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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보의 진학상담이야기] 4년제 대학을 졸업한 9등급 손자

피앤피뉴스 / 기사승인 : 2024-12-31 09:5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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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제 대학을 졸업한 9등급 손자

 

 


“거 뭐냐 콤퓨타학과 그게 좋다고 하드만유. 핵교는 우리 집 근처에 고려대핵교가 있는디 그 대학 가는 걸로 해주셔유.”
채빈이 할머니께서 진학 상담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당당하게 큰 소리로, 속사포처럼 빠르게 말씀하셨다. 살짝 당황해서 아무 말 못 하는 나를 보시더니 연이어 말씀하셨다.
“알아유. 선상님께서는 우리 채빈이 거 뭐냐 서울대핵교 보내고 싶은데 이 늙은이가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는 데 실망하고 계신 거 다 알아유. 그런디유. 서울대는 너무 멀어유. 차비도 아깝고, 또 관악산에 있다면서유. 우리 손주가 다리가 시원치 않아유. 어린 게 벌써 관절염 앓고 있시유. 그래서 산을 올라갔다 내려 왔다 하기가 힘들꺼에유. 또 거 뭐냐. 지가 고려대핵교 앞 닭발집에서 일을 하는디, 아니 내가 주인은 아니고 그냥 음식도 맹글고 손님들에게 가져다 주기도 하는 종업원이유. 거기서 일하면서 고대가 우리나라에서 질로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시유. 그러니까 욕심 줄이고 그냥 고대로 보낼려구 해요. 됐지유?”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말했다.
“할머니. 말씀은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채빈이 성적으로 고려대학교에 가기는 어렵습니다. 조금 부족합니다.”
“뭔 말씀이래유? 전국 9등이 못가믄 누가 거기에 간대유?”
“전국 9등이요?”
채빈이 할머니는 모의고사 성적표를 꺼내서 내 앞에 내밀었다. 9등급. 채빈이의 성적은 전 과목 모두 9등급이었다. 아마 채빈이가 할머니께 전국 9등이라고 말했던 것같다. 할머니는 믿었을 것이다. 중학교 때 채빈이는 전교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성적이 우수한 손자였다. 복잡한 모의고사 성적표를 잘 볼 줄 모르는 할머니는 애지중지 키운 손자의 말을 믿었을 것이다. 먼저 보낸 아들과 며느리를 대신해서 고생하며 키우고 있는 손자의 말을 믿고 싶었을 것이다. 한숨을 쉬며 성적표를 바라보는 내 표정의 의미를 할머니께서 알아채셨나 보다.
“알겠시유. 선상님이 좋은 분이시고, 거 뭐냐. 우리 채빈이를 아껴주는 분인 것을 지도 잘 알고 있으니께 선상님 말씀이 맞겠지유.”
“오늘 댁에 가셔서 채빈이하고 말씀 나누시고 저랑 한 번 더 이야기 나누시죠. 전화로도 괜찮습니다. 저도 채빈이하고 다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아니유. 왔으면 결정을 짓고 가야쥬. 고대가 어려우면, 거 뭐냐. 연세 대학교나 보내주세요.”
“연세 대학교요? 그 학교도 고대랑 상황이 비슷합니다.”
“고대 학생들은 연세대핵교가 자기들 발바닥도 못 따라온다고 하든디유. 대학생들이 거짓말을 씨부리겠시유? 그건 아닌 거 같아유. 어쨌든 오늘 채빈이랑 말은 섞어보겠지유. 선상님하고 상담하는 거는 오늘로 시마이하는 게 좋것씨유. 고생 많으셨시유.”

다음 날. 채빈이와 마주 앉았다. 채빈이는 야단맞을 짓을 자주 한다. 나는 제대로 혼을 낸 기억이 없다.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완벽하게 거짓말을 하는 아이. 함채빈 공부만 빼고 학교 생활은 정말 잘하는 아이. 친구들을 잘 도와주고 리더십도 꽤 있고, 처진 반 분위기를 올려주고, 싸움이 날 것 같은 상황에서 중간에 화해도 잘 시켜주는 친구. 사실, 성적 아닌 다른 것으로 대학 진학을 한다면 어느 대학이라도 합격할 수 있는 그런 아이 함채빈
“너 대학 입학이 문제가 아닌 건 알고 있지?”
“예?”
“네 성적으로는 졸업 사정회 때 졸업 못해. 유급대상자라고!”
“꼴찌 오브 꼴찌군요. 헤헤.”
“알긴 아네. 전교 꼴찌인데 웃음이 나오냐? 내가 너를 졸업시켜야 한다는 이유를 여러 선생님 앞에서 말씀 드려야 하는데 넌 웃고 있어? 너무 하는 거 아냐?”
“헤헤. 죄송해요. 선생님. 저 졸업하자마자 군대 지원해서 간다고 말씀 하시면 안 될까요?”
“와. 이런 총천연색 라이어 같은 놈. 야! 너 군대를 면제받는 조건은 다 갖추고 있잖아. 그런 거짓말을 나보고 하라고?”
“그거 선생님밖에 모르시잖아요. 제가 다리가 안 좋고,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거….”
“이런, 또 우울 모드로 표정 전환하셨네. 알았어. 내가 한 번 시도는 해본다. 됐지? 고개 들어 인마.”
졸업 사정회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고 진학에 관한 상담을 시작했다. 할머니에게 거짓말한 것은 잘못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할머니의 ‘네버 엔딩 잔소리’를 듣게 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채빈이. 그리고 재수라도 해서 4년제 명문 대학에 반드시 갈 것이라고 말하는 채빈이. 할머니께서 힘들게 일하면서 번 돈으로 요즘 스터디 카페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선생님은 너무 걱정하시지 말라고 너스레를 떠는 아이. 할머니에게는 자신이 잘 말씀드리겠다고 말하는 아이. 오늘도 ‘스카’에 가서 ‘열공’해야 하니 이만 가도 괜찮겠냐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아이.

일주일이 지난 후. 고등학교 동창들과 노래방에 갔다. 즐겁게 노래를 부르다 화장실에 가려고 나오는데 노래방 사장님과 말다툼하는 채빈이를 보았다.
“계산이 안 맞잖아요.”
“다음 주에 줄게. 손님이 없어서 지금 가게 사정이 좀 그래.”
“벌써 두 번째 이러셨잖아요. 저도 이제 애들 모아 올 수 없어요. 오늘 정산해주세요!”
“이 자식이 어디서 소리를 지르고!”
채빈이 주변으로 아이들이 모여들고 있어서 자칫 싸움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함채빈!”
내 소리에 채빈이가 고개를 돌린 채 놀란 표정이 되었다. 도망가려는 채빈이의 목덜미를 잡고 노래방 밖으로 나왔다. 따라오려는 아이들에게 채빈이는 괜찮다고 손짓하면서 모두 그만 가라고 말했다.

“여기가 스카냐?”
“노래방 이름이 스카이니까 비슷하잖아요. 헤헤”
앞에 있는 노래방 이름은 스터디 노래방이었다.
“스자 돌림이네.”
불꺼진 노래방을 보면서 내가 말했다.
“저기는 여기 노래방 사장님 부인이 하는 노래방인데 망했어요.”
“별 걸 다 알고 있네. 왜 공부하지 않고 거기 있었는지 상황이나 설명해봐.”
“스카이 노래방도 요즘 손님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제가 아이들 모집해서 손님인 척 노래를 불러요. 손님이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요. 그러면 아저씨가 일당을 줘요. 그런 알바 가고 있었어요.”
“삐끼였네. 할머니가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라고 주신 돈은 삥땅 치고 그러겠네.”
“아니에요. 선생님. 알바해서 번 돈이랑 할머니가 주신 돈이랑 다 모으고 있어요.”
채빈이가 휴대폰으로 자신의 통장에 있는 돈을 보여주었다. 꽤 많은 돈이 모여 있었다.
“할머니 몸이 많이 안 좋으세요. 언젠가 저 혼자 살아야 하잖아요.”
채빈이와 나는 한 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들도 먼저 간다고 인사를 했다. 어떤 친구는 채빈이가 제자인 것을 알고 용돈까지 집어주었다. 농담삼아 나에 대한 흉도 건넸다. 너무 학생 괴롭히는 꼰대 노릇하지 말라고 하며 친구들은 떠났다. 나는 사실 그 순간 다황하고 있었다. 대학 진학에 대해 채빈이에게 무엇인가 말해주고 싶었는데, 다 부질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채빈이 가방 사이로 삐죽 나온 전단지를 보았다.
“그건 뭐냐?”
채빈이가 가방을 열어서 보여주었다. 술집 전단지가 가득히 그곳에 있었다. 전단지를 돌리러 가야 한다며 채빈이가 일어섰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학 입학보다 먼 앞날을 바라보면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슬픈 청춘, 채빈이의 쓸쓸한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채빈이가 보이지 않게 되자 불 꺼진 ‘스터디 노래방’을 보면서 ‘나는 저 아이에게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떨궜다.

입시 일정을 모두 마치고도 한참이 지난 3월 말에 전화가 왔다.
“선상님. 고마워유. 광운대가 콤퓨타로 유명한 대학이라면서유. 그것도 장학생으로 입학시켜주셔서 고마워유. 등록금을 절반만 내도 되는 이런 횡재가 어디 있시유.”
채빈이 할머니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지 알 수가 없었다. 의문은 그해 스승의 날 찾아온 채빈이의 친구들 덕분에 풀렸다. 채빈이는 광운대학교 부설기관인 전자계산교육원에 입학한 것이다. 그곳은 면접으로만 뽑는 평생교육기관이기에 채빈이가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등록금도 대학교보다 덜 내도 되는 곳이었다. 할머니에게는 채빈이가 광운대에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10여 년이 흘렀다. 채빈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PC방 사장님이 되었다고 하면서 선생님께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 저 진짜 광운대학교 졸업했어요.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대학교에 꼭 입학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야 내가 네 엄마와 아버지 볼 낯이 있지 않겠니? 라고 말씀하셨어요. 할머니는 제가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을 다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제 자존심이 상할까 봐 그냥 속은 것처럼 말하신 것 같아요. 선생님이랑 진학 상담하고 오신 날, 너무 힘들어하셨거든요. 그리고 저에게 선생님과 잘 지내라고 하셨어요. 할머니가 이 세상 떠나고 나면 부모님 같은 어른 한 명이 네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학원에 다니고 대학에 합격했어요. 스카이 노래방 사장님이 PC방을 운영하시는 것을 도와드리다가 제가 인수 받게 되었고요. 여기 장사가 꽤 잘되는 곳이에요.”
“그렇구나. 할머니께서 하늘로 올라가서도 손자를 잘 돌봐주고 계시나 보다. 그러니까 네가 대학도 졸업하고 사장님도 되었고, 그렇지 않냐?”
“아니요. 선생님. 아니에요. 할머니는 지금도 제 옆에 계신 것 같아요. 일을 하다 보면 생각하지도 못한 행운이 일어나는 경험을 자주 했어요. 그런 날 전날에는 꼭 할머니 꿈을 꿨어요.할머니는 늘 제 옆에 계세요.”
채빈이의 책상에는 채빈이가 연필로 그린 할머니의 초상화가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 아이는 고 1때 교내 미술대회에서 대상을 탄 적이 있는 그런 친구였다. 미대 진학에 대해 상담을 하면서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연필을 부러뜨리며 미대 진학을 포기하겠다고 말한 아이였다. 상담실 문을 나서면서 할머니에게는 자신이 미대를 하고 싶어 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던 그런 아이였다.
활짝 웃는 할머니의 얼굴. 저 미소를 짓기까지 할머니께서 건너신 슬픔의 강이 얼마나 깊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당당하게 이야기했던 그 말씀 속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감추고 계셨을까? 그 자그마한 몸집에 거대한 우주를 품고 계셨던 할머니를 다시 뵙고 싶었다. 다시 뵐 수 있다면 꼭 안아드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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