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앤피뉴스 - [문경보의 진학상담이야기] 커피와 눈물을 알아차린 바리스타

  • 구름많음장흥25.3℃
  • 흐림제천23.5℃
  • 흐림청주24.5℃
  • 흐림경주시28.2℃
  • 흐림속초25.0℃
  • 구름많음진주26.7℃
  • 구름많음고흥26.7℃
  • 구름조금서귀포28.5℃
  • 흐림거창24.8℃
  • 흐림철원24.3℃
  • 흐림정선군25.6℃
  • 구름많음순천23.5℃
  • 구름많음김해시27.1℃
  • 구름많음의령군26.0℃
  • 구름조금진도군27.7℃
  • 흐림대구28.3℃
  • 흐림태백24.4℃
  • 흐림정읍28.2℃
  • 흐림충주24.7℃
  • 흐림임실24.5℃
  • 구름많음영광군27.8℃
  • 흐림봉화23.4℃
  • 흐림영덕27.6℃
  • 천둥번개대전23.6℃
  • 구름많음거제27.4℃
  • 흐림천안24.0℃
  • 구름많음북창원27.5℃
  • 흐림동두천24.1℃
  • 구름많음울릉도27.3℃
  • 흐림영월24.0℃
  • 흐림청송군26.2℃
  • 구름많음양평24.4℃
  • 흐림서울25.5℃
  • 구름많음고창27.9℃
  • 구름많음순창군26.9℃
  • 흐림강화23.8℃
  • 비북춘천24.5℃
  • 흐림문경23.7℃
  • 구름많음북강릉24.6℃
  • 구름많음강진군27.2℃
  • 흐림영천26.9℃
  • 구름많음서산24.7℃
  • 흐림흑산도28.3℃
  • 흐림구미25.8℃
  • 흐림부여23.5℃
  • 비전주23.2℃
  • 흐림추풍령22.7℃
  • 구름조금창원26.4℃
  • 흐림원주24.1℃
  • 흐림동해28.2℃
  • 구름많음보성군25.3℃
  • 구름많음목포28.0℃
  • 흐림보은22.7℃
  • 구름많음이천24.4℃
  • 흐림춘천24.9℃
  • 흐림강릉26.5℃
  • 흐림보령26.1℃
  • 흐림장수22.4℃
  • 구름많음부산27.6℃
  • 구름많음광주27.3℃
  • 흐림상주23.6℃
  • 흐림의성26.0℃
  • 구름많음해남26.6℃
  • 구름많음홍천24.2℃
  • 흐림서청주23.1℃
  • 구름조금제주29.0℃
  • 구름많음북부산27.0℃
  • 구름많음성산26.2℃
  • 비홍성24.9℃
  • 흐림고창군27.6℃
  • 구름많음통영26.9℃
  • 흐림울진26.4℃
  • 흐림영주23.5℃
  • 흐림인제24.1℃
  • 구름조금고산28.6℃
  • 비안동22.8℃
  • 흐림세종23.6℃
  • 구름많음완도28.0℃
  • 구름많음남해27.5℃
  • 박무수원24.0℃
  • 흐림산청23.9℃
  • 구름많음인천24.9℃
  • 흐림합천26.4℃
  • 구름많음밀양27.7℃
  • 구름조금백령도22.2℃
  • 구름많음광양시26.7℃
  • 구름조금여수26.5℃
  • 흐림포항28.1℃
  • 흐림금산23.0℃
  • 구름많음양산시27.5℃
  • 구름많음울산27.8℃
  • 흐림부안
  • 흐림함양군24.2℃
  • 흐림파주23.8℃
  • 흐림남원26.5℃
  • 흐림군산23.9℃
  • 흐림대관령21.6℃

[문경보의 진학상담이야기] 커피와 눈물을 알아차린 바리스타

피앤피뉴스 / 기사승인 : 2024-12-09 11:05:40
  • -
  • +
  • 인쇄
“커피와 눈물을 알아차린 바리스타”

 




“이름이 강훈이라고? 2학년 3반 염강훈이라… 이상하네. 내가 수업 들어가는 반인데, 이름은 알겠는데, 왜 이렇게 얼굴이 낯설지? 혹시 전학 왔니?”
어이없다는 듯 픽 웃는 강훈이.
“저도 선생님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네요. 상담실 앞을 지나가다가 울고 나오는 아이들을 몇 번 봐서 걔들이 왜 그러는지 궁금해서 그냥 들어와 봤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몹시 실망했다는 어투로 빈정대며 상담실을 나가려다 다시 돌아서서 이야기하는 강훈이.
“아! 그리고 저 전학 온 거 맞아요. 3월에 왔으니까 석 달 정도 지났네요. 매일 잠만 자니까 선생님께 제 얼굴 보여드릴 기회가 없었겠네요.”
계속 말을 이어가려는 아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누르면서 고개를 숙이게 했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라면서 짜증이 난 표정을 짓는 강훈이.
“아! 이제 알겠다. 이 대가리, 아니 정수리. 그래 이건 내가 확실하게 알겠다. 내가 다가가면 일부러 반대쪽으로 얼굴을 돌리던 모습도 기억난다. 근데, 뭐야. 얼굴이 왜 이렇게 잘 생겼어. 그래서 그렇게 얼굴 안 보여주려고 했구나. 꽤 비싼 얼굴인 것은 일단 인정!”
내 너스레에 마음이 열렸는지 상담하고 싶은데 언제 오면 되는지 물어보는 강훈이.
“뭐야. 이거. 목소리까지 좋잖아. 아! 정말 신은 불공평하다. 왜 다 너에게 잘생긴 얼굴과 편안한 목소리까지 모두 주셨지. 이거 열등감 느껴서 어디 선생 하겠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차갑게 바라보기만 하는 강훈이.
“알았다. 네 질문에 대답할게. 자 여기 상담 신청서 먼저 작성해라. 시간은 오늘 방과 후나 내일 점심시간 중에서 선택해라. 내가 수업 없는 시간이 내일 오전 2교시인데, 그 시간도 괜찮다. 그때 하고 싶으면 교과 담당 선생님께는 내가 미리 말씀드릴게.”
“방과 후에 할게요.”

“중학교 때 자해를 자주 했어요. 늘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쉴 수가 없을 때 자해하고 나면 편안해졌어요. 지갑에 늘 칼을 넣고 다녔어요. 엄마가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미안한데 멈추기가 어려웠어요. 담임 선생님께서 저를 위해서 애를 많이 써주셨어요. 덕분에 상담도 받았고 약도 먹었지만, 효과는 없었어요. 혼자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같이 자해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어느 날 저를 손절했어요. 저 때문에 같이 자해까지 해줬는데 더 이상 저를 견딜 수가 없다고 했어요. 재수가 없다나요. 다행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후로 자해는 멈추게 되었어요.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지냈어요. 친구들하고도 잘 지냈고요. 그런데 저와 같이 있는 게 힘들다면서 같이 지내기 싫어하는 친구들이 늘어났어요. 이해할 수가 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한 친구에게 화를 냈고, 그러다가 학폭이 열리고 저는 강제 전학을 당했고, 그래서 이 학교까지 왔어요.”
나는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고 강훈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선생님. 왜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안 물어보세요? 제 어린 시절은 어땠고, 엄마 아빠는 어떻고, 그때마다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제 안에 어떤 어린아이가 있는지 왜 안 물어보세요?”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뭔지 손에 잡히지 않아 서성거리는, 비에 젖어 오들거리는 참새의 모습을 한, 오랜 기간 상담을 하면서 벌거벗겨진 흔적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한 청춘을, 나는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기만 했다.
“선생님. 제가 나쁜 놈인 거죠? 그래서 벌 받는 거 맞죠? 그래서 사람들이 절 떠나는 거죠? 저는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쓰레기 같은 놈이죠? ”
지나간 시간과 지금 시간의 외로움을 참고 참느라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힘마저 약해진 아이. 또 세상이 자기를 버리고 떠날까봐 만남부터 시작하기가 두려워서 세상을 외면해야 하는 아이. 그래서 수업 시간에는 잠을 자야 했고, 이제는 타인과 얼굴을 마주할 힘조차 없어져서 나와 이야기할 때도 아래만 쳐다보는 친구. 염강훈. 나는 최대한 냉정해야 했다. 그래야 강훈이의 나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와 감정을 균형감 있게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나는 아주 살며시 심호흡을 길게 두어 번 하고 난 뒤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넌 지금 아픈 상태야. 나쁜 놈이 아니고 아픈 사람이야.”
“아프다고요? 아픈 것은 뭐고, 나쁜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데요?”
“억울하고, 외롭고 그래서 화가 나고, 거기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나쁜 것과 아픈 것은 비슷하지. 그런데 나쁜 사람은 다른 사람이나 주변에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게 되지. 아픈 사람은 자신을 공격하는 행동을 하지. 다른 사람에게는 걱정을 끼치는 거고.”
“그게 그거 아니에요? 저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그래서 저는 쓸모없는 나쁜 놈이잖아요.”
“지금은 아니잖아. 지금 너는 자해도 하지 않고, 친구들에게 공격적인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잖아. 그냥 혼자 있잖아. 강훈아. 아픈 사람은 치료하면 회복할 수 있어. 치료하는 동안 시간이 필요하지만 말이야. 넌 지금 시간이 필요해.”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데요?”

그 후로 강훈이와 꽤 여러 번 상담했으나 강훈이의 무기력증과 우울증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수업 시간에는 잠만 잤고, 어쩌다 복도에서 나와 마주치면 애써 웃음 지으며 힘없이 인사를 했다. 상담교사, 특히 학교에서 상담교사가 한계를 느끼는 것은 학생들의 고민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고민에 대한 분석. 그리고 고민을 풀어나가는 시작 이상은 이야기해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처럼 마음이 여린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고민의 의미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학생 스스로가 노력해야 하는 영역이 너무 넓다는 것, 그리고 강력한 상담사인 시간과 경험의 힘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강력한 상담사들, 그러니까 시간과 경험이 강훈이의 고민을 풀어주는 마법의 현장을 나는 보게 되었다.

어느 늦은 가을. 진로 수업 시간에 카페와 바리스타를 주제로 연구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연구수업을 위해 하루 전 8시간 동안 내린 더치 커피와 내가 직접 구운 과자를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수업에 참관하신 선생님들께도 나눠드렸다. 커피를 마시는 것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유자차도 함께 준비했다.
“자. 알바생이 필요합니다. 2학년 3반에서 가장 카페 알바생스럽게 생긴 친구 세 명이 써어빙을 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임금을 주지 않고 노동을 시키면 안 되니, 오늘 알바생들에게는 이 예쁜 머그 잔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손을 들었다. 그런데 강훈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왔다. 손을 든 아이들도, 손을 들지 않은 아이들도, 수업에 참관하고 계신 선생님들도 순간 모두 얼음이 되었다. 강훈이가 일어나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반 아이들의 주목하게 했고, 앞치마까지 준비해서 입고 나온 모습이 선생님들의 관심을 끌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연구수업 때 알바생 역할을 할 친구가 필요하다는 내 말을 짝에게 듣고 미리 준비해 온 것이었다.
“제 어머니께서 작은 카페를 하고 계십니다. 저는 그곳에서 어머니 일을 자주 도와드립니다. 우리 반에서 카페 알바는 제가 가장 오래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최고의 카페 알바라는 것이죠.”
낮게 울리는 목소리와 차가운 도시 남자 같은 이미지, 무엇보다 평소에 말을 하지 않는 강훈이의 너스레에 반 친구들은 강훈이의 이름을 연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세련되게 커피와 과자, 음료를 나누는 강훈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울컥했다. 어쩌면 이 순간이 저 아이의 아픔을 치유하는 출발점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 지금 여러분이 드시는 더치 커피는 커피의 눈물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습니다. 커피를 내릴 때 방울방울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만든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 더치 커피는 여러분과 한 몸이 되기 위해서 어제 여덟 시간 동안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더치 커피 이외에 다른 커피에도 커피의 눈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릴 때가 그렇습니다.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릴 때 가늘게 또는 방울방울 떨어지는 커피를 보면 커피의 눈물 같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그렇지만 선생님도 살아가면서 힘든 날들이 많았습니다. 답이 안 보이는 삶의 길에서 너무나 억울하고 외로웠던 적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어느 비 내리는 날, 커피를 내리다가 크게 울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나니 속이 후련해졌고, 그때 마신 커피는 참 맛이 깊었습니다. 그 이후에 비 내리고 바람 부는 창밖을 보면서 울고, 방울방울 떨어지는 커피를 보면서 울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니까 이젠 우울할 땐 습관적으로 커피를 내리게 되었어요. 커피를 내리면 마음이 차분해져요. 마음이 차분해지니까 덜 울게 되고요. 그래서 알았어요. 그동안 나는 아프다고 표현하지 않고 참기만 했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래서 선생님은 선생님 대신 울어주는 커피의 눈물을 보면서 평안을 찾곤 합니다. 커피 바리스타분들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답니다.”


이야기하는 동안 핸드드립 커피를 다 내렸다. 두 잔이 나왔다. 커피 두 잔을 놓고 반 아이들에게 누구에게 커피를 드리면 좋을지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모두 교장 선생님께 드리자고 했다. 내가 교장 선생님께 커피를 드리면서 남은 한 잔은 누가 마시면 좋을지 여쭤보았다. 교장 선생님께서 오늘 수고를 가장 많이 한 저 영화배우 친구에게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셨다. 강훈이는 교장 선생님께 구십 도로 절하고 커피를 한참 바라보다가 조금씩 마셨다. 울고 있었다.


“자 이제 오늘 수업을 마무리하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얼마 전에 여섯 명의 친구와 함께 공동 투자를 해서 자그마한 카페를 마련했습니다. 우리들은 그곳을 각자의 일터에서 일하다 힘들면 쉬는 장소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만이 아니라 많은 이웃도 그런 쉼터로 활용하도록 운영하자고 했습니다. 음료를 마시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수다를 떨고 그런 장소가 되었습니다. 짐작하겠지만 돈이 되는 일들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쓸모 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수입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카페를 운영하고 바리스타에게 월급을 줄 정도는 됩니다. 지역사회를 위한 작은 행사도 간간이 합니다. 그 카페를 통해서 금전적 이득은 얻지 못했지만 세상을 살아갈 때 에너지는 충분히 얻습니다. 우연히 큰 규모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전체를 운영하는 분을 만나게 되어서 우리 카페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그랬습니다. 좋아하는 커피와 함께 지낸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평등하게 행복한 직업, 내가 행복하고, 우리가 즐겁고, 에너지를 얻고, 그 기운을 그 누군가와 함께 하면서 이웃에 감사를 표현하며 사는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카페를 운영한다는 것은 행복한 바리스타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음 해 겨을, 고3 강훈이가 상담실에 들어와 수줍은 표정으로 자신이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나에게 주었다. 그러면서 겨울 방학부터 일 년간 어머니 대신 카페를 운영하게 되었다고 했다. 바리스타 시험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강훈이를 안아 주었다. 그리고 한 해가 흘렀다. 곧 카페가 문을 닫을 예정인데, 선생님을 초대하고 싶다고 하였다. 남은 한 달 동안 고마웠던 분들에게 대접하고 싶어서 그렇다고 했다. 정년 퇴임하신 교장 선생님께서도 다녀가셨다고 했다.
“카페가 너무 작죠?”
“너 혼자 운영하기에는 딱 좋은데. 친근감도 느껴지는 것이 단골이 많겠다.”
강훈이와 카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한 여성분이 가게로 들어와서 말했다.
“주세요.”
강훈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샷을 추가한 대형 커피를 내주었다.
“근데, 정말 다음 달에 문 닫아요. 아이, 서운해서 어째?”
“이 건물 헐리고 새로 짓잖아요.”
“그럼 요 옆에다 하면 되잖아. 내가 가게 알아봐 줄까?”
“저 내년에 군대 간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원장님. 헤어샵에 손님 올지 모르잖아요. 어서 가세요.”
“또 거리가 느끼게 원장님이란다.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알았어요. 이모님 어서 가세요. 커피 너무 많이 마시지 마시고요.”
미소를 잔뜩 머금은 미용실 원장님과 차가운 표정의 바리스타의 대화가 우스워서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키득거렸다.
“오늘 벌써 석 잔째 주문이에요. 지난주까지는 하루에 두 번 오더니 이번 주에는 너무 자주 와요. 아마 헤어 샵에 카페를 차리려나 봐요.”
강훈이의 외모 덕분인지, 깊은 커피 맛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카페는 비교적 많은 여성 손님이 드나들었다.


“선생님께 말씀 안 드린 게 있어요. 제가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어요. 아버지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나 봐요. 저는 제 얼굴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몰라요. 사진을 보면 아버지와 너무 닮았거든요. 그래서 남자 어른들이 싫기도 했어요. 그런데 진로 수업하던 그날 교장 선생님께서 저에게 영화배우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이 꼭 아버지의 말씀처럼 따뜻하게 들렸어요. 제가 아버지를 무척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왜 그렇게 늘 외로워했는지, 사람들이 저를 떠나는 것에 예민했던 이유도 알게 되었구요. 뭐라고 할까요? 마음에 있던 얼음송곳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어요. 그 후에도 커피를 보면 자꾸 눈물이 났어요.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해주셨던 말씀이 기억나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애써 억눌러놓았던 눈물을 정말 많이도 뱉어냈어요. 저도 모르게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어요. 처음에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몰랐어요. 그러다가 저에게 하는 말이란 것을 알았어요. 그때 알았죠. 아! 이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아픔을 치료하는 것이구나! 교장 선생님께서 그러셨어요. 제가 아무리 표정을 차갑게 해도 사람을 많이 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제가 속정이 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라고요. 아까 헤어샵 원장님도 비슷한 말을 하셨어요. 전에는 제 무표정한 얼굴을 남이 알아보는 것이 싫었는데, 이젠 괜찮아졌어요. ”

한 달 후에 강훈이가 운영하던 카페는 문을 닫았다. 강훈이는 두 계절 동안 외국 여행을 하고 군에 입대하고, 제대하고 다시 외국 여행을 떠났다. 커피와 관련 있는 곳, 작은 카페가 있는 곳을 주로 여행한다고 하였다. 경비가 부족하면 그곳에서 알바를 하여 마련하고 있다고 하였다. 여행 기록을 담아 영상으로 제작하면서 어머니께 보내드리는 것도 큰 재미라고 하였다. 이젠 어떤 바리스타가 되어 어느 곳에 정착할지 생각 중이라고 하였다. 선생님처럼 다른 이들과 함께 지내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고 하였다. 수업 시간에 잠만 잤던 한 아이가 온 세상을 자유롭게 떠돌며 많은 이들을 만나고, 이젠 터를 잡아 안정된 생활을 계획하고 있는,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기적의 순간을 나는 강훈이 덕분에 경험하였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교육전공 졸업
서울시교육청학부모지원센터 학부모교육 강사
자기주도학습 코칭전문가
문청소년진로연구소 소장
한국독서치료연구소 부소장
대광고등학교 진로진학 컨설턴트
서울 YWCA 청소년부 자문위원
한국 인성 교육협회 위촉교수
前 중동 중학교, 대광 중고등학교 국어교사
대광 고등학교 진로 교사, 상담실장, 생활관장
영락 고등학교 심리학 강사, EBS 출연교사
저서 「외로워서 그랬어요」외 다수

 

[저작권자ⓒ 피앤피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ISSUE

뉴스댓글 >

많이 본 뉴스

초·중·고

대학

공무원

로스쿨

자격증

취업

오피니언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