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사회학자 밀러는 “비판 없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라고 하였다. 나도 합리적 비판의 자유는 언론의 자유이고, 인간과 사회를 개선·개혁시킨다고 확신하고 있다. 특히 정치인·정당에 대한 잘못된 점의 지적과 그 개선책 제안은 한 나라의 민주주의 정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대안 없는 비판, 차선책 없는 비판, 정권을 잃은 분풀이적 비판 등은 이 사회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간다. 참으로 딱한 것은 자기가 권자에 있더라도 방법이 없는 비판, 몰가치(沒價値)적 비난은 악평이고, 더 나아가 광평(狂評)이라고까지 하고 싶다. 인류역사상 어느 국가·장소, 어느 시대, 어떤 정권하에서도 절대 선, 흠 없는 정의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정책·제도의 흠을 지적할 때는 정치·경제·역사·사회 등 전반적 분야를 두루 살펴 형평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는 일본 지배, 6.25라는 참상을 겼었고, 4.19, 5.16, 유신·광주민주화운동, 신군부독재 등 정변과 탄압을 거쳤다. 이러는 동안 정경유착·고급로비는 횡행하였고, 국민소득은 3만불에 육박하면서 그에 비례한 ‘경제 민주화’는 머뭇거려 왔다. 이러한 길을 걸어온 이 나라를 전체적으로 변모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악습적 관행에 물들어 있고, 불리해진 기득권자가 저항하고 있다고 본다.
내가 결점과 실수를 덮어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비판은 그것들을 개선하기 위한 점잖은 언어이어야 한다. 설사 다소 지적할 점이 있더라도 「86운동권 출신의 진보적 권력」 횡포로 보는 견해는 “가치관 없는 보수주의자”의 망견이라고 본다. 나는 이 같은 비 이성적 비판은 임기 만료 전에 탄핵으로 권자에서 끌어내린 것을 못마땅히 여기는 생각의 또 다른 표현으로 보고 싶다.
그 오피니언 집필자는 “특목고·자사고 폐지,” “강남아파트 때려잡기”, “복지제도의 확대”, “최저임금의 인상”, “소득주도 성장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등을 선택의 자유를 망가지게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우파적 보수주의자” 임은 틀림없는 것 같고 “갑의 지위”를 가진 자라고 본다.
그러나 나는 이 자가 “천민자본주의 가치관”을 가진 사회연대의식을 저버린 “풍요 속의 빈곤자”라고 본다면 논리의 비약일까.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임기 전에 끌어내린 것은 일종의 “명예혁명”이다. 4.19, 5.16, 72년 정변, 80년 신군부 등장 후와 같은 혁명 후 혼란과 인권탄압은 있어서는 안되나, 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혁명 후는 형태 불문하고 구악은 일소되어야 한다.
무릇 어떤 혁명 후든 그 후에 진행되는 위법행위·적폐청산, 악습적 구·관행의 척결은 다소 급진적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적폐는 30~50년간 누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자가 구악습에 젖어 있는 것을 과감히 제거하려는 노력을 “사회의 숨결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신이 구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대통령님 이제 그만 내려오세요”라는 광고를 게재하고 있는 것은 신문의 사려 없는 행위로 본다.
그 광고에서 독일 개혁주의 신학자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미친자 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 없다”라는 말을 대통령에 빗대어 표현한 것을 두고, 나는 “미친 자의 선동”으로 보고 싶다. 아이젠 하워 대통령이 케네디 당선 후, 정권을 인계하면서, “신문을 보지 말라”고 하였다고 한다. 상업주의에 물들어 있는 신문은 방향도 비전도 없이, 떠들어 대는 것이라는 말을 한 것일 것이다.
이 오피니언 집필자의 주장과 신문의 논조대로라면 정권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정권을 잡은 자는 그 정권을 더 심하게 흔들어 대는 비판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득권자·우파적 보수주의자들에게 끌려다니고, 아무 개혁·개선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정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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