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앤피뉴스 - [세상의 창] 고추 먹고 메엠~멤_정승열 법무사(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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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창] 고추 먹고 메엠~멤_정승열 법무사(대전)

이선용 / 기사승인 : 2022-12-12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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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열.jpg


※ 외부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그 강산이 대여섯 번도 더 바뀐 지금 되돌아봐도 TV도 자가용이 없던 그 시절이 훨씬 더 좋았다. 따뜻한 남쪽 산기슭에 자리 잡은 고향 마을은 마흔 집 남짓 되었는데, TV나 PC도 없던 시절이어서 어른들은 나라 돌아가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식들과 먹고사는 일이 전부여서 날이 밝으면 산과 들로 나갔다.

 

아이들도 방과 후에는 학원이란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학교에 다녀온 뒤에는 책보자기를 내던지고, 골목이나 들로 산으로 쏘다녔다. 매일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다랑논 둑 밑에서 우렁이를 잡거나 여름철에는 뒷산에 올라가 그늘에서 놀다가 매미도 잡고, 다람쥐도 쫓아다녔다. 그러다가 땀이 나면 냇가에 가서 멱을 감고, 피라미도 잡았다. 가끔은 냇가 건너편의 동네 사람의 밭에 몰래 들어가서 설익은 보리나 밀을 한 움큼씩 꺾어다가 구워 먹기도 하고, 수박이며 참외 서리도 했다. 호미가 없으니 맨손으로 감자 줄기의 뿌리를 파헤쳐서 알이 굵은 것을 골라서 캔 뒤, 얇은 자갈돌을 첨성대처럼 쌓고 불쏘시개로 달군 뒤에 감자를 넣고 모래로 파묻은 뒤 한창 물놀이하다가 감자구덩이를 파보면 감자가 적당하게 익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들의 눈썹을 태우거나 입 주변은 끄름이 시커멓게 묻었지만, 이내 냇물에 들어가서 멱을 감다 보면 깨끗하게 씻기곤 했다. 가을이 되면 산에 밤이며 도토리, 상수리, 어름과 다래가 지천이어서 어른들은 ‘가을에 산에 올라가면, 먼 사촌네 집에 가는 것보다 더 낫다’라는 말을 들려주셨다.

 

더러 골목에서 비석치기나 자치기를 하며 놀다가 쌈이 벌어져 드잡이하거나 다치는 일이 생겨도 상처가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만 않으면, 싸운 애들도 그것으로 끝이었고, 함께 있던 누구도 어른들에게 고자질하지도 않았다. 사실 그런 일은 자주 벌어지지도 않았지만, 어느 날 상처를 입는 일까지 벌어졌다면, 어김없이 때린 애나 맞은 애는 물론 그 부모들까지 마을 어른 앞에 불려가서 혼나기 일쑤였다. 마을 어른은 이장이나 새마을 지도자도 아닌 연세가 많고, 경륜이 있다고 알려진 노인이었다. 마을 어른은 쌈질한 아이들을 혼냈지만, 무엇보다도 그 부모들에게 “자식 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자식들이 쌈질하고 마을을 소란스럽게 만드냐?”며, 가정교육이 잘못됐음을 책망하곤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쌈질한 어린이들이 화해는 물론, 양가 부모들도 서로 사과했다. 당시는 병원도 없고, 읍내에도 조제약을 파는 약국은 없이 매약만 하는 약방뿐이었다.

 

또, 청년들이나 어른들이 술을 마시고 싸움이 벌어져서 파출소 불림을 받는 일이 생기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파출소에 달려가서 데리고 나오곤 했다. 지금이라면 감자나 고구마를 훔쳐먹고, 수박이며 참외 등을 몰래 훔쳐먹다가 들켰다면, 아마도 특수절도죄 등으로 처벌받거나 소년원 신세를 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풍경은 우리 마을뿐만이 아니라 1960년대 시골 마을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당시는 모두 그렇고 그렇게 살아서 누구네가 부자고, 누구네가 가난한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또래라면 함께 뒹굴고 어울렸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이런 풋풋한 정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아이들은 아파트 크기에 따라서 친구를 골라서 사귀기 일쑤고, 출산율도 뚝 떨어져서 모두가 왕자와 공주가 되어 버려서 끼리끼리 놀기 일쑤다. 그러다가 말다툼이 벌어져 손찌검이라도 했다면, 금방 진단서를 떼서 파출소로 달려갔다.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된 지금 어느 아파트가 15층이라면 한 라인만 셈해봐도, 서른 집이나 돼서 웬만한 시골의 한 마을만큼 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게 되더라도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흔히 애들 친구가 엄마들 친구가 된다고 하지만, PC 게임이나 학원 순례가 전부여서 애들 친구도 엄마도 없다. 이것을 도시의 익명성이라고 말하고, 그 익명성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개는 어렸을 적의 생활이 곤궁했거나 조상이 양반 가문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다. 현대사회에서의 삭막함은 가정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TV가 매일 살벌한 폭력이나 법정 드라마만 보여주고, 개그 프로나 애정 드라마가 없다면 삭막하듯이 정치도 법만 앞세우고 법대로만 강조하면 삭막한 세상이 된다.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법대로 처벌하고, 법대로 과세하는 각박함 속에는 인간의 정서나 여유가 자리 잡을 공간은 없다. 서양에서는 이웃에 변호사와 세무서원이 사는 마을이 가장 살기 힘든 마을이라는 속담도 있다. 나라에 고관대작은 넘쳐나지만, 애와 그 부모까지 혼내는 경륜을 가진 어른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법치주의와 과학의 발달이 아니라 인간성의 상실이다. 그리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과학문물의 로봇으로 추락하게 될 것이다.

 

일출이작/ 일입이식 (日出而作 日入而息: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

경전이식/ 착정이음 (耕田而食 鑿井而飮: 밭을 갈아 배를 채우고 우물에서 물 마시니)

함포고복/ 고복격양 (含哺鼓腹 鼓腹擊壤: 내가 배부르고 즐거운데)

제력하유 우아재 (帝力何有 于我哉: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요순시대에 백성들이 걱정 없이 살아가면서 임금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했다는 태평성대를 노래한 격양가(擊壤歌)가 악부(樂府)의 제왕세기(帝王世紀) 잡요가사(雜謠歌辭)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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