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단체는 자기 또는 자기가 속한 단체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불쾌하게 생각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발끈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아무리 진실한 잘못의 지적이고 선의 비판이라도 그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광범하게 나라 살림을 맡아 정책을 수행하는 정부에 대하여 수많은 비판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은 내가 지적하지 않더라도 국민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비판이 나오는 연유를 분류해보면 대체로 다음 4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정권을 담당하다가 실권하여 서운함·패배감에서 오는 비판이다. 정치인 특히 야당의 들추어내기식 비판이 거의 이에 속한다. 이들은 자기들이 정책을 담당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한 비판이 많다. 그리고 이들 비판은 대통령선거에서 자기 당에서 대통령을 당선 시키거나 자기 소속당이 의회의 다수당이 되기 위한 정략적 목적으로서 매우 「정치 공학적 측면」을 가지고 있고, 국민의 표를 얻기 위한 선동적인 경우도 많다.
둘째, 어떤 정책 제도의 시행으로 다소 불이익이 되는 이해집단의 반발적·불만적 비판이다. 이들 비판은 주로 기득권자·「甲의 지위」에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자기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한 비판이다. 예컨대, 국회의원들이 자기의 존재감을 부각 시켜 재당선을 위한 수단적 언행인 경우가 많고, 또한 신문들이 불만 세력을 등에 업어 구독자 수를 늘리고 광고 수입을 늘리려는 의도인 경우가 그렇다.
넷째, 가장 고약한 것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려는 의도로의 비판이다. 이런 언행이 가장 고약하다는 것은 그 비판 내용의 타당성 여부를 가려 볼 생각도 없이, 그 비판에 거의 무조건적으로 공명(共鳴)하고 동화된다는 점이다. 그 비판의 당부를 따져보는 지식인이 극소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결코 대세를 좌우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정권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나 여당은 전기 비판들에 대하여 끊임없이 내용을 설명하여 일반 국민이 이해하도록 P.R하고, 때로는 반비판적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위에서 지적한 것들 중 세 가지는 정책담당자들이 몸가짐을 깨끗이 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면 비판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고 그렇게 해왔다고 본다.
사족이 될지는 모르나 앞의 세 가지 비판에 대하여 발끈하기 보다는 인내로서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어느 민주국가이건 정부의 진실한 내용설명과 설득은 「국민의 정부」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고 본다. 정부의 인내와 더욱 더 몸가짐을 조심하는 것은 이해관계자의 감정적·비이성적 비판을 저절로 누그러뜨리는 현명한 자세로 본다.
나는 이 점에서도 현 정권에 합격점을 주고 싶다. 그러나 언론의 사실상 과점과 「지역감정」에 편승한 막무가내식 비판은 국민과의 소통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적에 속한다. 그러나 참고 또 참고, 정도(正道)를 가기만 하면 허상에 가까운 비판은 제 풀에 가라앉는다고 본다.
현 정부에 바라건대, 부패청산 작업은 계속하고, 증세・탈세방지, 대기업의 시정, 사회보장의 확대에 대하여 더욱 동력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기 바란다. 그리고 정경유착, 특히 전직 고급관료들의 부정에 가까운 로비들은 과감히 척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실 국회의원들이 입법권한을 통한 정경유착의 고리와 고급 관료의 로비의 길이 차단되지 않고는 모든 개혁은 백년하청이다. 이것을 실행하는 것에는 저항세력의 힘이 만만치 않고, 일부 신문까지 기득권 옹호적 논지를 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나, 개혁을 더 실행에 옮기면 후대에 청사로 기록될 것이다. “보수주의”를 왜곡시켜, 표를 얻고자 하는 정치세력은 자기쟁화의 노력부터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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