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 신문 등에서 ‘소득 주도 성장론’에 대하여 논의가 분분하다. 내가 보기에는 참으로 딱한 견해들이 함양(涵養) 부족 상태로 날뛰고 있다. 무릇 그렇다. 한 정책·제도를 비판하려면 그 자체에 대한 장·단점의 세세한 분석 및 그와 대조되는 정책·제도를 비교하여 비판하는 것이 정도이다.
지금 신문 등에 떠돌아다니는 논의는 두루두루 심층 분석을 못하고 있는 비판자들이 자기 이론을 합리화시키는데 조급한 불구적 이론이 대부분이다. 나는 비엔나 대학에서 법학박사, 그 후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종래에는 경제학 교수가 되어 1974년 노벨경제학상까지 받은 하이에크(F. A. von Hayek)와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전공으로 수석 졸업하고, 평생을 경제에 관심을 두어 1990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러(M. H. Miller) 교수를 존경한다.
그 외에도 사회학·심리학·통계학 등을 전공하고, 경제학으로 돌아서서 노벨상을 받은 학자들이 있는바, 나는 10여 년 동안 이들이 경제가 법률·정치·사회 등에서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를 고찰한 부분을 면밀히 살펴본다. 잘 알다시피 나는 60년 가까이 법 공부를 하였으나, 상당한 시간을 역사·사회·정치·경제 등의 분야를 공부하면서, 이들과 법과의 상호 관련을 파악하려고 노력하였고, 지금도 경제학에 깊이 심취되어 있다. 따라서 나의 이야기를 비전공자의 어설픈 논리로 볼 것이 아니라, 경제문제를 사회 전반을 사회 전 분야와 관련지어 거시적으로 분석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 보자.
제목에서 내걸은 ‘성장주도 소득증대론’을 먼저 살펴보자. 이는 복잡한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간단히 말하면 대기업의 이윤 확보에 의한 국민소득 증가와 동시에 개개의 가처분 소득 증가→소비 증가→생산 증가(수출 증가)→투자 증가→고용 증가→소득 증가라는 순환을 이끄는 경제운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제사를 보면 대기업의 이윤에 의한 경제성장은 그 독과·점, 정경유착·로비에 의한 것 등으로 자본형성에는 기여하였으나, 국민 개개인의 수입 증가·가처분 소득의 증가·소비 증가는 침체일로를 걸어왔다.
즉 경제성장·총국민소득증가는 비례적으로 가처분 소득 증가·소비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불균형 성장 중심이었고, 국민소득 3만 불 시대 와서는 폐해가 누적되어 누구나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다. 특히 경제성장으로 대기업들은 번 돈을 몇 십조·몇 백조 가지고만 있고 투자하지 않아 고용증대 효과는 수준 미달이었다. 40년~50년 계속되어 온 대기업의 독과점, 정경유착 내지 로비 극성, 투자의 머뭇거림은 우리 경제의 3대 악이 되어 있어, 국가(정부)의 강력한 간섭으로 시정할 수 있으나, 이미 체질화되고, 관행화되어 있고, 자유 경쟁적 자본주의 탈을 쓰고 있어 정부의 시정적 간섭은 공산주의·사회주의라는 비판에까지 직면하게 된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빵이 하나가 둘·셋이 되어야 나누어 먹을 양이 증가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최근 어느 신문에서 경제학자라는 자가 “소득이 증가하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발상은 어느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허구이자 사기”라고 하는 것은 모든 정책·제도·이론은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그의 비판으로 보아 그가 대학교수인지 의심마저 든다면, 내가 논리의 비약을 하고 있을까. ‘소득 주도 성장론’이 경제성장의 기능을 한다고 보는 것은 몇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은 나도 인정한다. 성장은 한마디로 말해서 기업 이윤이 증가하고 국부가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는 여러 가지 원동력이 있겠지만, 주로 기업의 초과이윤·기업의 세 부담률이 낮은 상태에 있고, 그것은 곧 대기업의 독·과점 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저소득층은 빈한한 삶의 곤경에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성장에 비례한 분배는 왜곡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대기업들의 몇 십조·몇 백조를 부의 축적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장사가 안 된다는 이유로,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부를 축적만 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분배의 왜곡 상태는 경제학적으로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정치면에서는 정경유착이 대표적 원인이 될 것이다. 이것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고, 이를 나몰라라 하는 정부는 천민자본주의의 동조자가 되는 것이고, 통제·간섭하면 자유 자본주의·자유 경쟁주의를 손상시킨다고 저항하기 일쑤다.
‘소득 주도 성장론’의 경제 도식은 소득 증가→소비 증가→투자 증가→고용 확대→소득 증가라는 선순환(善循環)을 통해서 저소득층을 보호하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경제 운동 법칙을 말한다. 이 원리가 법칙대로만 작동하면 소득 증가(분배 공정)와 고용 확대, 경제성장이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원리의 과정에 어떤 고장을 일으키면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소비 증가(이윤 증대)=투자 증가라는 등식이 무너지면, 정의로운 분배는 함정에 빠지고 만다. 이 점에서 소득증대→성장에는 회의적인 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성장과 분배(소득증대)의 관계 문제는 어떤 이론도 경제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 면이 있다.
즉 소득이 증가하였음에도 기업의 초과이윤 확보로 끝나고, 투자가 증가하지 않는 면이 있다. 이것은 앞에서 말 한 바와 같이 대기업 상태에서 볼 수 있다. 어떤 장관이 부를 쌓아 놓고 투자하지 않는 것은 사회악(社會惡)이라고까지 말한 적이 있는데 이것을 웅변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경제 왜곡 현상만 없다면 대체적으로 경제 순리로서 옳다고 본다.
이렇게 볼 때, ‘소득 주도 성장론’을 덮어 놓고 ‘사기’라고 보는 것은 그가 경제학자인지 의심이 간다. 일부 그 이론이 반드시 경제성장 내지 활성화를 가져오지 않고, 총 공급 면을 무시한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라는 비판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특히 과거 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 등에서 ‘소득 주도 성장론’이 고장을 일으켜 생산성 악화와 경쟁력 상실, 소득증대에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왔던 사실을 참고로 하여야 할 것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것은 소득 증가가 반드시 경제성장을 가져오는 것이라기보다는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결과의 평등)실현에 더 역점이 있다고 본다.
현 정부하에서 각종 사회보장의 확대는 그동안 행하여져 온 분배의 불공평을 시정하는 면이 더 강하다고 본다. 이 ‘소득 주도 성장론’에 대한 미시적 비판을 나무를 보되 숲은 보지 못하는 비판이다. 나도 가끔 비판을 한다. 국가 정책을 비판할 때에는 정치·경제·역사·사회학 및 법적 관점에서 제삼고려 끝에 글로 옮긴다. 신문·TV에서 술 취한 시정잡배의 어투로 지껄이는 비판은 삼가기 바란다. 지난 40~50년 동안 불균형 성장론에 의한 낙수효과(落穗效果)가 고장을 일으킨 것이 분명한 이상, 그것을 정도를 걷게 하려면 시정적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필요하다. 장기간 누적되어온 병폐를 시정 하려는 ‘소득주도 성장론’은 장기간에 걸쳐 그 효과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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