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사소송은 검사의 공소제기로 시작되지만, 심리는 증거중심으로, 판결은 오직 증거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따라서 강간치상죄를 주장하면서 상해의 결과를 입증하지 못하면 법원은 동죄 무죄, 축소사실인 강간죄만 유죄를 선고한다. 또 강간이 요구하는 폭행행위, 협박행위를 입증하지 못하고 막연히 위력적이었다고 주장하여도 법원은 강간죄 무죄를 선고하게 된다.
최근 대구지방법원은 병역의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신체를 손상시켰다는 공소사실에 대해, 비록 피고인이 그러한 행위를 시도했더라도 병역의무를 감면할 만한 수준의 청각장애 진단을 받지 못한 점을 볼 때(피고인은 청력을 손상시키려고 시도했다) 병역법이 규정한 신체손상죄는 입증되지 못했고, 무죄라고 판시해 1심과 결론을 달리했다.
항소심 판단을 맡은 대구지법 제5형사부는, ‘신체손상으로 병역법위반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병역의무 기피 또는 감면사유에 해당할 정도로 신체변화가 인위적으로 조작되는 결과가 발생해야 하고, 신체를 손상하려고 했지만 그 정도에 이르지 못한 경우는 처벌할 수 없다. 여러 기록과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의 청각기관이 손상됐다는 점에 관해 입증됐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얼핏 보면 결과범처럼 판단됐지만, 신체손상의 결과 병역의무의 기피 또는 감면의 결과발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손상이 실제로 이루어진 경우만 처벌한다는 판시로 읽어야 한다.
대법원도, 「병역법 제86조가 “병역의무를 기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도망하거나 행방을 감춘 때 또는 신체손상이나 사위행위를 한 사람은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라고 규정하므로, 그 구성요건은 행위자가 병역의무를 기피할 목적이나 그 의무를 감경 또는 면제받을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달성을 위하여 도망하거나 행방을 감추거나 신체손상을 하거나 사위행위를 한 경우에 충족되는 것으로서, ··· (중략) 실제로 그 행위로써 병역의무의 기피 또는 감면의 결과가 발생하여야 하는 것도 아닌 즉성범이라 할 것이니, 그 행위 유형 중의 하나인 ‘신체손상’의 개념은 신체의 완전성을 해하거나 생리적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는 ‘상해’의 개념과 일치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병역의무의 기피 또는 감면사유에 해당되도록 신체의 변화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행위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3도8247 판결).
결국 피고인은 신체손상죄를 제외한 나머지 범죄사실(병역면탈목적사위행위)만 유죄가 인정돼 1심의 징역 2년이 항소심에서 6개월 감형됐다.
< 병역법 >
제86조(도망·신체손상 등) 병역의무를 기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도망가거나 행방을 감춘 경우 또는 신체를 손상하거나 속임수를 쓴 사람은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대구 형사전문·이혼전문 변호사 | 법학박사 천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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