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살 것인지
나지윤(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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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속에는 암시가 될 뿐 설명하지 않았던 ‘세계 너머의 세계’가 있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치히로가 마지막에 도달했던 물에 잠긴 기찻길,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에서는 어린 하울이 별을 삼키던 들판과 같은 곳이 그 세계였다. 사후세계인지 유토피아인지 상상력을 또 한 번 자극하게 만드는 베일에 감춰진 공간. 이번 작품에서 그는 마침내 그 문을 열고 ‘세계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11살 소년 ‘마히토’가 사라져버린 새엄마인 ‘나츠코’를 찾으려고 들어간 탑에서 왜가리의 안내를 받아 통과한 문이 등장한다. 그곳에서 발견하는 것은 끊임없이 고뇌하며 자신의 철학을 쌓아 올린 한 세계의 창조자이자 여전히 꿈을 꾸는 소년, 바로 감독이다. 올곧으면서도 외로워 보이는 그 모습에서 ‘지브리 스튜디오’와 일본 애니메이션계, 그리고 인류 후손에 대해 느끼는 책임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늙은 예술가의 작품은 심플하다. 고유의 스타일은 응축되어 추상화에 가까워지고 주제 의식은 간결하면서도 분명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번 작품에서도 그러한 경향성이 눈에 띈다. 인물과 연출은 전작들을 집대성하고 있고, 대사는 많지 않다. 스토리는 걷잡을 수 없게 흘러가지만 결국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같다. ‘나는,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다. 전쟁을 일으키고 탐욕을 부리며 자연을 파괴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래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부조리한 구조를 못 본 척하며 각자도생이라는 새로운 덕목을 따를 것인가?’ 얼마나 묻고 싶었는지 영화의 제목으로 못을 박아버린 그의 물음에 이제는 답해야 한다.
‘나’라면 어떤 답을 하게 될까? 교복을 입던 때에는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시험 잘 보라며 응원하면서도 점수에 따라 줄을 세우고 등급을 매기는 어른들의 모순을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십 대의 자유로움을 기대하고 나온 사회에서는 오로지 한 가지 성공의 길만을 강요하는 ‘헬 조선’의 공기에 질식할 것 같았다. 그렇게 폭발하듯, 나만의 삶을 살아보겠노라고 다짐하며 프랑스 유학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답을 찾았을까? 매일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심정으로 살아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구를 뒤덮을 때까지 버틴 끝에서야 졸업장을 가지고 귀국할 수 있었다.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대학원을 기웃거려보다가 늘 생각만 해보던 일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꽤 꿈에 다가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흘러가는 대로 살았고, 또 어떻게 보면 필사적으로 선택해가며 살아왔다. 어쨌든 아침에 눈을 뜨면 고만고만한 생각과 고민과 현실이 눈앞에 밀려온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는 다시금 묻는다. 어떻게 살 것인지, 나만의 탑,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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