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앤피뉴스 - [문경보의 진학상담이야기] 갈림길에 서 있는 초원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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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보의 진학상담이야기] 갈림길에 서 있는 초원의 왕자

피앤피뉴스 / 기사승인 : 2024-01-12 18: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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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 서 있는 초원의 왕자


몽골에서 전학을 온 차림이와 진학 상담을 하는 시간.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친구들은 저보고 결정장애가 심하다고 하네요.”

고향을 떠나온 차림이는 진로를 결정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하였다. 이정표 하나 없는 여러 갈래의 길. 가는 도중에 무엇을 만날지도 모르고, 끝은 더더욱 보이지 않아 망설여지는, 낯선 땅에서 만난 갈림길.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나눴구나. 결정장애가 심한 것은 신중하다는 뜻이기도 한데.”
긍정적으로 해석을 하는 말을 듣고도 차림이는 무표정하게 가만히 있었다. 늘 그랬다. 확실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고 다른 이들의 말에도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 친구였다.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더니 친구들이 자신감을 가지라고 했어요. 제 어깨를 두드리고 파이팅도 외쳐줬어요. 고맙긴 고마운데 그렇다고 자신감이 생기지는 않았어요.”
“차림이가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구나. 그것도 네 복이다. 그런데 말이야. 자신감이 없다는 것은 욕심이 많다는 뜻일 수도 있는데, 그런 건 아니니?”
차림이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제 마음을 들켜버렸네요. 선생님은 친구 맞네요.”
나도 웃으며 차림이와 주먹 인사를 나눴다.
“우리가 친구 되기로 한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네. 그렇지?”

한 해 전 어느 가을날. 생활관 ‘효도의 길’ 프로그램 시간. 고1 남학생들이 이런저런 내용을 담은 글들을 같은 반 부모님들 앞에서 읽는 시간. 웃음과 박수가 넘쳐나고 눈물과 포옹도 풍성해지는 저녁이었다. 차림이 순서가 되었다. 자신은 몽골에서 전학을 왔고, 부모님은 지금 몽골에 계시니 발표를 하지 않겠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겨우겨우 설득하여 차림이를 친구들 앞에 서게 했다. 행여 한 친구라도 외로움을 느끼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섬주섬 사연을 적은 종이를 꺼냈으나, 차림이는 여전히 입을 떼지 못했다. 한숨을 깊게 쉬더니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참 애처로웠다.


“헤이! 친구야. 한국말이 아직은 어려운가 보다.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게. 여기 있는 너의 반 친구들은 언어의 마술사들이란다. 네가 어느 나라 말로 이야기를 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단다. 그래서 말인데 몽골말로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해 봐라. 부탁한다. 자 여러분 박수!”
 

억지였다. 그 친구를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억지를 부렸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차림이는 친구들의 박수가 끊임없이 이어지자 마지못해 몽골어로 한마디 했다. 듣고 있던 아이들과 부모님들께서 박수를 보내고 환호성을 질렀다.


“애썼다. 선생님이 무리한 부탁을 했는데 들어줘서 고맙다. 자 그럼 나는 몽골어를 잘 모르니 언어의 마술사 1학년 3반 친구들에게 통역 좀 부탁할까? 지금 이 친구가 뭐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니?”
“엄마 보고 싶어요.”
“아버지 제 말은 잘 크고 있지요?”
“여기 급식 진짜 맛있어요.”
“용돈 더 보내주세요.”
“한국말 생각보다 쉬워요.”
“우리 반 아이들이 뛰어나서 아직은 따라잡기 어렵지만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엄마, 아빠 아프지 마세요.”
“아버지 죄송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내용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약간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변해가고 있을 때 차림이가 흐느끼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생활관에 퍼져나갔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친구 한 명이 휴지를 들고나오고,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셔서 차림이를 안아주셨다. 차림이가 젖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했다.
“이제 여러분과 친구가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며칠 후 차림이와 짜장면을 먹으며 물어보았다.
“그날 친구들이 정말 네 말 알아들었니?”
차림이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한 말은 모두 제 가슴 속에 있던 말이었어요. 저는 그냥 아무 말이나 했는데 …. 제 마음을 알아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에게도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친구는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이잖아요.”
“그랬구나. 선생님이 차림이에게 배웠다. 친구는 마음을 읽어주는 사이구나. 그럼 차림아. 선생님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 한 번 선생님 마음을 읽어볼래?”
차림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씩 웃으며 수줍게 말했다.
“선생님이랑 학생이 친구해도 괜찮아요? 그래도 돼요?”
나도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럼. 이젠 우리 친구다. 그렇지?”

차림이는 속이 깊은 친구였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에서 출세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강했다. 지금까지는 속 깊은 마음으로 책임감을 자신이 관리할 수 있었으나 스무 살 이후의 삶은 너무나 풀기 어려운 수학 문제 같았고, 낯선 땅에서 이방인의 처지는 차림이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차림이의 문제를 함께 잘 풀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진로진학 상담교사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지만 그보다 앞서 차림이의 친구이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짐을 나눠 드는 사이이기 때문이었다.
“우선 진로와 관련해서 네가 갖고 있는 장점들을 여기에다 적어봐라. 한 열 개 정도 적어 보면 좋겠다. ”
펜을 들고 한참을 망설이다 펜을 놓아버리고 한숨을 쉬는 차림이. 멍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일 년 전 생활관에서 나를 바라보았던 그 눈빛과도 같았다. 이번에는 하기 싫다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신호였다. 어쩌면 일 년 전에도 그런 의미의 눈빛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 이렇게 하자. 진학과 관계있는 현실적인 내용들을 한번 적어봐라. 가능하면 많이 적어봐라.”

- 4등급, 화학 공학과와 컴퓨터 공학과, 한국어, 일할 나라, 부모님과 가족들, 생활기록부 내용, 등록금, 체력, 건강, 친구들, 욕심, 마음, 고향, 그리움, 외로움


종이 위로 눈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차림이는 조용히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자그마한 몸에서 흘러나오는 외로움의 크기는 상담실이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답답함을 느낀 나는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했다. 나뭇잎들이 지고 있었다. 아! 떨어지는 것들, 흐르는 것들은 왜 저토록 다 슬플까? 안다. 슬픔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매섭고 추운 겨울을 보내고 나면 또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떨어지고, 얼어붙는 시간을 견디고 살아내면 따스하고 화창한 햇살과 만나 새로운 생명을 피워내는 시간과 만난다는 것을 오십 대 중반인 나는 안다. 그러나 그것을 저 어린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꼰대’의 이야기나 어설픈 ‘라떼 버전’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오늘은, 그냥 울게 둘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이라는 자리는, 상담사라는 위치는 가끔은 참 무능하고 허약한 자리다.
“선생님. 저 그만 갈까요?”
차림이가 나에게 휴지를 건네며 말했다. 나는 울고 있었다. 우리는 다음 날 다시 만나기로 했다.

“오늘은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선생님 생각을 말할게. 늘 그랬지만 오늘은 집중해서 내 말을 잘 받아들이길 바란다.”
차림이는 메모지를 가지고 왔고, 나는 어제 차림이가 작성한 내용을 바탕으로 건네 줄 도움의 말을 적어 온 종이를 펼쳐 놓았다. 두 남자 모두 행여 감정에 치우쳐 현실적으로 필요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보조장치를 준비한 것이었다. 역시 닮은 꼴 친구였다.
“우선 4등급 성적은 선생님이 준 학습 방법 자료를 바탕으로 더 열심히 노력을 해보아라. 그리고 일 년 후에 결과가 나오면 그때 현명하게 대학을 선택하도록 하자. 대학을 선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그다음 화공과와 컴공과 중 하나는 현실적으로 준비해야 할 내용들이 있으니 결정해야 할 듯하다. 이 부분은 이렇게 하자. 두 학과를 써 놓고 각각의 학과로 진학할 때 네가 겪게 될 어려움들을 적어봐라. 그중에서 덜 어려운 쪽을 택하는 게 좋다. 그런데 말이야. 더 어려운 것이 분명한데 자꾸 그쪽으로 눈이 가고 포기하기 어려우면 말이야.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봐도 자꾸 마음이 가면 말이야. 그 학과가 어려워도 네가 갈 길이라 생각하고 선택하렴. 그렇게 생각하며 학과를 결정하고 난 뒤 선생님이랑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방법들을 다시 의논해보자. 자 그럼 오늘 내가 내 친구 차림이에게 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말을 하겠다. 차림아. 너는 네가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아니?”


차림이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는 몽골어와 한국어 두 가지를 모두 다 할 줄 알잖아. 네가 어떤 분야로 가든 간에 몽골과 한국이 협력해서 하는 일을 하면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몽골과 한국을 오가면서 활동하는 일을 하면 너는 몽골에 있는 가족들도 볼 수 있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도 자주 만날 수 있을 거야. 선생님도 자주 만날 수 있고 말이야.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덜 외롭게 살 수 있을 거야. 아니, 외로워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선생님은 생각한단다.”
“제가 두 나라 말을 모두 할 줄 알고, 두 나라에서 공부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네요.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어요.”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행복한 침묵이었다.
“선생님.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들 때 자주 찾아와도 괜찮으세요?”
“이런! 서운하게 이야기하네. 그럼 졸업하면 안녕! 하려고 했니?”
“죄송해서요. 바쁘실 텐테.”
“어이구. 바쁜 날은 못 만난다고 내가 이야기할 테니 걱정마세요.”
차림이가 웃었다. 소리 내어 웃었다. 차림이가 좋아하는 바나나 우유를 건네면서 내가 말했다.
“차림아. 한국에서 친구는 말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란 뜻이란다. 그러니까 선생님과 차림이는 아주 오래오래 함께 할 거야.”

나는 행복한 상상을 한다. 초원의 왕자가 몽골과 한국, 어쩌면 지구촌 곳곳을 누비면서 자신의 꿈을 한껏 펼치면서 더 이상 외로움은 불편한 감정이 아니고 나를 성장시켜 주는 고마운 감정이라고 이야기할 때를 그려본다. 내 제자 차림이는 그런 멋진 친구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한껏 자랑할 그 순간을 나는 상상한다.

 

문경보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교육전공 졸업
서울시교육청학부모지원센터 학부모교육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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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중동 중학교, 대광 중고등학교 국어교사
대광 고등학교 진로 교사, 상담실장, 생활관장
영락 고등학교 심리학 강사, EBS 출연교사
저서 「외로워서 그랬어요」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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