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중의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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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대명 노무사 |
직원이 10명 정도인 작은 공장에서 60대 남성은 공장장이고 40대 후반의 남성은 부장이다. 사실 이렇게 작은 공장에서 직책은 큰 의미가 없다. 직책이 공장장이거나 부장이거나 혹은 신입이라도 하는 일은 모두 현장직으로 동일하게 힘들기 때문이다. 직원이 10명임에도 한국인 직원은 사장을 제외하고는 공장장과 부장 둘뿐이라고 한다.
한국인 직원을 채용하려고 구인광고를 항상 내고 있지만 어디 젊은 한국 사람들이 힘든 현장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자연히 그 자리는 외국인 근로자들로 채워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젊은 30대 초반의 건장한 남성이 면접을 보더니 열심히 일하겠다고 해서 채용을 시켜 주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며칠 일하고 가겠지 생각하고 일도 설렁설렁 가르쳐 주면서 지켜보았는데 젊은 친구가 참 성격도 바르고 친근감도 있고 일도 잘하고 열심히 배우려고 하니 자꾸 더 잘해주고 싶어졌다고 한다. 자연히 절대 다수의 외국인 근로자들 사이에서 그 3명은 나이를 초월하여 금방 친해졌고 퇴근하면 헤어지기 아쉬워 식사도 하면서 반주도 곁들이면서 술도 마시곤 하였다.
그리고 사건이 있는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야간 근무를 한 후 헤어지기 아쉬워 근처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연히 반주도 곁들이면서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는데 젊은 직원이 갑자기 한 가지 제안을 했단다.
“공장장님, 부장님, 우리도 남들처럼 골프 한번 쳐봐요. 지난주에 친구들과 술 마시고 처음으로 스크린 골프장 가서 골프를 쳐봤는데 비싸지도 않고 너무 재미있었어요. 우리 다 같이 한번 쳐요.” 사실 공장장과 부장은 골프는 돈 많은 사람이나 치는 것이고 우리 같은 서민이 골프를 칠 수 있으리라 감히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막내의 제안을 받자 한번 쳐보고 싶어졌다.
“그래, 우리라고 골프를 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노. 우리도 그 잘난 골프 한번 쳐보자.”라고 의기투합하여 해장국집을 1차로 하고 2차는 스크린골프장에서 스크린골프를 치기로 결정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일까. 그들은 해장국집에서 이미 소주를 5병이나 마셔버렸다. 해장국집의 금액을 계산해야 하는데 막내가 지금까지 공장장과 부장에게 얻어먹은 것이 많으니 이번 1차는 자기가 계산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여 결국 막내가 해장국집을 계산하였고 이 3명은 스크린골프장을 찾아 나섰다. 드디어 문이 열린 스크린골프장을 발견하였고 당당하게 들어가서 스크린 골프를 쳤다. 난생처음 쳐보는 골프지만 막내가 치는 것을 보고 대충 휘두르니 신기하게 공이 날아가고 재미도 있었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최고조에 달하였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술이 빠질 수 없으니 스크린골프장에서 맥주도 시켜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공장장이 공을 치려고 타석에 올라서서 골프채를 휘두르려고 하는데 막내가 공장장이 치려고 하는 골프채가 잘못되었다며 공장장의 골프채를 확인하여 준다고 갑자기 공장장에게 얼굴을 숙인 체 다가오고 있었고 공장장은 이를 보지 못하고 힘껏 골프채를 휘둘러 버렸고 공장장이 휘두른 그 골프채에 막내의 얼굴이 맞아버렸다. 골프를 쳐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골프채로 머리를 맞으면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할 만큼 심한 부상을 입게 된다.
막내는 다행히 사망하지 않았지만 코뼈와 광대뼈 등이 골절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이다.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공장장과 부장은 어떻게든 막내에게 도움이 되고 자신들의 책임도 줄일 방법을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든 차에 어느 누군가가 공장장과 부장, 그리고 막내 직원까지 함께 술 마신 것은 회식에 해당이 되니 산재로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며 정말 이것이 산재가 가능한지에 대해 노무사 상담을 받으러 왔다고 했다.
산재가 인정되기 위하여는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행사(회식) 중의 재해가 산재로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행사 모임의 주체자가 사업주인지 여부, 행사 참가에 대한 강제성은 있는지 여부, 행사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 여부 등을 모두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사회적인 통념상 그 행사나 모임의 전반적인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어야 가능한데 이번 사례는 어떤가. 사업주가 주관하거나 사업주의 지시하에 이루어진 회식이 아니고 그 회식의 참여가 강제되는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회식의 비용도 제일 막내인 재해자가 계산한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회사에서 행하는 회식이 아닌 근로자들끼리의 사적 모임에 불과하여 산재로 승인을 받기가 어렵다. 물론 근로자들끼리의 사적 모임에 불과하더라도 그 참여가 공장장이라는 상급자의 명령에 의하여 참여가 강제가 된다거나 회식비용도 우선적으로 막내가 하였지만 나중에 회사로부터 회식 영수증을 제출하고 비용처리를 받는 등의 행위가 있었다면 산재로 승인을 받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이런 내용으로 상담을 하였고 상담을 마친 후의 공장장과 부장의 얼굴은 더 어두워져 있었다. 힘든 상황에서 한줄기 동아줄을 잡고자 하였는데 그 줄이 썩은 동아줄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에 실망을 많이 한 눈치이다. 여러 가지 생각과 고민을 한 후에 다시 방문하겠다고 사무실을 나섰지만 그 이후로 공장장과 부장은 오지 않았다. 만약 공장장과 부장이 나에게 산재 사건을 의뢰하였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변하지 않는 이상 산재로 승인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원래 우리 사무실 직원들과 회식을 1년에 평균 1~2회 정도로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여 직원들 단톡방에 회식장소와 시간, 그리고 모두 참여하라는 톡을 반드시 남기고 회식 시간 역시 오후 4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일과 시간 중에 한다. 혹시 모를 사고로 인하여 회식 중에 우리 직원들이 다치게 된다면 다친 직원들 회식 중의 사고로 인한 산재승인을 받게 해주려는 의도인데 우리 직원들은 나의 이런 의도를 알랑가 모르겠다.
박대명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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