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의하면 국회는 입법기관이고, 행정부는 행정기관이고, 사법부는 재판기관이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가 있고 그 양상이 다르나 국회와 행정부는 부수적으로 정치도 한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거나 간행되어 시중에 돌아다니는 대법전에 수록된 법률은 1000여 개가 넘는다. 이런 법률들은 국민의 모든 생활영역을 규율하고 있고, 수시로 새로 제정되고 개정된다. 그리고 이제 제정〮개정의 권한은 국회가 갖고 있다.
물론 그 법률들의 제정〮개정은 국회가 이니어시티브(initiative)를 가진 것도 있으나, 행정부(行政府)가 행정상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제정〮개정된 것이 허다하다. 그러나 행정부가 제정안〮개정안을 제출하였더라도 그 최종 확정권은 국회가 가지고 있다. 형식적으로 볼 때는 국회가 제정개정의 권한을 갖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행정부가 많은 법률의 제정〮·개정에 관여하고 있다. 그래서 국회의 입법에 대하여 국회만이 책임이 있다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행정부가 제정안〮개정안을 제출한 것이라도 그 안들이 정의롭고 타당성이 있는가는 국회가 심사하여 최종적 의결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관련이 많거나 자기당의 정치적 욕구달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경우는 그 법안을 축조심의(逐條審議) 하면서 면밀히 검토한다. 그러나 대개의 법률안, 특히 행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은 얼렁뚱땅 검토하여 통과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 원인은 시간 촉박이 주된 원인인 경우도 있으나, 국회의원들은 다년간 행정을 경험한 바 없고, 전문지식도 없어 법률검토가 주마간산식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다시 말하면 법률이 생명으로 하는 정의와 윤리에 맞는가를 검토할 능력이 없고, 심지어 장래를 내다보는 입법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말할 것도 없이 국회의원들은 순간을 살아가는 현실적인 정치인이다. 따라서 국민의 표를 얻는데 관계가 있는 법률안에 대하여는 정의관, 미래관은 도외시한 채, 재당선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한다는 것이다. 설사 행정관료들이 장래를 내다보고, 관행적 현실을 개선하려는 법안을 제출하여도 국회의원들은 표를 얻을 수 없다는 정치논리로 접근시켜 부결시키는 경우가 많다.
지금 국회에는 많은 법안이 제출되어 있으나, 부결도 통과도 하지 않은 채 잠자고 있다고 한다. 이는 주로 세 가지 이유에 기인한다고 본다. 1.통과를 시켰다가는 국민의 표를 얻기보다는 재당선이 어렵다는 고려가 작용하고 있고, 2.법률안 통과를 저지하려는 이익집단의 강력한 로비를 받고 있기 때문이고 3.그 법안을 통과시키면 자기당이 정치적으로 불리해진다는 정치싸움 때문 등이다. 이상 말한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국회는 정치와 윤리에 입각한 입법기관이 아니라 정치적 유리 여부에 의한 통법기관으로 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형식적인 통법부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이고 정의로운 입법기관이 될 때 우리 민주주의, 법치주의는 발전하게 될 것이다. 국회의원은 그저 그런 것이고, 말장난 하고, 비판정신만 몸에 베어 있으며, 정당의 이해에 의하여 활동하는 사람들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영원히 2등 정치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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