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73.6%는 일 경험자…“눈이 높다” 비판은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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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의 최소 조건 기업 |
[피앤피뉴스=마성배 기자] “첫 직장에선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 믿었지만, 현실은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이제는 직장에 그런 기대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이모 씨, 31세)
대학내일이 고용노동부 지원으로 전국 청년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의 하한선’ 조사 결과, 청년들이 말하는 일자리의 기준은 고연봉이나 대기업식 복지가 아니었다. 청년들이 가장 먼저 꼽은 최소 조건은 “청결한 화장실”이었다. 이어 사내 식당·카페, 혹서기·혹한기 냉난방, 휴게실 순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참여한 청년들은 직장을 떠난 이유로 열악한 근로 환경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서모(33) 씨는 “사무실 냉난방이 잘되지 않아 겨울에는 롱패딩을 입고 손난로를 들고 일했다”고 했고, 윤모(27) 씨는 “남녀공용 화장실 악취 때문에 참다 방광염까지 걸렸다”며 당시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토로했다.
김모(34) 씨는 “정수기 물조차 눈치를 주는 회사에서 뭘 더 할 수 있었겠나”라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터’야말로 청년들이 떠나는 결정적 이유라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의 ‘쉬었음’ 청년은 약 40만 명, 이 중 73.6%는 직장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가길 주저한다.
김모(32) 씨는 “이전 직장에서 인격모독성 폭언을 당해 큰 내상을 입었다”며, “적어도 법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회사에서 다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모(30) 씨는 “아직도 감정 쓰레기통 취급하는 상사가 많다”며 “그런 경험이 반복될까 두려워 취업 시도를 망설이게 된다”고 밝혔다.
청년단체 ‘니트생활자’ 전성신 대표는 “쉬었음 청년 대부분은 취업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난 경험이 너무 나빠 다시 반복될까 두려운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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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었음 청년 40만 중 73.6%는 일 경험이 있는 청년(출처: 통계청) |
조사 결과, 청년들이 원하는 최소한의 조건은 연봉 2823만 원, 편도 통근시간 63분 이내, 주 3회 이하의 추가 근무였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강조한 것은 “야근 수당, 기본 복지, 합리적 근로 환경 같은 상식”이었다.
최모(29) 씨는 “야근이 싫은 게 아니라, 의미 없이 밤 10시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게 문제”라며, “야근 수당도, 식대도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청년은 “서울에서 월세와 생활비를 쓰고 100만 원은 저축하려면 실수령 230만 원은 돼야 한다”며, 연봉이 아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준’을 이야기했다.
기업들은 “적합 인재 부족”을 이유로 채용난을 호소하지만, 정작 구직자 100명당 일자리는 39개뿐이다(고용노동부). 또 많은 기업이 ‘모든 스펙을 갖춘 지원자’를 원하면서도 기본 근로 환경은 보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윤동열 건국대 교수는 “청년들이 다시 취업하지 않는 이유는 일자리의 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첫 직장의 부정적 경험 때문”이라며, “단기 지원책보다 장기 근속이 가능한 최소 기준, 즉 ‘일자리 하한선’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자리 하한선이란 임금뿐 아니라 안전한 근로 환경, 합리적인 근로 시간, 기본적 복지제도, 성장 가능성을 포함한다”며, “이 기준이 보장돼야 청년이 다시 노동시장으로 돌아오고, 기업도 장기적으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앤피뉴스 / 마성배 기자 gosiwee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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