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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의 소용돌이, 그리고 生과 死

/ 기사승인 : 2014-08-12 16: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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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명량>과 다양한 시각들     오대혁 박사   1. <명량>의 다양한 시각들   수많은 왜적들을 수장한 울돌목, 명량(鳴梁)은 이 사회의 온갖 담론들을 소용돌이치게 한다. 영화 <명량>이라는 텍스트는 제 주관에 걸맞은 비평들을 낳고, 비평에 대한 메타비평을 낳으며, 다양한 영역에서 수많은 담론들을 양산하고 있다. 12일 만에 천 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의 새 역사를 써나가며 호?불호가 뒤엉키고, 영화 미학적 접근에서부터 역사, 정치, 사회, 문화 등에 걸쳐 온갖 논의들을 낳고 있다.
  <명량>이라는 텍스트가 빚어내는 이 사회의 수많은 담론들은 제각각 자신들만의 ‘상(相)’으로 재편된다. 위정자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국가가 위기를 맞았을 때 민관군이 합동해 위기를 극복하고 국론을 결집했던 정신을 고취하고, 경제활성화와 국가혁신을 한마음으로 추진하자는 의미가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사회를 다시 일으키는 리더십을 보이겠다.” 대통령의 시각에서 <명량>은 국가의 위기극복은 민관군이 합동해야만 하며 국론을 결집해 한마음이 되어야 이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텍스트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영화를 관람하며 자신들의 리더십 부재를 반성하게 되었는지 어쨌는지(?), 리더십 운운하고들 있다.
  삼사십 대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호평이 이어지는 것과는 달리, 진중권은 트위터에서 “<명량>은 솔직히 졸작이다. 흥행은 영화의 인기라기보다 이순신 장군의 인기로 해석해야 한다. <활>은 참 괜찮았는데.”라고 혹평을 했다. 진중권의 진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는 <명량>이 보여주는 영화 미학적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시각에서는 명량해전에 동원된 왜선의 수가 330여 척인지, 130여 척인지 따위에서부터 <명량>이라는 텍스트와 역사적 기록물의 일치 여부에 관심이 있다. 왜적들이 오를 수도 없었던 판옥선을 잘못 그렸으며, 백병전이 없었는데 영화적 재미를 위해 거짓된 해전을 그려냈다고도 한다. 그것은 역사적 기록물로서 <명량>을 보려는 시각이다.
  영화판의 흥행에 초점을 맞춘 이들은 <명량>이 1300만 명을 동원한다고 하면 김한민 감독이 최소 100억 원의 돈방석에 앉게 될 것이라며, 영화감독의 성공 드라마를 작성하기에 여념이 없다.
  <명량>을 현재 사회의 환유로 이해하려는 이들은 ‘세월호 참사’ 또는 군 내부의 비극적 사건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진정한 리더가 어떠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도 이끌어낸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순신은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즉 “죽으려고 하면 반드시 살 것이오, 살려고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외친다. 세월호 선장은 자신만 살려고 했고 그 결과 수많은 생명들이 죽는 끔찍한 참사를 낳았다. 이순신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결국 수많은 생명들을 구해낸다. …(중략)… 책임을 진다며 물러나기에만 급급한 리더들을 보며 우리는 다시금 이순신이라는 리더를 생각하게 된다. 이순신은 열두 척의 배만 남게 된(심지어 자신의 책임도 아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물러나지 않았다.(김형식, <이순신의 ‘개고생’, 사람들은 그것을 원했다>, 《오마이뉴스》, 2014. 8. 8.)   이쯤 되면 <명량>은 영화 자체의 미학적 접근에서부터 이 사회의 병폐를 돌아보게 하는 텍스트로서 시의적절하게 등장했다. 앞으로도 수많은 담론들을 양산하게 될 영화 <명량>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담론들 앞에서 영화 <명량>이 시사(示唆)하는 몇 개의 지점들을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2. 이 시대의 환유인 <명량>   영화는 문화콘텐츠로서 대중의 무의식적 욕망을 정확히 짚어낼 때 흥행에 성공한다. 신데렐라 신화 원형이 끊임없이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며 변주를 일으키듯, 영화는 텍스트를 감싸는 대중적 욕망을 형상화해야 성공한다. 칼 융이 말하는 집단무의식을 우리는 신화?전설?민담, 그리고 고전과 역사 기록에서 읽어낼 수 있으며, 집단무의식에 내재하는 원시심상(primordial images)을 흥미로운 문화콘텐츠로 엮어낼 수 있어야 대중은 환호한다.(함춘성,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퍼블릭 도메인>, 《문화콘텐츠와 퍼블릭 도메인 스토리》, 동국대학교출판부, 2010, 27쪽.) 영화 <명량>이 보여주는 영화 미학적 완성도를 두고 비평가들이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해도, 영화 <명량>은 기존의 어떤 영화보다도 압도적으로 대중들이 사랑하는 텍스트로 기능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대중이 돈을 주고 <명량>을 찾게끔 되는 것은 관람객의 촉수에 뜨거운 전류를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그들의 촉수에 가 닿은 강한 자극은 영화의 어떤 지점인가?
  영화 <명량>은 이 시대의 환부(患部)를 송곳으로 정확히 찔러대는 환유(換喩)의 판타지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분노의 대상을 정확히 환유화(換喩化)한 까닭에 영화는 흥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감독의 의도가 그러한 환유에 미쳤든 안 미쳤든, 영화는 한국 대중들의 집단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분노를 정확히 일깨웠다. 가장 강력한 분노의 지점으로 영화 <명량>은 일본의 군국주의적 야망, 국가적 위기 상황을 책임져야 할 리더들의 책임 방기 등이다.
  임진왜란은 일제시대,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적 패권주의가 판을 치는 현재 등과 매우 밀접하게 겹쳐 있다. 섬나라 일본이 대륙으로, 나아가 전 세계로 진출하려는 욕망이 빚어낸 한일 사이의 갈등은 현재까지도 한민족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집단무의식으로 살아 있다. 영화 <명량>은 명량해전이라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 여겨질 수 있는 전쟁에서 거둔 대첩(大捷)을 텍스트로 선택했다. 현재 아베 정권은 “안보 환경이 바뀌었다.”라고 말하며, 집단적 자위권 확보를 위해 군사력 강화를 주장한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태에 대비해 국민의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을 말하며 일본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 해석을 변경했다. 일본의 군국주의적 침략주의자들 역시 비슷한 이유를 거론하면서 아시아를 침략했다. 나치가 유럽에 대두하고, 미국이 극심한 경제 침체로 세계 방위군으로서 역할을 할 수 없으니, 아시아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는 논리였다. 영화 <명량>의 이순신이 수장시키는 왜적들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를 매우 긴밀하게 연결하면서 일본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이나 두려움을 날려버리는 판타지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어떤 면에서는 영화 <명량>이 관객들에게 한일 대결에서 통쾌하게 승리하는 판타지를 선사한다.)
  한편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권력자들의 무능과,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백성을 위해 죽음을 결연히 각오하는 참된 리더의 모습을 <명량>은 매우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다. 권력자들은 얼마나 무능하고,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고 있는가? <명량>은 전장의 큰 흐름은 읽어내지 못하고, 국가를 건질 방향을 잃어버린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낸다. 패배 의식에 젖은 임금과 장군들은 국토를 지킬 방도도 모른 채 도망갈 궁리부터 한다. 배도 없는데 아예 수군을 없애고 권율이 이끄는 육군으로 합치라는 선조의 명령은, 수군의 육로 차단이 지니는 의미를 전혀 모른 명령이었다. 그리고 권력자들끼리 전쟁의 와중에도 참소로써 자신의 권력에만 눈이 뻘게 있었던 형국은 국가적 위기를 더욱 가중시켰다. 원균의 모략으로 모진 고문을 받아 병을 앓으면서도 이순신은 다음과 같은 장계를 올렸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 전선이 있사오니 죽을힘을 내어 막아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만약 수군을 모두 폐한다면 이는 적들이 다행으로 여기는 바로서, 말미암아 호서를 거쳐 한강에 다다를 것이니 소신이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전선이 비록 적으나 미천한 신이 죽지 않았으므로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이충무공전서》, 이분, 「행록」)   영화 포스터에도 붙어 있는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이 표현은 <명량>이 만들어내는 판타지의 슬로건이다. 죽을힘을 내어 막아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이순신의 주장, 그것은 위기를 타개해 나가는 진정한 영웅이 보여주는 배짱이자 자신감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역사와는 달리 표현되었다지만, 거북선을 불태우고 목숨을 도모하고자 배를 타고 도망가던 ‘배설’이라는 장수의 모습은 이순신의 극한적 위기 상황을 극화하기 위한 장치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부정적 현실과 부정적 인물군상들은 영웅 서사에서 일종의 ‘그림자’로서 영웅의 위대성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왜군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 참전한 ‘구루지마 미치후사(류승룡 분)’나 ‘와카자카 야스하루(조진웅 분)’이 보여주는 강한 이미지는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과묵하면서도 뛰어난 전술을 구사하는 이순신을 더욱더 눈부신 영웅으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울둘목에서 벌어진, 박진감 넘치는 해상 전투는 관람객의 긴장감과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누군가는 그 수준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이러한 전투 신에서 이 정도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한국의 영화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영화 <명량>은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환유화하고 있는 데서 관중은 흥미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무능한 정부와 정치권,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를 두고 벌어지는 좌충우돌의 사회 현실, 국가 방위를 책임져야 할 군대의 비극적 사건들 등 국가 위기관리의 허술성과 국민의 불안감은 영화 <명량>으로 국민들을 불러 모은다. 명량대첩의 소용돌이는 이 시대의 난맥상을 그대로 끌어들여 수장시키기를 도모해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영화를 보고 ‘민관군의 합동’을 통한 위기 극복을 관람 평으로 했다 하고,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의 침체의 원인을 자신의 리더십 부재로 인식했는데 말로는 리더십을 보이겠다고 했다. 여당 정치인들도 이 영화를 꼭 봐야 한다며 극장을 찾는다고 한다. 영화 <명량>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본 듯하다. 아니 잘 보았으면서도, 대중의 영화 읽기를 호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철저하게 ‘민관군의 합동’을 이끌기 위해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으로 죽음을 각오한 희생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두려움에 떨며, 목숨을 보전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이 첫줄에서부터 주장하는 사항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리더는 늘 구중궁궐에 앉아 ‘국가 개조’를 주장하는 연기를 하다 언제 그랬냐고 뒷짐 지고 앉았고, 무능한 야당과 싸워 승리로 이끈 여당은 혁신위원회 쇼를 접고 국민을 기만하는 행태를 부릴까 걱정이다. 리더가 썩으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들 ‘회’가 명량해전을 준비하는 아비 이순신에게 충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말한다.   충(忠)은 의리(義理)다. 의리는 왕(王)이 아닌 백성(百姓)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충은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   과연 현 집권자들이 참된 리더로서 백성을 향한 정책을 펼쳐 나갔는가? 기꺼이 목숨을 걸고라도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현실을 이끌어가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 등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현 정부의 ‘국가 위기관리’의 난맥상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머잖아 백성은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영화 <명량>이 가르치는 교훈은 리더의 희생 없는 현실 타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3. 생사일여(生死一如)   한편 영화 <명량>은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도 던진다. 그것은 삶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다. 생사일여(生死一如)란 말이 있다.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하는 말인데, 이 말을 풀어보면 죽음을 각오한 삶을 말하는 이순신의 다음과 같은 연설과 연결된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고 했으며, 또한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一夫當逕 足懼千夫)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이순신, 『정유일기』 9월 15일)   병법을 들어 말하고 있어, 전투에서 장군이나 병사들이 가져야 할 마음 자세라 하겠지만 잘 들여다보면 우리가 지녀야 할 삶의 자세도 들어 있다. 삶은 죽음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삶은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논리다. 진정한 삶은 죽음을 각오한 가운데서 비롯된다. 명량으로 떠나며 이순신은 어머니의 위패를 보며 죽으러 간다고 한다. 적선을 맞아 살겠다고 뒤쳐져 있던 아군 전선들이, 앞장선 이순신의 죽음을 각오한 전투를 보고서야 왜선과 대결한다. 적병들과 백병전을 하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함포를 모아 적선을 부수고, 귀신처럼 되살아난다. 최악에서 최선을 만들어내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내려놓기’이다.
  삶 속에 죽음을 감싸고 살아가는 삶은 위대하다. 비루하게 삶을 도모할 것이 아니라, 기꺼이 죽음을 각오하고 한 판 생에서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못 이룰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루하기만 한 내 생. 죽음에 벌벌 떨며 살아가는 생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영화 <명량>은 죽음을 곁에 둔 삶이 무엇인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명량>은 생사가 함께 한다는 인식을 제대로 보여주는 판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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