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앤피뉴스 - [김문호 에세이] 감나무 고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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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호 에세이] 감나무 고향집

피앤피뉴스 / 기사승인 : 2024-03-22 10: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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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고향집

 

▲김문호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 하리(you can' go home again)’

미국인 작가 토머스 울프의 소설입니다. 뉴욕대학의 교수인 그가 유럽을 방랑하고 나서 쓴 것이지요. 같은 뉴욕의 문학청년 주인공이 오랜만에 고향을 다녀오면서 느끼는 상실감을 주제로 다루면서,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라 할 만했고요.

고향에 가지 못 한다는 제목이 내 맘에도 걸렸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의 그것과는 다른 근거였습니다. 대공황으로 피폐해진 고향이 그쪽의 배경이었지만 나로서는 그것이 아니었거든요. 고향은 그대론데 내가 자꾸 못돼 간다는 자성이었습니다. 중학교가 있는 대처의 백열등에 길들면서 고향집 호롱불이 불편해지듯 말이지요.

음력2월초하루의 영등제사 소지(燒紙)를 올리고 나면 봄이었습니다. 바로 농사철의 시작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겨우내 얼음장으로 번쩍이던 골 안 큰못이 초록 물결로 남실거릴 뿐, 봄이랄 다른 기색은 없었습니다. 성미 급한 멧비둘기가 저 혼자서 온종일 봄이 왔다면서 구구구구 울어대긴 했지만요. 그때는 계절도 더뎠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느새 산수유 노란 꽃띠가 마을 앞개울을 휘돌아 치고, 살구꽃 복사꽃 더미가 두둥실 떠오르면 완연한 봄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앞 뒷산 온갖 새들의 울음소리가 두메 마을을 쩌렁쩌렁 흔들었고요. 낮에 우는 두 음절은 뻐꾸기, 밤의 세 마디 울음은 소쩍새였습니다. 간혹 까투리를 부르는 장끼의 고성이 섞여들면, 학교 길의 동무들이 합창으로 놀렸지요. “껑껑 장 서방, 자네 집이 어딘 공!”

감나무는 산새들이 잠잠해진 여름 초입에야 꽃을 피웠습니다. 넓은 이파리 속에서 피는 줄도 모르게 피는 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흠씬 빨라진 새벽의 감나무 마당에는 허연 감꽃들이 드문드문 내려앉아 있었지요. 향기도, 볼품도 없는 그것들을 볏짚대궁에 끼어 와서 말리면 어렵던 시절의 별식거리였습니다. 단오절의 감꽃 백설기가 그랬지요. 맑고 연한 감미(甘味)가 사카린의 그것에 비할 바 아니었습니다.

또다시 새벽마다 나를 감나무로 불러내는 것은 온 동네 여자들이 골 안 폭포의 물을 맞는 유두절을 지낸 뒤였습니다. 어느새 외톨밤보다 커진 낙과를 곡식 항아리에 넣어 묽히면 몽실몽실한 과육의 당도가 가을 홍시의 그것에 손색없었거든요. 이때 어머니는 내겐 쌀독, 누나들에겐 보리쌀독으로 정해서 갈랐습니다. 서로 섞이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겠지만, 그것만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때 계집애들은 학교 길에서도 치마 춤에 생쌀을 넣고 다니면서 남모르게 오물거렸거든요.

토종의 떫은 감 중에서 사곡시(舍谷枾)가 조생종이었지요. 껍질이 얇고 과육이 연해서 침시(沈柿)에 적합한 품종이었습니다. 다른 감들이 여전히 짙푸른 9월 중순이면 사곡시는 배꼽부터 노르스름 익어갑니다. 전신이 노랗게 익은 그것들을 미지근한 물로 담그면 추석과 가을운동회에 더없는 생광이었지요. 한때 궁중 진상품으로 지정되어 있었답니다. 그런 연유인지 몰라도 유독 지명을 딴 품종 이름이었습니다.

사곡시의 본향인 고향마을에는 감나무가 많았습니다. 집집이 너덧 그루씩이었고, 계곡이며 논밭둔덕에도 빈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사곡시를 포함한 반시, 둥시, 고종시, 월하시 다섯 토종감이 골고루 있었지요. 동네 어귀에는 100접도 넘게 딴다는 월하시감나무 두 그루가 마을 대문인 양 드높이 서있었고요.

가을의 마을은 온통 감잎더미였습니다. 동네 지붕을 뒤덮으면서 타는 듯 벌건 단풍 바다였지요. 그간 객지를 떠돌면서, 세상 어디에 감잎만큼 크고 두터우면서 짙붉은 가을꽃이 있었던 지요. 그러나 가을의 한물은 한참 뒤였습니다. 이파리를 대신한 선홍빛 감 가지들이 마을을 덮으면서 쪽빛 하늘로 치솟는 때였지요. 이때면 앞개울의 진홍빛 산수유며 논밭의 황금물결도 가담하면서 그야말로 마을은 한 해의 상달이었습니다. 거두어들여서 곳간을 채우고 선영에 고마움의 시제를 올릴 일밖에는 없는.

감 농사라면 뭐래도 곶감이어서, 저녁마다 온 가족이 호롱불을 둘러앉아 감을 깎습니다. 제때에 깍지 못 하거나 너무 익은 놈들은 연시로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아침마다 처마에는 곶감 줄이 늘어나지요. 그렇게 대청마루 처마가 그득해질 때쯤이면 어디에서 어떻게 알고 왔는지, 보리매미만한 왕벌들이 저들의 잔치인 양 온 집안을 붕붕거렸습니다. 마당 감나무 우듬지의 까치밥 홍시들은 끓는 듯 짙푸른 하늘 속에서 한껏 고왔고요. 더는 필요한 것을 몰랐던 고향의 풍요였습니다.

렌, 고향마을도 변했습니다. 객지를 종종이는 사이 많이도 변했습니다. 30여 호의 거반이 뜯기면서 고향집도 사라졌습니다. 찻길을 낸다고 사랑채를 치고 들면서 쪼그라든 안채에 타성바지 인척이 사는가 싶더니 그것마저 남루한 조립주택으로 바뀌었습니다. 금강송춘양목으로 지은 삼간겹집 안채였는데 말입니다.

백여 평 고향집 마당의 감나무 다섯 그루가 객지에서도 든든해서, 시헌(柿軒)이라 했던 내 아호의 원전이 종적 없이 사라진 것이지요. 동네길섶에 남은 몇몇 그루들도 몰골이 말 아닙니다. 지난날의 수관이 볼품없이 쇠잔하면서 제멋대로 솟은 우듬지(?)의 성근 열매들이 저들끼리 익고 떨어집니다. 사람이 챙기지 않으니 까막까치들도 그냥 지나치는지요.

그래도 고향마을이 싫지는 않습니다. 산야만은 옛 모습 그대로여서일까요. 아니면 객지살이가 서운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 켜씩 축조된 제2의 성이 바로 그곳이었던 지요. 정녕 희한하게도, 토박이들이 떠난 그곳을 외지인들이 찾습니다. 마을도 아닌 골 안에 전원주택인가 뭔가를 짓는다면서 내 상속 묵정밭뙈기를 찾는 이도 있답니다.
렌, 나도 그곳에 삼간모옥을 짓고 감나무를 둘러 심으면, 언젠가는 내 시헌(柿軒)이 복구될 런지요. 그러나 한편, 그만한 시간이 남아있을까 망설여집니다. 그러는 또 한편, 이냥 어영부영하다가 백세시대라는 말마따나 늘어난 시간에 더 크게 뉘우치게 될까 두렵기도 합니다. 진퇴양난이 이런 건지요.

산골고향의 겨울밤은 춥고도 길었지요. 모두가 잠든 야반에 대처의 중학교를 꿈꾸면서 호롱불 앞에 앉으면, 앞마당 감나무에서 부엉이가 울었습니다. 오들오들 떨면서 호롱불 심지만 돋우다 보면 아침의 콧구멍이 가맣게 그을어 있었고요.

그런 겨울밤의 내 동무는 ‘어린이’ 잡지였지요. 그때 너덜너덜해진 책들이 어떻게 내 손에 들었는지는 몰라도, 내 또래 서울 아이들의 이야기가 재밌었습니다. 홀어머니의 난전장사를 도우면서도 늘 일등만 하는 모범생 민수와 그를 시기하고 괴롭히는 악동들, 그럴 때면 제일 큰 양옥집에 살면서 예쁘고 공부도 잘 하는 여자 아이가 민수 모르게 민수의 편을 든다는 줄거리가 부엉이소리의 무서움도 모르게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여학생이 잘 켠다는 바이올린이 가끔 소재지 마을로 찾아오는 약장수 아저씨의 빠이롱과 같은 거라는 것도 그때 알았고요.

같은 6학년이면서 무용이 특기라는 소개와 함께 표지모델로 나온 여자 아이의 모습은 더욱 놀라웠습니다. 하나같은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 뒤통수가 드러나게 쳐올린 단발머리로 학교에 다니면서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멀찍이 떨어져 앉는 산골 여자아이들과는 판이했거든요. 그러면서 대처는 내 동경과 선망의 세계로 들어앉았습니다.

그렇게 훌훌 떠난 고향이었습니다. 떠나온 지 예순 해도 더 되면서 어영부영 평균치로 늙었습니다. 이제는 돌아갈 일인가 합니다. 그래선지 나로서는 선영이 있는 그곳 산천이 여전히 정겹습니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 하리’ 대신 ‘반드시 돌아가리라’면서 말이지요. 여우도 때가 되면 제 태어난 곳으로 머리를 둔다던가요.

렌, 책보자기는 어깨를 둘러 묶은 채, 고무신을 벗어든 맨발로 빗속 학교 길을 함께 내달리던 옛 친구 같으면서 민수의 여자아이 같기도 한 그대여! 챙길 것 없이 저무는 날에 그대 있음이 천만의 다행인 줄 알면서 고맙습니다. 남에게는 어림도 없는 넋두리를 이렇게 늘이면서 말입니다. 언젠가는 뵈올 그날까지, 내내 강령하소서.

 

한국해양대 졸업
대한해운공사 선장
한일상선회장
한국문협 해양문학 연구위원장
수필집 윌리윌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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