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탈리아 대법원은 강간죄 무죄 판결을 한 원심인 안코나 항소법원의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에 환송했다. 2015년 두 명의 피고인이 페루인 여성을 강간한 점과 관련 1심 유죄판결이 내려졌는데, 위 2심이 무리하게 무죄로 판결했다는 취지다.
놀라운 것은 항소심 법관 전원이 여성이었는데도 무죄판결을 했다는 점, 무죄의 주된 이유가 ‘피해자의 외모가 남성처럼 보여 성적 매력이 없기 때문에 피해진술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본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을 판결문에 담았다고 하니, 국민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이 사건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서 소개하며 세계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해외의 이 사건을 토대로 몇 가지 생각할 점을 보면, 첫째, 파기사유는 무엇이며, 특히 사실오인은 무엇인가. 둘째, 강간죄 2심의 올바른 사실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셋째, 대법원이 자판과 파기환송 중 어떤 방식을 택하든 이는 자유인가.
첫째, 2심은 사실오인, 이유불비·모순, 법리오해, 양형부당을 파기사유로 삼는다. 무죄를 다투는 사건에서는 사실오인 주장과 그 판단이 가장 많다. 따라서 통상 2심은 사실확정에 가장 힘을 쏟는다. 법리오해는 중간중간 또는 말미에 근소하게 적시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오인은 원심이 사실확정을 잘못했다는 것으로, 주된 원인은 증거판단을 그르쳐 오판을 한 것이 된다. 이러한 사건에서는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고, 피해자의 주장을 함부로 믿은 것이 잘못'이라는 점이 사실오인판단의 주된 요소가 된다. 이 사건 2심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뒤집은 것은 피해자 주장에 터잡아 양산된 각종 증거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고, 원심이 사실을 잘못 판단했다고 보는 한 2심은 사실오인을 이유로 파기할 수 있고, 이는 적법하다.
둘째, 이 사건 항소심이 사실오인을 인정할 경우 판결문에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배척하는 사유를 반드시 적시해야 한다(형사소송법 제369조). 다만 피해자가 남자처럼 생겨 그의 강간피해 진술이 믿기 어렵다고 판시한 이탈리아 항소법원의 무죄 이유는 필자는 처음 본다. 우리 대법원은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 강간죄에서 요구되는 폭행·협박이 없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되며(대법원 2005도3071 판결; 대법원 2012도4031 판결), 피해자의 입장에서 성희롱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17두74702 판결). 심지어 대법원은 최근 삼성가 이부진 사장의 이혼소송에서, 재판장과 삼성과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일반인의 관점에서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다고 보고 재판장을 교체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대법원 2018스563 결정).
셋째, 대법원은 원심과 1심법원이 적법하게 조사한 증거에 의하더라도 상고심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때에는 자판하고(형사소송법 제396조), 그 외의 경우에는 환송을 원칙으로 한다(형사소송법 제397조). 따라서 파기자판은 예외, 파기환송이 원칙이 된다. 이후 환송받은 2심(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의 파기취지에 구속되어 판단해야 한다(법원조직법 제8조). 반면 항소심은 파기자판이 원칙이다(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 동법 제366조).
요컨대, 이 사건 이탈리아 안코나 항소법원은 1심 판결과 다른 판단을 할 수 있고,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하므로 피해자 진술 신빙성에 대한 설시를 하여야 하나, 법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사실을 달리 확정해서는 안 되고 피해자 내지 일반인의 관점에서 판단했어야 하므로 위법한 판결이 되었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우리 형사소송법에 따를 때 파기자판 대신 파기환송을 택했고, 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의 파기이유에 따라 재심리해야 한다.
대구 형사전문변호사 천주현(형사법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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