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무담당 공무원의 자세
▲ 최창호 변호사 |
공자(孔子)께서는 등태산 소천하(登泰山 小天下)라는 말을 언급하신 바 있는데, 이와 같은 언급을 송무제도와 관련하여 설명하자면 항상 처분을 하고 공권력을 행사하는 공직자들이 기관의 이익이 아닌 타인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언제나 타인의 시각으로, 또는 상사의 시각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판단하면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국민의 권리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언론에서 문제가 되는 사건은 거의 대부분 법정에서 다투어지는 경우가 많다. 모든 문제의 소송화라는 면에서 바람직한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송무라는 업무가 ‘하수종말처리장’, ‘쓰레기하치장’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유기체의 간과 같이 독소를 해독하는 순기능을 갖기도 한다.
인생을 살면서 아마추어는 과정을, 프로는 결과를 중시하는 면에서 차이를 가질 수 있다. 흔히 좋은 대학을 가면 인생에서 성공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길게 보면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한 단계 또는 한마디에 불과한 것이지, 남들이 평가하는 좋은 대학을 갔다고 반드시 행복한 삶은 사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학 입학 시의 자신의 순위가 끝까지 자신의 행복을 담보해 주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새로운 방향을 찾아 남들이 갖지 않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지는 것이 좋다.
송무제도를 파악함에 있어서는 “one size bigger hat”을 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자기의 입장이 아닌 현재 자신의 상사의 시각으로, 또는 기관장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사물의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다. 같은 망치라도 판사의 망치와 목수의 망치는 기능이 다르다. 요리사의 칼과 조폭의 칼이 용도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송무제도는 어찌보면 창조적, 전진적, 예방적 성격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단순하게 진행되는 집안일이라거나, 음식의 섭취 후에 남아 있는 설거지와 유사한 역할을 할 경우도 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표시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제대로 업무처리가 되지 않으면 다른 업무가 마비될 수 있다.
송무업무를 하다보면 대통령실의 입장, 그리고 각 부처의 입장이 다른 경우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국가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의 결정에 있어서 법무부·행안부·국정원의 입장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해결방법에도 상이한 입장을 견지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한편 국가송무에서 중용한 의미를 가지는 통계율은 전부 패소율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므로, 패소율만을 기준으로 단편적으로 성과를 파악하는 것은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통계에 있어서도 신수와 구수가 있고, 패소율을 결정함에도 패소비율과 패소액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송무제도를 접하게 되면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이라는 생소한 법률을 마주하게 된다. 위 법은 국가를 당사자 또는 참가인으로 하는 소송 및 행정소송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소송의 효율적인 수행과 소송사무의 적정한 관리를 도모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것인데, 국가소송(국가를 당사자 또는 참가인으로 하는 소송)에서 법무부장관이 국가를 대표하게 된다.
이전 정권 말기에 국가송무체계의 개편이 단행되어, 행정소송을 법무부 계약직 공무원의 지휘를 받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제도 변경을 반대하였으나, 현재는 행정소송을 법무부가 직접 지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검찰청(고검) 통제 내지 지휘를 받지 않는 일방 행정청이 기일지정신청서를 제출해도 답변서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소송의 지연은 비단 행정소송에서의 문제만은 아니라 할 것이나, 행정청의 소송지연으로 인하여 국민의 권익구제에 지체가 발생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준비서면의 내용이 부실하거나, 소송수행자 변경 시 내용 파악이 지연되어 기일이 공전되는 경우에는 재판부도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다.
송무담당자들이 항상 주의하여야 할 내용은 불변기간을 도과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각종 기한을 준수하여야 한다. 불변기간을 도과하는 경우에는 그 어떤 말이라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송무업무는 국가의 재산을 지키고, 행정의 적법성을 담보하며, 헌법적 가치질서 및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중차대한 업무라 할 수 있다.
부디 납세자의 혈세로 국가의 녹을 받는 공직자들은 공직의 의미를 자각하여 최선의 노력으로 본분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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