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얼마 전 어느 일간 신문에 의하면 “블룸버그 통신”이 문재인 대통령을 “북한의 수석 대변인”이라고 칭한 것을 보도한 것을 본 바 있다.
그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시민 앞에서의 연설에서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았습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북녘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습니다. 얼마나 민족화해와 평화를 갈망하고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이 용기를 보았습니다…”라는 한 연설 문구를 보고, 비유적으로 한 표현이었다고 본다.
그것에 대하여 한 신문이 “대통령이 북한 대변인이면 한국 대변인은 누군가”라는 글을 게재하고 있는 바, 글의 내용은 북한의 실상을 잘못 보는 듯 하다는 식이다. 우리의 생활에서 타인과의 사귐과 국가 간의 우호관계 유지에서는 모두 상대방을 인정하고, 상대방에 대한 “덕담”으로 이뤄져 간다고 본다. 이렇게 보면 북과 선전관계를 형성하려면 어느 정도 필요한 제스처 일 수 있다.
그 신문의 글에서 말한 바와 같이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자신감에서의 표현일 수도 있다. 덕담의 일종에 속하는 말을 놓고, 지나친 비판을 하는 것은 두 나라사이에 긴장을 더 조장하는 주장이라고 보면 논리의 비약일까?
여러 국제기구와 국내경제학 교과서들이 밝히는 바에 의하면 70년 초까지 북한이 우리보다 국민소득에서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75년 이후 우리 공업화 정책과 수출 독력 정책 등으로 현재 북한 1인당 소득이 3천 달러를 조금 넘고 있으나, 우리는 3만 달러를 육박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통계적 수치는 부정확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북한 보다 더 잘살고 있음은 확실하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문대통령이 북을 좀 칭찬한 것이 잘 못된 것으로 보고 싶지는 않다. “잘 사는 형이 못 사는 동생”을 더욱 분발하도록 칭찬 하여야, 그 집안이 잘 된다는 것은 철리다.
나는 1941년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났고, 김일성의 가혹한 탄압으로 우리 외가의 외삼촌을 비롯한 상당수 외가 친족들이 감옥에서 또 강제 노동으로 생을 마쳤다. 어릴 때 그 기억을 떠올리면 원한이 온몸을 에워싼다. 우리 어머니는 감옥살이 하다 돌아가셨을 오빠를 생각하며 눈물 흘리다 작고하셨다. 외가 친족 중에 몇 사람의 어부가 있었는데 그들은 60년대 납북되었다가 3~4개월 후 돌아와 다소간 북쪽의 밝은 생활을 이야기 하다가 감옥살이를 한 사람도 있다.
나도 60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북한에는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거지생활을 하는 곳이라는 선전 속에 살아왔고, 아직도 노인 일부 국민 중에는 북한 참상 그림만 머리에 배여 있다고 생각한다. 민족통일을 염원한다면 서로 그늘진 구석만 들추어내어 비방하는 것은 삼갈 것으로 본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회담과정에서 낙후된 실정을 자인했다고 한다. 솔직한 그의 태도는 문 대통령이 그들을 격려해서 자존심을 세워주어야 했을 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거니와 기차역·지하철역·공원 등에는 노숙자들이 거지꼴로 잠들어 있고, 길거리에서는 80·90세 난 논인들이 버린 물품·종이들을 주어 담아 리어카를 끌고 다니고, 가끔 동냥을 하는 노인들을 보면 빈곤의 참상으로 볼 것이다.
이중에는 정신적 결함이 있어서 노숙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제도가 없어서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또 우리는 TV 등에서 북한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아이들이 집단 수용되어 급식 받거나 치료 받는 장면을 가끔 본다.
그것이 진실 된 사실이라고 하자. 그것이 북한이 국방비를 과다 지출 하면서, 주민 복지·어린이 구빈 사업비는 덜 지출하고 있다면 그것은 비판 받아야 한다. 그러나 모든 세계국가들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특히 남북이 연출에 가까운 “어두운 장면”을 방영하여 선전하는 것은 전쟁에서의 심리전이다.
이북의 장면이 조금이라도 사실이라면, 민족적 긍휼심을 가지고 도와야 한다. 남의 나라도 돕는데, 동일민족인 북한을 돕는다는 것은 더 다우이성을 갖는다. 우리가 통일되어 또는 통일이 되기 전이라도 긴장적 대립을 완화하고, 국방비를 줄여 복지비용을 증대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 만은 않는다.
대학교수를 지낸 미국에 사는 처남이 트럼프를 지지한 것을 보면, 터프하지만 “개혁의지”가 분명한 것을 간취했던 것 같다. 지금 트럼프와 김정은이 주고받는 대화는 전쟁 위험을 벗어나, 평화의 길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진실”이야 말로 가장 큰 위력적인 무기라는 것은 3국의 원수들은 아는 것 같다. 아무쪼록 한국·미국·북한은 정권은 유한하고, “민족정신”은 영원하다는 인식 하에 움직여 주기 바란다. 끝으로 청와대가 타당성 없고,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을 걸고넘어지는 것과 같은 비판에 맞대응하지 않은 것은 높이 평가한다.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비판은 저절로 살아진다. 국가 원수에 대한 비판을 함에서는 예를 갖출 것을 부탁한다. 상스럽지 못한 언어로 비판하는 것은 스스로 나라의 격을 떨어뜨린다.
[저작권자ⓒ 피앤피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