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열나게 얻어맞다
설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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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아침이면 사장님이 쓰레기 청소요원이 된다. 쓰레기통을 아예 엎어놓고 분리수거된 것도 다시 분류하여 정리한다. 건물 자체에 청소부가 따로 없는 데다 아무래도 주인의식이 가장 발동한 사장님의 손이 앞서 움직이는 모양이다. 늘 하는 일이지만 어떤 날엔 사장님의 목소리에 기압이 들어가 있다. 분리용품을 확인하지 않고 쓰레기를 던지는 직원들의 소행도 그렇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먼저 청소하는 사람이 없다. 이제는 으레 ‘사장님이 치우겠지.’ 라는 생각도 없지 않은 듯하다.
주중 드나드는 직원들 때문에 입구에 있는 신발먼지털이 깔판도 지저분해지기 일쑤다. 깔판 청소도 정해진 사람이 없기에 마음 내키는 사람이 해야 한다. 문제는 아무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 밀대걸레로 로비를 한 번 닦아야 한다는 걸 느끼면서도 생각 따로 몸 따로 일 때가 여러 번이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아니면 그냥 지나치는 게 일반이다.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기, 자기 맡은 임무에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오히려 오지랖 떨지 않는 배려일까. 조금이라도 도와달라고 말했다가 상대방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마지못해 거들어주는 모습에 당황한다. 거절 못하고 억지로 하는 그 불편한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한편 의아하기 그지없다. 부탁을 들어주는 것도, 더군다나 솔선수범하는 것도 싫은 사람들, 도움이 필요해도 인터넷 검색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 그게 현실이다.
어느 금요일 오전이었다. 사장님이 사무실 건물 마당 잔디밭을 청소하다가 가장 젊은 직원 둘을 불러낸다. 같이 하고 빨리 마치자는 거다. 빗자루 찾고 목장갑 찾고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오는 새파란 직원들. 사장님은 불이 나도록 잔디밭 위 검불을 긁어대는데 젊은 직원들은 멀뚱거리는 눈으로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 젊은이들이 일머리를 익히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긴 한데, 풀 한 포기 뽑는 데도 벌레가 손등 위를 기어오를까봐 노심초사하는 폼이 가관이다. 그러나 사장님이 이런들 어떡하고 저런들 어떡하리.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잔디밭이 이발을 하고 수염도 깎고 로션도 바른 듯 인물이 훤해졌다.
직원들은 사무실로 들어가고 사장님은 또 일이 눈에 밟힌다. 이것이 문제다.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보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입구에 깔판이 청소를 하다만 듯 지저분하다. 사장님이 깔판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밖으로 나가더니 가로수 팽나무를 대놓고 두들겨 팬다. 갑자기 깔판으로 맞고 있는 팽나무도, 나무에다 볼때기를 후려침 당하는 깔판도 놀라 자빠질 지경이다. 사장님의 팔뚝은 팽나무둥치처럼 굵직하다. 이 상황을 어쩌다 지켜보던 나도 정신이 얼얼하다. 사장님 인상이 안 봐도 비디오다. 눈은 도깨비 눈, 코에서는 콧김이 쉭쉭, 입은 돌멩이를 문 듯하고, 원래 새까만 낯빛은 아마 검붉어졌으리라. 어쩌면 너무 힘을 쓴 나머지 등과 허리 근육까지 뜨끔했으리라.
이날 이후, 애꿎게 얻어터진 팽나무는 사장님만 지나가면 눈을 감아버린다. 아직도 멍이 시퍼렇게 든 둥치로 겨우 버티고 선 나무가 되어 그날을 잊지 못하는 듯하다. 사무실 로비 입구의 깔판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언제나 떨어지는 구둣발의 흙을 마른침 삼키듯 한다. 사장님은 스트레스를 열나게 풀었으니 미련이 없어 보이고, 이 일을 아예 알지도 못하는 젊은 직원들은 무심코 팽나무 앞을 지나다니고 깔판을 짓밟으며 다닌다.
사무실 환경운동을 좀 더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사장님께 말해본다. 청소 당번도 정해야 한다고 재차 의견을 내본다. 꼭 그런 것을 정해야만 일이 돌아가느냐는 반문이 구겨진 종이처럼 내 앞으로 떨어진다. 시대는 완전히 달라졌고 따라서 사람들 사고도 달라졌다고 보고하려다 그만둔다. 사장님과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줄타기가 너무 어렵다.
설성제
2003년 예술세계 수필 신인상
울산문인협회 회원
한국에세이포럼 편집장
지역 도서관 문예창작 강의
저서 「거기에 있을 때」외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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