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에의 엽서
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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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내게 들어선 것은 근래의 일이었습니다. 소위 생업의 기틀을 벗고 변두리의 밭뙈기 농사로 물러나 앉은 은연중에 슬며시 밀고 들어왔습니다. 계절도 저물면 산천의 나뭇잎들이 절로 물드는 이치인지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자랑도 하고 사죄도 하면서, 지나온 날들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습니다. 어느 종교의 고해성사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한산해진 노후가 나도 모르게 외롭다는 반증일런지요. 해변으로 밀려온 축구공에다 사람의 얼굴을 그려 넣고는 아침마다 말을 걸던 무인도의 표류 사내처럼 말입니다.
인디언 사내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자기만의 비밀 장소를 정한다고 합니다. 새벽에 눈을 뜨면 바로 그곳 나무 아래로 달려가서 열매를 따 먹으면서 일출을 맞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그곳 나무와 하루를 이야기하면서 소년과 청년으로 자란답니다. 그러다가 눈을 감게 되면 바로 그 나무 아래 묻힌답니다. 나무가 키워 준 심신을 나무의 자양분으로 되돌려준다는 이치겠지요.
인디언 어린애들의 그것만도 못한 철 때기가 이 나이에 꿈틀대는 것일까요. 중학교 영어 교재에 ‘내 파일럿(Pilot)의 얼굴을 보고 싶다.’라는 시의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 파일럿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내 영한사전에는 비행기 조종사 외에 도선사, 수로 안내인 등, 아리송한 해석뿐이었거든요.
어렴풋이나마 그것의 의미를 짐작하게 된 것은 한참 뒤였습니다. 내가 6만 톤급 외항선의 선장이 돼서 남반구 어느 항구의 외항에 닻을 내렸을 때였지요. 백조처럼 새하얀 도선사(Pilot)가 배로 올라오더니 내게 악수를 딱 한 번 청하고는 배를 지휘해서 긴긴 수로를 지나 항내의 부두로 접안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선장인 배를 제 맘대로 부리면서 미지의 세계로 나를 데려가는 사람.
어느 시인도 노래했더군요.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그대가 곁에 있어도/나는 그대가 그립다.”라고.
아득한 지난날의 어느 소녀가 나의 그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빈슨 크루소를 체험하겠다는 객기로 산으로 들어갔던,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습니다. 화전민 아니면 산지기가 살고 떠난 지 오랜 폐가에서 뜬눈의 첫 밤을 새고 계곡의 옹달샘으로 물을 뜨러 내려갔을 때였지요. 흐릿한 새벽안개 속에서 웬 여자아이 하나가 물을 긷고 있다가 나를 보고는 물동이도 그대로 둔 채 달아났습니다. 무인지경 산중의 내 출현이 놀라웠겠지요. 웃통을 벗어 제킨 내 반바지 차림에는 기겁을 했겠습니다.
새벽마다 만나게 되는 그녀와의 소통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몇 차례 무언의 대면 끝에 말문이 열렸습니다. 첩첩 산속의 공동 샘터라는 여건의 도움이었겠지요.
내 또래의 참한 소녀였습니다. 계곡 안쪽에 너덧 가옥의 초가 동네가 있으며 그중 한 집에서 조부님과 함께 지낸다고 했습니다. 오리쯤 떨어진 읍내의 과수원집이 본가여서 다른 식구들은 그곳에서 살지만, 조부님께서 당신의 옛집을 챙기시는 통에 봄부터 가을까지 그곳에서 지낸다는 그녀가 착하고 예쁘면서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그녀와의 옹달샘 시간이 좋았습니다. 샘의 물줄기가 더욱 가늘어져서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가 도착하기 전에는 샘을 청소하는 등 구실로 물을 뜨지 않고 기다리는 꾀가 나기도 했지요. 그녀 또한 언감생심 그런 마음인지, 나보다 먼저 물을 뜨는 일이 없었고요.
그녀를 위해 할 일이 생긴 것은 입추가 지난 즈음이었습니다. 그녀 조부님이 경서를 읽고 붓글씨를 쓰시는 서대 위에 꽂아드릴 산꽃을 꺾는 일이었지요. 샘터 근처에는 구절초, 감국 등속이 고작이지만, 내가 하루치의 취사용 땔나무를 하러 넘나드는 능선 쪽에는 쑥부쟁이, 억새꽃이 지천이었거든요.
한 아름씩 꺾어다 주는 꽃을 받으면서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이 맑고 고왔습니다. 새벽이슬을 머금어 단정한 봉오리가 화사한 꽃송이로 피어나는 감격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나의 하루는 더욱 이른 새벽에 능선을 다녀와서 윗도리를 걸치고는 계곡 샘터로 내려가서 그녀를 기다리는 보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산으로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러나 어느새 처서도 지나면서 방학이 꼬리를 드러냈습니다. 정녕 행복의 시간이 길지는 않는 법인지요.
태연한 척하면서도 서운해하는 눈치를 보이는 그녀가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내가 챙긴 일이라곤 내년 여름에 다시 오겠다는 다짐뿐이었습니다. 남녀의 만남은 ‘좁은 문’의 알리사와 제롬처럼 순결해야 하므로 서로의 나이며 학력, 이름까지도 다 껍데기라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러고는 까맣게 잊은 일이었습니다. 3학년 여름방학은 진학 문제로, 진학 이후에는 도회지의 먼지 속으로 내가 타락해간 탓이었겠지요. 예순 해도 더 지난 일이 이 가을에 새삼 사무칩니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대일 것도 같습니다. 손자가 대여섯 살 때였지요. 큰비로 한강이 넘친다는 뉴스에 녀석을 태우고 팔당댐 전망대로 달렸습니다. 수문마다에서 우레의 굉음으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들이 우람한 강줄기로 굽이치는, 그야말로 대자연의 장관이었습니다. 그런 한순간, 하류 쪽 강심 위로 쌍무지개가 뜨자, 손자 놈이 환호작약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또래의 내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놈의 뽀얀 얼굴, 깨끗한 입성 대신 새카맣게 탄 얼굴에 홑 무명 바지저고리 차림으로 무지개를 향해 내달리는, 어린 시절의 나로 말입니다.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서 목욕을 하고 올라간다는 옥황상제의 선녀들을 보기 위해서였지요.
나도 몰래 내 어린 아이에게 사과를 하게 되더군요. “얘, 미안하다. 너는 맑고 착한 아이였는데 내가 이렇듯 볼품없는 어른이 돼버렸으니 말이야. 그러고도 이젠 방법이 없으니 정말 미안해.”라고.
어느 시인이 알 수 없다던 오동잎이며 하늘, 시냇물, 저녁놀까지도 다 나의 그대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내 어머니만은 아닙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챙길 줄 모르던 바보천치 그녀에겐 내가 무조건 기쁘고 즐거워야 되거든요. 언제라도 달려가서 안기면서 자랑을 하고 칭찬받고 싶은 여인이지만, 아무리 털어 봐도 자랑할 거리가 없네요. 머잖아 만나게 되면 거짓말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당신이 김밥을 싸서 보내주셨던 이쪽 세상 소풍이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고.
렌, 저리도 자지러지던 매미들의 아우성이 수굿한듯하더니 어느새 가을입니다. 치마저고리 단정한 소녀가 물을 긷던 샘터에도, 로빈슨 크루소를 닮고 싶은 소년이 반바지만 걸친 채 인디언들의 그것(tomahawk) 같은 손도끼를 휘두르면서 넘나들던 능선에도 산꽃들이 흐드러지겠지요. 그러면서 이제 곧 더욱 부시게 짙푸른 하늘가로 지난날의 사연들도 물결쳐 오겠고요. 그래서 가을은 누구에게나 힘든 계절인가 봅니다.
부디 상심치는 마십시오. 땅끝 바닷가 어느 산사의 기슭에서라도 몇 밤을 뒤척이다 보면 어느새 가을을 다독여 재운 겨울이 찾아오게 마련이니까요. 아득한 꿈속 어머니의 자장가인 양 싸락싸락 눈도 내리면서 말입니다. 변함없이 맑고 고우소서.
김문호
한국해양대 졸업
대한해운공사 선장
한일상선회장
한국문협 해양문학 연구위원장
수필집 '윌리윌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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