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전일제, 무늬만 시간선택제…당사자 63.2% “불만”
[피앤피뉴스=마성배 기자] 10년 전 ‘일과 가정의 양립’을 내세우며 야심차게 출범한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제도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출범 취지는 좋았으나, 낮은 처우와 비현실적 제도 운영 등 시간선택제 공무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전국시간선택제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정성혜, 이하 시간선택제노조)은 오는 9월 5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정현·이해식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 공동 주최로 <실패한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제도 폐지를 위한 국회토론회>를 연다.
이번 토론회는 한국노총, 공무원노조연맹과 시간선택제노조가 주관하며, 오랜 기간 누적된 제도의 구조적 문제와 개선 대안을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
제도 도입 당시 정부는 여성 경력단절 예방과 유연근무제 확산이라는 명분을 앞세웠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운영 실태는 취지와 거리가 멀다.
시간선택제노조가 올해 7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 1,095명의 시간선택제 공무원 중 80.6%가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 중 절반 이상(54.5%)은 최근 6개월간 월 21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일제 공무원의 평균 노동시간에 근접한 수치다.
문제는 이처럼 유사한 업무량에도 불구하고, 시간선택제 공무원들은 보수·수당·승진 등 모든 측면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응답자의 91.4%는 “전일제와 업무 차이가 없다”고 답했으며, 70%는 “퇴사를 고민한 적 있다”고 밝혔다.
정성혜 위원장은 “같은 시험을 보고 들어왔는데, 근무시간을 이유로 정년까지 차별받고 있다”며 “이 제도는 더 이상 존치할 이유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제도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일선 행정기관에서도 나타난다. 시간선택제노조가 올해 2월, 전국 220개 지방자치단체 인사담당 부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7.7%(171개 기관)가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전년도(72.97%)보다 상승한 수치다.
폐지를 원하는 주요 이유는 짧은 근무시간으로 인한 업무 공백(69%)과 보직 부여의 어려움(55.9%)이었다. “업무 연속성 유지가 어렵다”, “긴급 상황 대처가 불가능하다”는 등의 지적이 줄을 이었다.
중앙부처도 상황은 비슷하다. 4월 진행된 48개 중앙행정기관 설문조사에서는 60.4%(29개 기관)가 폐지를 희망했다. 이들 역시 동일 업무를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행정처리, 성과 평가, 승진 인사 등 전반에서 차질이 발생하고 있음을 이유로 들었다.
시간선택제노조가 실시한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당사자인 공무원들의 불만도 심각하다.
응답자의 63.2%가 제도에 대해 ‘매우 불만’ 또는 ‘불만’이라고 평가했으며, 무려 67.6%는 “현재 맡은 업무가 시간선택제 근무 형태와 맞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한 현직 공무원은 “육아 때문에 지원했지만 전일제보다 업무가 적은 것도 아니고, 승진도 하늘의 별따기”라며 “공무원 신분을 가졌지만 철저히 외면받는 느낌”이라고 하소연했다.
오는 9월 5일 열릴 국회토론회는 이 같은 현장의 목소리를 집약해 제도의 폐지를 공식 논의하는 자리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채준호 교수가 제도의 문제점과 실태를 분석한 발제를 맡고, 배규식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이 좌장을 맡는다. 토론자로는 정성혜 위원장, 김성희 L-ESG 평가연구원 원장, 방진권 구로구청노조 위원장, 인사혁신처와 행정안전부 관계자 등이 참여해 다각도의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이들은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전면 폐지를 비롯해 △공무원법 개정을 통한 근무시간 변경 신청권 보장 △초과근무 1시간 일괄 공제 개선 △수당 지급 체계 개편 등 실질적인 제도 개선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는 그간 제도의 문제를 인지하고도 명확한 입장 없이 ‘개선’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인사혁신처는 올해 상반기 노사협의회에서도 “폐지보다는 개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지자체와 중앙부처, 그리고 당사자들까지 제도의 폐지를 촉구하는 상황에서 단순한 미봉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시간선택제노조 정 위원장은 “육아 등 사유가 해소되어 40시간 근무가 가능한 경우, 전일제 전환을 통해 근무 연속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짧은 근무를 원한다면 기존의 ‘전환형 시간선택제’로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간 시간선택제 공무원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인지하고도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해 왔다. 특히 인사혁신처는 2025년 상반기 노사협의회에서 '제도 폐지' 요구에 대해 “개선에 집중하겠다”며 사실상 폐지 가능성을 일축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제도 자체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으며, 지자체와 당사자들의 폐지 요구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더 이상 미봉책으로 문제를 덮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번 국회토론회는 정부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자,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실패한 제도'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라는 요구를 공식화하는 자리다.
공무원 조직 내 효율성 제고는 물론,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들이 ‘진정한 공직자’로서 존중받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정부가 책임 있는 태도로 제도 전면 재검토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피앤피뉴스 / 마성배 기자 gosiwee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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