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가 공직의 꿈을 안고 보건복지부 국장급에까지 올랐으면 전국 의사들의 선망일 뿐만 아니라 전국의 병·의원에게는 슈퍼 초갑이 된 것이다. 그의 권한은 거의 무한대인데, 그 힘을 조절하지 못하고 돈에 유혹될 경우 일반 잡범 이상으로 바닥을 헤아릴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된다는 점을 아래 사건이 보여준다.
의사 출신 보건복지부 국장 허 씨는 국내 한 대형병원에 정부의 사업계획(복지부가 추진 중이던 ‘연구중심병원 사업’의 일정, 예산, 법안 통과 여부, 선정 병원 수 등)을 알려주고 그 대가로 병원의 법인카드를 받아 무려 3억 5,000만원이라는 거금을 흥청망청 써버린 혐의로 기소됐다. 유흥주점에 3,000만원, 호텔숙박료로 2,500만원, 골프장에 4,000만원, 스포츠클럽, 마시지업소에 5,500만원, 해외명품구매에 2,400만원 등 개인적 소비가 주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총 사용횟수는 1,677회였다.
피의자는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의해 구속된 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에서 지난해 11. 27.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로 징역 8년, 벌금 4억, 추징금 3억 5,000만원에 처해졌다. 이 판결은 항소심과 대법원을 거쳐 그대로 확정됐다.
피고인은 2010년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장 당시 뇌물공여자인 대형병원 원장을 알게 된 후 2012. 7. 피고인이 보건의료기술개발과장을 맡게 되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당시 공여자가 운영하던 병원은 보건복지부의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될 꿈을 갖고 있었고, 실제 이 병원은 2013년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등 전국 유명병원 9곳과 함께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한 해 보통 45억원의 국가지원금(연구지원비)을 수령해 그간 180억원 가량의 막대한 예산을 받았다.
피고인이 직접 힘을 써 연구중심병원에 뽑힌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수수 당시 피고인이 힘을 쓰려면 쓸 수 있던 위치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보건복지부의 국장을 법무부의 국장과 비교하면, 예컨대 법무부 검찰국장은 검사장급으로 전국의 검사 인사를 좌지우지한다.
법원은 명시적 청탁이 없었더라도 피고인의 당시 지위와 업무권한에 비추어 볼 때 직무관련성과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공여자는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돼야 하는 시기에 주무관청 공무원인 허 씨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진술하여 다소간 자신을 피해자로 묘사하였으나, 공갈에 이를 정도가 아니면 우리 법원은 공갈피해자로 보지 않고 뇌물공여자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공무원의 뇌물죄를 판단하는 데에 있어 법원이 직무관련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근거로, 일체공무설, 전체적 대가관계, 포괄적 대가관계, 불가매수성을 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난 호 ‘변호인 리포트’에서 필자가 소개한 바 있다(김학의 전 차관 사건 칼럼).
56세의 피고인이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명예로운 공직을 파탄내며 8년의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허망하기 짝이 없다.
한편 보건복지부가 ‘연구중심병원 선정’이 직접적 뇌물의 대가라고 보게 되면, 즉 인과관계를 인정하면 선정처분을 취소하게 되고, 수령한 연구비 180억원 전부를 정부로부터 환수당하게 된다. 취소는 소급효가 있고, 이 점은 민법도 같다.
대구 형사전문·이혼전문 변호사 | 법학박사 천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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