹잇감일까. 이제 까치가 있는 곳까지는 불과 2미터쯤 남았다. 몽당 꼬리 고양이는 타고난 꼬리 대신 길러진 이례적 집념이 발동됐는지 자세가 돌변했다. 몸을 최대한 낮추어 엎드렸다. 그러고는 한쪽 다리를 너무나 조심스럽게, 느리고도 느리게 들어 올려 배 쪽으로 끌어당겼다가 다시 최대한 앞으로 뻗어내며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길고 긴 시간,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혹시 까치가 눈치챌까 봐 지켜보던 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운동장의 모든 미세한 소음마저도 몽당 꼬리 속으로 사라진 듯했고, 천지에 오직 고양이 한 마리와 까치 한 마리만 살아있을 뿐 모든 것이 정지 상태였다.

까치는 아무것도 몰랐다. 꽁지를 까딱거리며 두 발은 모래를 파헤치고 있었다. 아직도 제 앞의 적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면 훤히 알고도 이까짓 것쯤으로 여기는지. 고양이와 까치의 몸짓과 태도는 천양지차다. 꼬리와 날개의 차이라고 할까. 그것도 몽당 꼬리로 말이다. 고양이는 더더욱 집중과 집념으로 나아갔다.

이제 1미터 남짓 가까워졌다. 나는 코와 입을 막았다. 내 숨소리 한방에 고양이의 간절한 사냥이 싹둑 깨질까 봐 겨우겨우 숨을 죽여 가며 지켜보았다. 당연히 연민이 가는 고양이 편이었다. 까치를 덮치는 순간이 눈앞에 벌어질 것을 생각하며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드디어 고양이는 까치 눈앞에 닿았다. 벼락처럼 덮치기만 하면 끝. 소중한 꼬리를 잃고 이 한적한 겨울 운동장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살기 위해서 간절하게, 끝까지 애쓰고 있다. 환경과 조건은 모두 핑계, 초월적 집념 하나만으로 저 날개 달린 짐승도 손에 넣을 수 있다. 꼬리로 사는 땅이 날개로 사는 하늘을 이기는 순간이 벌어질 것이다.

찰나, 무참함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까치는 눈곱만큼도 놀라는 기색 없이 가볍게 날아올랐고, 고양이는 혼이 빠져 주저앉아버렸다. 그러고는 날아오르는 까치를 바라보며 우두망찰했다. 한동안 움직이질 못했다. 까치는 고양이가 내려온 언덕을 지나 대나무 꼭대기로 날아갔다. 그때 언덕 위에서 새끼 고양이가 이 모든 것을 쳐다보았던 모양이다. 새끼의 눈이 까치의 동선을 따라가다가 대나무 꼭대기에 멈추었다. 실망의 깃발이 순식간에 나부꼈다.

몽당 꼬리 고양이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정신을 차리고 울타리 위 새끼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새끼는 어미를 보자마자 몸을 날렸다. 둘이서 엉겨 붙어 엎치락뒤치락 난리였다. 심상치 않은 실랑이가 한바탕 지나자 드디어 엉겼던 몸을 풀고 잠잠해졌다. 최선을 다했지마는 먹이를 놓쳐버린 어미를 새끼도 모를 리 없다.

기대와 희망은 허상일까. 이런저런 이유로 몽당 꼬리 고양이가 되어 실의와 낙심에 빠졌다고 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 운동장을 걸으면서 지금까지 누누이 생각해오고 있는 것은 주어진 여기, 주어진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것. 아무리 시대가 발전하고 발전해도, 아무리 시련과 좌절이 광풍같이 밀려와도, 아무리 날개 달린 먹잇감도 느리고 느린 발걸음으로라도 다가가야 한다는 것. 결과가 뻔할지라도 몸부림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 이것이 살아있다는 방증이지 않나.

몽당 꼬리 고양이한테서 온 우주의 힘을 모은 집념을 배웠다. 비록 까치는 날아가 버렸고 녀석은 탈진할 지경이었지만 배고픈 새끼와 함께 다시 삶의 터전으로 주어진 이곳을 부지런히 걸어 다녀야 한다는 것. 비록 어떤 즐거움은 없을지라도 남아있는 몽당 꼬리에 자족하면서 혼신을 다한 몸짓이, 삶이 또 하나의 빛으로 누군가에게는 가닿는 것을.

대나무 꼭대기에 앉았던 까치는 공중의 제 길로 가고, 고양이 두 마리가 저만치서 나란히 걷고 있다. 몽당 꼬리는 보이지도 않는다. 균형도 방향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스스로 선택했거나 혹은 주어진 여기에서 또 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웃어라, 희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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