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과세요건법정주의에 따라, 법령에 규정된 과세요건의 해석은 형법의 범죄구성요건에 준하여 엄격하게 해석되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실질적으로 무의미한 거래를 끼워 넣어 과세요건에 부합하지 않도록 조작하는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려는 시도가 종종 있기도 하였다.
입법자는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2003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개정하여 이른바 “다단계 거래행위의 재구성”을 통한 과세의 근거를 마련했고, 2010년에는 같은 규정을 국세기본법으로 옮겨 모든 세목에 적용되도록 하였다. 오늘 살펴볼 사건은, “다단계 거래행위의 재구성”이 가능한 사실관계라고 보기 위하여 어떤 지표가 있어야 하는가에 관한 판단을 담고 있다.
2. 사실관계
甲, 乙, 丙은 모두 A회사의 주주이고, 乙은 甲의 여동생이며 丙은 乙의 배우자이다. 甲, 乙, 丙은 2010년경 자녀들에게 A회사의 주식을 증여하려고 하였는데, 각자의 직계후손에게 직접 증여하기보다는 서로의 후손에게 교차하여 증여하는 경우 조세부담이 경감된다는 세무사의 조언에 따라 증여세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일정 주식을 상대방의 직계후손에게 상호 교차증여하기로 약정하였다.
위 약정에 따라 甲과 丙, 乙은 각 16,000주의 A회사 주식을 상호 교차증여하였다. 즉, 甲은 먼저 2010. 12. 30. A회사 주식 22,000여 주를 자신의 자녀 7인에게 증여하였고, 丙과 乙의 자녀들에게도 16,000주를 증여하였다. 丙은 같은 날 자신의 자녀들에게 A회사 주식 6,000주를 증여하는 한편, 甲의 자녀들에게 8,000주를 증여하였다. 乙도 같은 날 자신의 자녀들에게 A회사 주식 3,000주씩을 증여하는 한편, 甲의 자녀들에게도 8,000주의 A회사 주식을 증여하였다(이하 甲이 乙, 丙의 자녀들에게 한 총 16,000주의 증여와 乙, 丙이 甲의 자녀들에게 한 총 16,000주의 증여를 합하여 ‘이 사건 교차증여’라고 한다).
甲의 자녀들과 乙, 丙의 자녀들은 2011. 3. 30. 甲, 乙, 丙으로부터 각 증여받은 A회사 주식에 대한 증여세를 신고·납부하였다.
과세관청은, 이 사건 교차증여의 경제적 실질은 甲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16,000주를 직접 증여하고 乙, 丙이 그 자녀들에게 16,000주를 직접 증여한 것이라고 보아, 당시 시행 중이던 상속세 및 증여세법(2013. 1. 1. 법률 제1160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상증세법’이라고 함) 제2조 제4항을 적용하여 다시 산정한 증여세를 甲의 자녀들과 乙, 丙의 자녀들에게 부과하는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3. 적용 법령 및 쟁점
구 상증세법 제2조는 제1항에서 증여세는 타인의 증여로 인한 증여재산을 과세대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제3항에서 “증여란 그 행위 또는 거래의 명칭·형식·목적 등과 관계없이 경제적 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유형·무형의 재산을 직접 또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타인에게 무상으로 이전(현저히 저렴한 대가를 받고 이전하는 경우를 포함한다)하는 것 또는 기여에 의하여 타인의 재산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면서, 제4항에서 “제3자를 통한 간접적인 방법이나 둘 이상의 행위 또는 거래를 거치는 방법으로 상속세나 증여세를 부당하게 감소시킨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경제적인 실질에 따라 당사자가 직접 거래한 것으로 보거나 연속된 하나의 행위 또는 거래로 보아 제3항을 적용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위 제4항의 규정 취지는 현행 국세기본법 제14조 제3항에 그대로 승계·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과세요건에 해당하려면,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거래의 법적 형식이나 과정이 처음부터 조세 회피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여 재산 이전의 실질이 직접적인 증여를 한 것과 동일하게 평가될 수 있어야 하는데, 구체적 사실관계에서 어떠한 지표로 이를 판단할 것인지 문제된다.
4. 대법원의 판단
구 상증세법 제2조 제4항에서 제3자를 개입시키거나 여러 단계의 거래를 거치는 등의 방법으로 증여세를 부당하게 감소시키는 조세회피행위에 대하여 그 경제적 실질에 따라 증여세를 부과하도록 한 것은, 증여세의 과세대상이 되는 행위 또는 거래를 우회하거나 변형하여 여러 단계의 거래를 거침으로써 증여의 효과를 달성하면서도 부당하게 증여세를 감소시키는 조세회피행위에 대처하기 위하여 그와 같은 여러 단계의 거래 형식을 부인하고 실질에 따라 증여세의 과세대상인 하나의 행위 또는 거래로 보아 과세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서,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태양 중 하나를 증여세 차원에서 규정하여 조세공평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다만 납세의무자는 경제활동을 할 때 특정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떤 법적 형식을 취할 것인지 임의로 선택할 수 있고 과세관청으로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사자들이 선택한 법적 형식에 따른 법률관계를 존중하여야 하며, 또한 여러 단계의 거래를 거친 후의 결과에는 손실 등 위험 부담에 대한 보상뿐 아니라 당해 거래와 직접적 관련성이 없는 당사자의 행위 또는 외부적 요인 등이 반영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최종적인 경제적 효과나 결과만을 가지고 그 실질이 직접 증여에 해당한다고 쉽게 단정하여 증여세의 과세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7. 1. 25. 선고 2015두3270 판결 참조).
그러므로 구 상증세법 제2조 제4항, 제3항에 의하여, 당사자가 거친 여러 단계의 거래 등 법적 형식이나 법률관계를 재구성하여 직접적인 하나의 거래에 의한 증여로 보고 증여세 과세대상에 해당한다고 하려면,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거래의 법적 형식이나 과정이 처음부터 조세회피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여 그 재산이전의 실질이 직접적인 증여를 한 것과 동일하게 평가될 수 있어야 하고, 이는 당사자가 그와 같은 거래형식을 취한 목적, 제3자를 개입시키거나 단계별 거래 과정을 거친 경위, 그와 같은 거래방식을 취한 데에 조세부담의 경감 외에 사업상의 필요 등 다른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여부, 각각의 거래 또는 행위 사이의 시간적 간격, 그러한 거래형식을 취한 데 따른 손실 및 위험부담의 가능성 등 관련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위와 같은 사실관계와 기록에 나타난 사정에 비추어 보면, 甲이 乙, 丙의 자녀들에게 A회사 주식 합계 16,000주를 증여한 것과 丙, 乙이 甲의 자녀들에게 A회사 주식 합계 16,000주를 증여한 것은 증여자들 사이에 상대방의 직계후손에게 동일한 수의 동일 회사 주식을 교차증여하기로 한 약정에 따른 것으로서, 약정 상대방이 자신의 직계후손에게 주식을 증여하지 않는다면 자신도 증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 교차증여로써 증여자들은 자신의 직계후손에게 A회사 주식을 직접 증여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으면서도 합산과세로 인한 증여세 누진세율 등의 적용을 회피하고자 하였고, 이러한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교차증여 약정을 체결하고 직계후손이 아닌 조카 등에게 주식을 증여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甲과 乙, 丙은 각자의 직계비속들에게 A회사 주식을 증여하면서도 증여세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 아래 그 자체로는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이 사건 교차증여를 의도적으로 그 수단으로 이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교차증여는 구 상증세법 제2조 제4항에 따라 그 실질에 맞게 재구성하여 乙, 丙이 甲의 자녀들에게 증여한 주식은 甲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직접 추가로 증여한 것으로, 甲이 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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