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피첩(霞帔帖) - 노을빛 치마로 만든 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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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평오 교수 |
1첩에는 가족공동체와 결속하여 소양을 기르고, 2첩에는 자아를 확립하고 몸과 마음을 닦아 근검(勤儉)하게 살며, 3첩에는 문과 처세술을 익혀 훗날에 대비하라는 가르침이 적혀있다. 하피첩 1첩의 서문에는 아래와 같은 서첩 내력이 쓰여있다.
“내가 탐진에서 귀양살이 하고 있을 때, 병든 아내가 낡은 다섯 폭(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딸에게 보내는 이력에는 여섯 폭으로 되어 있어 아마도 여섯 폭을 착각한 듯하다)의 치마를 보내왔다, 그 치마는 시집올 때의 신부 예복으로 붉은빛은 흐려지고 노란빛은 옅어져 글씨를 쓰기에는 알맞았다. 이것을 잘라서 작은 첩(帖)을 만들고, 손 가는 대로 훈계하는 경구를 써서 두 아들에게 준다. 바라기는 훗날 이 글을 보면 감회가 생길 것이고, 두 어버이의 아름다운 은택을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그리는 감정이 뭉클할 것이다. 이것을 ‘하피첩(霞帔帖)’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붉은 치마(홍군-紅裙)를 달리 표현한 말이다. 경오년(1810년) 다산(茶山)의 동암(東菴)에서 쓴다”.
초로의 병든 아내는 왜 유배지에 있는 남편에게 이 빛바랜 치마를 보냈을까. 가례를 치르던 날 그토록 붉고 선명하던 붉은 색 활옷 치마는 이제 낡을 대로 낡고 빛이 바래 노을빛만 남았는데.... 다산에게도 수 많은 감정과 상념들이 휘돌아 갔을 것이고, 다산이 아내의 마음을 읽었는지 보내온 치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위로 조각조각 정성스럽게 잘라 배접을 하고 첩(帖)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경계하는 말을 지어 보낸 것 같기도 하다.
또한 하피첩을 써서 보낸 준 다음, 귀양살이 13년 째인 1813년에 남은 치마로 1812년에 시집간 딸에게 “매화병제도(梅花屛題圖)” 또는 “梅鳥圖(매조도)” 라는 그림(고려대 박물관 소장)을 그려 보내 주었는데. 이 매조도의 그림 아래에는 네 글자로 된 詩經(시경) 풍의 시를 적고 시 옆에 매조도를 그려 보내는 아래의 마음(매조도를 그리고 시를 쓴 이유)을 담고 있다.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이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홍 부인이 낡은 치마 여섯 폭을 보내왔다. 세월이 너무 오래돼 붉은색이 다 바랬길래 이를 잘라 네 첩으로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었다. 그 나머지로 이 작은 그림을 그려 딸에게 전한다. 계유년 1813년 열수옹(冽水翁)이 다산의 동암에서 쓴다”.
매조도에 있는 시에는 “펄펄 하늘을 나는 새들이 우리 집 뜰 앞 매화 가지에서 쉬는구나. 꽃다운 그 향기 은은하기도 하여 즐거이 재잘거리려 찾아왔나 보다. 이렇게 이르러 둥지를 틀고
너희는 네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 꽃은 이미 활짝 폈으니 이제 토실한 열매가 많이 달리겠구나”라고 적혀 있다. 이에 대하여 정민 교수는 “너도 지금은 한 사람의 아내요, 자식을 기르는 어머니가 되었으므로 형제간에 우애롭고 가족간에 화목하게 지낼 수 있도록 네가 노력하면 저 예쁜 꽃이 진 자리에 토실토실하고 알찬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리듯 네 집안에 기쁘고 즐거운 일이 언제나 가득하게 될 것”이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한다.
사실 다산 정약용은 젊은 시절에는 약동하는 정신이 살아 있어 글과 행동이 무척 기상적이었지만 긴 유배시절의 글에서는 부모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자의식이 뚝뚝 묻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하피첩도 같은 맥락인가 보다. 사실 다산은 6남 3녀의 자식을 두었지만 4남 2녀는 마마(천연두)등으로 잃게 된다. 그래서 다산은 예방접종을 통해 마마를 치료하는 종두법의 도입을 주장하는 麻科會通(마과회통)을 저술하게 되는데 이 책에서는 모두 조선의 의서 5종을 비롯하여 무려 63종의 의서를 인용하고 있다. 자식을 잃고서 마과회통의 저술이 필요하다는 것에 더욱 절감했나 보다.
사실 다산은 500여권을 저술한 방대한 저술가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 이른바 '1표 2서'라 불리는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는 다산의 주요 저서로 꼽힌다. 그런데 유배 기간중에 지방 목민관(牧民官)의 치민(治民)에 관한 요령과 감계(鑑戒)가 될 만한 마음가짐과 태도 등을 기술한 ‘목민심서’, 관제·군현제와 전제(田制)·부역·공시(貢市)·창저(倉儲)·군제·과거제·해세(海稅)·상세(商稅)·마정(馬政)·선법(船法) 등 국가 경영에 관한 일체의 제도 법규에 대하여 적절하고도 준칙(準則)이 될 만한 것을 논정(論定)한 ‘경세유표’ 등을 저술하였다는 것에 놀랐다. 오히려 고난을 겪음으로써 학자로서의 탁월한 능력이 발휘된 것은 아닌가? 참고로 다산의 형인 정약전도 귀양살이 하던 중에 물고기의 생태를 기록한 ‘자산어보’라는 명저를 남겼다.
정약용은 세계적으로도 빚나고 있는데 유네스코는 2012년에 세계기념인물로 루소, 헤르만해세, 드뷔, 정약용 4인을 선정하였는데, 그중 다산 정약용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등재되었다. 그 뒤 김대건 신부가 2021년에 세계기념인물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필자가 이렇게 다산의 하피첩에 대하여 칼럼을 쓰는 이유는 다산이 비록 귀양살이를 하고 있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위대한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하피첩에 담겨져 있어 이런 것을 환기시키 위함이다. 가족은 자기 삶의 가장 평안하고 안온한 울타리인데 18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생활했던 다산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들면 더욱 더 그렇다.
지금은 혼인한 아들과 딸 등의 가족은 자주 왕래도 가능하고 혼인하지 않으면 함께 살기도 하니까 다산이 겪었던 시절에 비하면 훨씬 편안하게 가족과 유대관계를 더욱더 친밀하게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뉴스를 보면 가족과의 대화라든가 친밀관계가 소원하여 부모가 자식의 현 상황을 잘 알지 못하여 사건 사고가 생기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예를 들어 최근 명문 의대생이 여자 친구를 살해하는 비극이 발생했는데 만약 가족 간의 대화를 많이 하여 부모와 자식사이에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었다면 사고가 발생했을까하는 것이 필자의 짧은 생각이다.
끝으로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이하여 이 글이 다시 한번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고려대학교 법학과 박사과정 수료(민사소송법 전공)
한국 민사소송법학회, 민사집행법학회, 도산법학회 회원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민사절차법연구센터 전임 연구원
한빛변리사학원 민사소송법 전임교수
특허청 및 특허심판원 민사소송법 전임교수(2008.3∼20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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