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앤피뉴스 - [문경보의 진학상담이야기] 인명구조사 그리고 공인중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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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보의 진학상담이야기] 인명구조사 그리고 공인중개사

피앤피뉴스 / 기사승인 : 2024-12-20 10:5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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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구조사 그리고 공인중개사”

 

 

문경보


수련원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있었다. ‘뷰맛집’이라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강원도 해안 작은 도시에 자리 잡은 그곳에 도착한 나는, 그러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20여 년간 교사 생활을 했던 경험이 상담사의 길에 도움이 될 것이라 많은 이들이 덕담을 건넸으나 지시, 훈계, 명령에 익숙해진 나는 공감, 경청, 격려해야 하는 순간을 자주 놓치곤 했다. 교사의 옷을 벗고 상담사의 옷을 입기까지에는 아직 수련의 시간이 더 필요했던 그즈음. 교내에서 사고를 일으킨 소위 ‘문제아’들을 대상으로 집단 상담 프로그램 진행을 요청받았다. 남자 고등학교 교사, 청소년 상담사, 그리고 부모 교육 강사, 몇 번의 TV 출연을 했던 내 이력을 보고 담당 선생님께서 전화를 해오셨다. 처음에는 별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많은 상담사들이 경험하는 소진, 그러니까 슬럼프가 시작되었던 때였다. 그렇게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처음 대하는 유형의 집단 구성원 12명과 나는 마주하게 되었다.

첫 번째 시간. 자기 소개 시간. 우선 별칭을 짓고 그 이유를 발표하자고 했다. 친구들 발표가 끝나면 최대한 강렬하게 박수를 ‘갈기라우!’라고 했다. 발표자에게 세 번 이내로 질문을 하고, 발표자는 대답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그래서 어쩌라고?’, ‘그건 네 생각이고’, ‘그게 궁금해?’, ‘내 마음이야.’, ‘꼭 대답할 필요는 없잖아.’ 중에서 선택해서 말하라고 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낯설었는지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대답 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웃음을 띠기 시작했다. 별칭을 지을 때 주의할 사항은 연예인의 이름은 사용하지 말 것, 그리고 발표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욕은 하지 말 것, 만약 욕을 하고 싶으면 그냥 종이에 쓸 것! 이 시간이 끝나면 그 종이를 모두 태우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건넸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대답도 크게 하고 안내에 잘 따라 행동했다. 지방 아이들의 순수함인지, 교사를 처음 만났을 때 교사의 성격을 탐색하는 일종의 ‘간보기’인지 헤아리기는 어려웠으나 내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별칭 중에 눈길이 가는 별칭이 둘 있었다.

김탄. 드라마 ‘상속자들’에 나오는 이민호 씨가 맡은 배역 이름. 아이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연예인 이름을 직접 사용한 것은 아니라서 내가 뭐라 말하기도 애매하였다. 그리고 김탄이란 별칭을 지은 친구는 이민호 씨처럼 잘 생기고 재벌 2세처럼 귀티가 흘러서 별칭을 바꾸라고 굳이말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날카롭고 어두운 표정 때문에 말하기도 조심스럽기도 했다.

창조주. 시작할 때부터 여우가 일곱 마리 이상 들어앉은 것같이 능글거리는 표정과 거드름이 거슬리게 보이는 친구였다. 별칭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창조주가 같은 학년 아이들보다 세 살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을 싹 다 갈아엎고 새로 만들고 싶어서 지은 별칭’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무척 강한 상대를 만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나는 ‘신’, ‘전능자’, ‘파괴자’, ‘신세계’ 등의 별칭을 짓는 집단 상담원들을 여러 번 만났다. 어쩌면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창조주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자신의 존재를 아주 무가치하게 여기고 있는 친구일지도 몰랐다.

쉬는 시간에 창조주가 나에게 다가와서 고개를 숙이면서 악수를 청했다. 나는 얼떨결에 손을 마주 잡았다. 악수를 마치고 나서 창조주는 뻘쭘하게 옆에 서 있는 김탄에게 선생님께 정중하게 인사하라고 했다. 서울에서 우리를 위해 여기까지 오신 귀한 분이라고 했다. 김탄은 어색한 듯이 90도 각도로 몸을 숙이면 나에게 인사했다. 그 옆에서 김탄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창조주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문제는 두 번째 시간에 터졌다. ‘가족 역할 검사’와 ‘청소년용 문장 완성 검사’를 하는 순서였다. 가만히 검사지를 바라보던 김탄이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귀가 예민한 나는 욕을 하는 김탄의 소리를 분명하게 들었고, 맞은편에 앉아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보는 창조주를 눈과 마주쳤다. 김탄이 검사지를 찢기 시작했다. 함께 계시던 선생님께서 다가가는 것을 내가 손으로 제지했다. 다른 아이들이 익숙한 풍경인 듯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검사지를 작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둘러보던 김탄은 한숨을 크게 쉬고 나에게 인사를 하더니 상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선생님 두 분이 뒤따라 나가셨다.
“선생님. 이번 시간은 여기까지만 하시죠.”
창조주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계속 진행할 내용이 남아 있었지만, 아이들도 거의 다 검사지를 작성했고, 담당 선생님께서도 그러는 것이 좋다고 하셔서 일단 그 시간은 그렇게 마무리했다. 창조주가 아이들의 검사지를 걷어서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찢어진 김탄의 검사지를 한참 보던 한숨을 크게 내쉰 창조주가 공손하게 나에게 내밀었다. 그 검사지에는 아주 거친 글씨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지들이 뭘 안다고 그래. 아무것도 모르면서!!!!”
저녁 식사 시간에도 김탄은 식당에 나타나지 않았다. 창조주가 담당 선생님께 허락받고 김탄의 빵과 우유를 들고 식당을 나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선생님들과 다른 아이들은 나를 위로했다. ‘선생님. 저 아이가 원래 참 착합니다.’, ‘창조주가 친형처럼 늘 돌봐주고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원래 그런 자식이에요. 잘못했다고 금방 와서 지껄일 껄요.’, ‘맞아요. 창조주 형이 달래주고 우리가 같이 놀아주면 또 헤헤거릴 놈이에요.’ 내 표정이 너무 굳어 있었는지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내 마음을 돌봐주는 말을 건네주었다. 고마웠지만 마음이 복잡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 마음 한쪽에는 2박 3일 동안 여기 있지 말고 오늘 저녁 그냥 서울로 올라가 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수련원 주변을 걸었다. 밤바다 파도 소리가 들렸다. 차분하면서 규칙적으로 들리는 소리에만 집중하고 생각을 내려놓으려 했다. 심호흡을 계속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애당초 담당 선생님과 힘들면 중간에 그만하는 조건을 내걸기도 하여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은 가능한 선택사항이었다. 그런데 뭔가 승부욕 비슷한 것이 마음 한쪽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김탄의 행동에 깔린 사연과 마음도 궁금하고, 창조주에 대한 호기심도 커지기 시작했다. 알고 싶었고, 가능하면 그 청춘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싶기도 했다.
산책을 마치고 수련원으로 돌아왔다. 수련원 로비에 창조주와 김탄이 앉아 있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김탄을 아무 말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창조주의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왜 눈물이 났는지는 지금도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하겠다. 아마 김탄의 마음과 내 마음이 어떤 지점에서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창조주는 아주 어릴 때부터 김탄과 함께 자란 동네 형이었다. 아버지와 둘만 살고, 형제도 없는 김탄에게 창조주는 든든한 형 역할을 해주었다. 김탄이 기댈 남자는 창조주밖에 없었다. 김탄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술에 취하면 경운기를 몰고 멀쩡한 남의 논으로 들어가서 농사를 다 망쳐놓았다고 한다. ‘누가 날 막아! 누가 날 무시해!’라고 외치다가 경운기에서 굴러떨어지고, 경운기는 저만큼 혼자 가다 멈추고…. 그럴 때마다 김탄과 창조주가 함께 가서 아버지를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김탄이 초등학교 6학년까지 그 일은 반복되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도 처음에는 김탄에게 동정하는 마음을 보였으나 점점 야박하게 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등학교 2학년인 지금은 혼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싸움꾼으로 유명했는데 요즘은 조금 덜 싸운다고 했다. 모든 이야기는 창조주가 했다.
“선생님. 그래도 이 자식이 말입니다. 장래 희망이 뭔 줄 아십니까? 인명구조사가 되는 겁니다. 맨날 다른 사람들한테 구박만 받았는데, 자기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거 아닙니까? 대단하지 않습니까?”
“인명구조사가 되고 싶다고? 인명구조사라 …. 창조주! 너 정말 모르고 하는 말이냐?”
“예?”
“김탄이 왜 인명구조사가 되고 싶어 하는지 몰라서 하는 말이냐고?”
세 남자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김탄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창조주는 처음으로 겸손한 표정이 되어서 두 손을 비비고 있었다.
“내가 소설 하나 쓸게. 내 말이 엉터리라고 생각이 되면 ‘뭘 안다고 그래!’하고 직접 이야기해도 괜찮다. 내 눈에는 숨 막힐 것 같은 이 세상에서 누가 나를 구조해 주었으면 하는 김탄의 마음이 만들어낸 꿈으로 보인다. 그래서 참 마음이 아리다. 미친 자식. 김탄! 세상이 너에게 해준 게 뭐 있다고 그런 위험한 꿈을 꾸냐!”
“인명구조사가 위험한 일인 건 저도 알아요. 그런데 그렇게 야단맞을 정도로 위험한 건가요? 제가 그렇게 잘못하고 있는 건가요?”
처음으로 김탄이 입을 열었다.
“아니지. 아주 소중한 일이지. 너 정도 체격이면 잘 어울리는 직업일 것도 같고. 그런데 말이야. 너처럼 그런 사연을 갖고 그렇게 지나치게 절박한 마음을 갖고 그런 직업을 선택하면 자칫 사고를 당하기 쉬워. 다른 인명구조사들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야. 너는 다른 사람이 위험에 처한 모습을 보면 그냥 직진해 버릴 가능성이 커. 그 사람을 구하지도 못하고 너도 사고를 당하고 그럴 수 있어.”
“저보고 그 직업 포기하란 말씀인가요?”
“ 무엇을 먼저 정리할지 시간 두고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야. 내 말 듣고 금방 포기하는 것도 우습잖아. 내 생각엔 지금까지 살던 세상과 다른 곳에서 지내는 방법을 택하면 어떨까 한다. 남을 도와주고 싶은 네 마음을 실천할 수 있으면서도 여럿이 함께 지내는 그런 곳. 선생님도 정확히 말하기는 어려운데 그런 직업을 선택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그곳은 따스한 가족 같은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고 말이야. 네가 직진할 때 널 잡아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
내가 말을 맺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창조주가 김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야, 너 오늘 땡 잡았다. 이렇게 좋은 선생님. 어떻게 만나냐! 자, 선생님 말씀처럼 시간 두고 생각해 보자. 그만 들어가자. 선생님 피곤하시겠다. 선생님 안녕히 주무십시오.”
“김탄. 너 먼저 들어가라. 창조주랑 잠깐 이야기 더 해야겠다.”
창조주와 둘이 마주 앉았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거의 새벽까지 그런 상황으로 앉아 있었다. 견디지 못한 내가 먼저 물었다.
“넌 왜 네 이야기를 하지 않니? 김탄 이야기만 계속하고 ….”
“저 같은 것도 상담받을 수 있나요?”

그 겨울 동안 창조주와 세 번 상담했다. 두 번은 강원도에서, 한 번은 서울에서 했다. 만날 때마다 주로 실없는 농담과 긴 침묵으로 시간을 소비했다. 예상했던 대로 부모님에 얽힌 문제가 있었으나 창조주는 구체적인 사연을 말하지 않았다. 사연을 말하기에는 깊은 감정의 강을 넘어서기가 어려웠다. 세 번째 상담을 마친 후 상담을 끝내기로 생각한 나는 창조주에게 편지를 보냈다.
-답을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전한다. 다만 나는 네가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고 싶어 하는 친구란 것은 알 것 같다. 김탄이 인명구조사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하면 네가 알 수 있을까? 누구라도 너를 돌봐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좋은 형 노릇을 하게 해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숙제만 한 가지 너에게 내주고 이 상담을 마치려 한다. 네가 누군가에 드는 그 감정보다 더 아래에는 어떤 감정이 숨어 있을지 잘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너의 마음에 응어리진 그 감정의 반대에는 무엇이 있는지 가만히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거 한 가지는 분명하게 내가 너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는 참 따뜻한 마음을 가진 청년이다. 뜨겁다고 표현하는 것이 차라리 맞겠다. 너는 그런 성향을 품은 친구다. 그러므로 네가 앞으로 살아갈 때는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많이 베풀고 책임도 당당하게 질 수 있는 그런 길을 갔으면 좋겠다. 그래야 너의 힘든 기억들이 조금씩 고마운 시간으로 바뀔지도 모르니 말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창조주와 김탄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창조주가 예쁜 아가씨와 함께 나를 찾아왔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서 제법 규모가 있는 부동산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창조주가 가진 장점 중 하나가 ‘현명함’이라고 생각했던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아서 기뻤다. 곧 결혼할 예정이라는 참 기쁜 소식도 함께 가지고 왔다. 창조주는 나에게 주례를 부탁한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문경보 선생님.”
결혼식 날 예식장 로비에서 누구인가 나를 불렀다. 듬직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멋진 군인 한 명이 서 있었다. 직업 군인의 복장을 한 김탄이었다. 거수 경례를 한 뒤 격하게 나를 포옹했다.
“그동안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편안하냐?”
“예. 군대가 딱 제 적성에 맞습니다.”
“직업을 잘 선택했구나. 같이 근무하는 전우들이 김탄 덕분에 편안하겠구나.”
“아닙니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여전히 잘 생기고, 더 건장해진 김탄의 모습을 보면서 10년 전 그날이 바로 어제처럼 여겨졌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 이 친구들하고 상담을 매듭지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날 창조주와 신부, 그리고 하객들에게 이렇게 내 마음을 전했다.
“두 사람에게 부탁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주십시오. 꽃단장하고 서 있으면 그 모습 그대로 비춰주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지친 모습이면 그 모습 그대로 비춰주고, 기쁜 일이 있으면 기쁜 웃음 그대로 보여주고, 먼지로 뒤덮인 남루한 모습으로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울고 있으면 우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십시오. 그동안 혼자 지내느라 충분하게 외로웠으니, 이제는 함께 있어 주십시오. 한쪽이 다른 쪽의 거울이 되어 그 자리를 잘 지켜주다 보면, 먼지 묻은 모습으로 울던 그 사람이 어느 날 거울에 묻은 먼지를 따스한 입김 호호 불어가며 닦고 또 닦아주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신랑 신부의 마음과 지나온 길을 잘 아시는 분들이 많이 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두 사람이 길을 걸어가다 지칠 때면 둘 다 또는 각자가 쉬어가는 쉼터가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그래 주신 것처럼 이 친구들의 편안한 가족이 되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날 결혼식은 창조주와 종결 상담을 하는 시간인 동시에 상담사 혼자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오만함 비슷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첫걸음의 시간이었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교육전공 졸업
서울시교육청학부모지원센터 학부모교육 강사
자기주도학습 코칭전문가
문청소년진로연구소 소장
한국독서치료연구소 부소장
대광고등학교 진로진학 컨설턴트
서울 YWCA 청소년부 자문위원
한국 인성 교육협회 위촉교수
前 중동 중학교, 대광 중고등학교 국어교사
대광 고등학교 진로 교사, 상담실장, 생활관장
영락 고등학교 심리학 강사, EBS 출연교사
저서 「외로워서 그랬어요」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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