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앤피뉴스 - [책읽는 오후] 다만 멈춤을 두려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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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오후] 다만 멈춤을 두려워하며

공무원수험신문 / 기사승인 : 2023-10-01 13: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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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정숙.jpg

  

 

"다만 멈춤을 두려워하며"

 

사공정숙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제법 멀리 있는 은행을 찾아 나섰다. 세종시로 이사 온 후 집 가까이에 은행이 없어 인터넷에서 검색한 은행의 위치를 기억해가며 조심스레 낯선 길을 달렸다. 버스나 승용차를 이용하긴 애매한 거리의 세종에서는 자전거가 최적의 이동 수단이다. 한여름을 비켜 간 하오의 햇살이 보도 위에 눈부시고, 얼굴을 향해 부는 맞바람이 상쾌하다. 자전거 위에서 허리를 쭉 펴고 멀리 시선을 두는 여유도 가져보았다. 내리막길에서 페달을 멈추고 속도를 조절하며 달리는 것도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다.

 

올봄, 자전거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스스로 운동신경이 남다르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전거 안장에 올라앉은 첫날부터 기대는 무참하게 깨졌다. 균형을 잡기도 힘들었다. 오른쪽 페달을 밟고 왼쪽 페달을 밟으려는 순간 헛된 시도로 끝나거나 넘어지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체구가 조그마한 70대 할머니도 몇 번의 시도 끝에 무사히 트랙을 따라 돌기 시작했다. 강습장에는 한 사람, 두 사람 넘어지지 않고 페달을 돌리는 숫자가 늘어갔다. 사흘 후 그들은 모두 기어 넣는 법을 숙지하고 열을 지어 먼 곳까지 행군을 다녀왔다. 나만 덩그러니 다리 밑 강습장에 남겨 두고 말이다. 혼자 남아서 온갖 시도를 다해 보아도 자전거 타기는 내게 먼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왼쪽 종아리는 페달에 치여 손바닥보다 큰 멍이 자리 잡았다. 넘어지느라 팔, 어깨 쪽에도 멍이 생겨났다.

 

1주일이 지나서도 나는 자전거 바퀴를 굴리지 못했다. 그동안 나를 제외한 수강생들은 더 멀리 보란 듯이 원정을 다녀왔다. 그들은 지그재그로 좁은 공간에 커브를 그리며 타는 법을 배우고 내리막 경사와 오르막길을 달리는 기술을 익혀갔다. 드디어 강습 2주일째 끝 무렵 내게도 기적이 일어났다. 비록 10여 미터 거리에 불과했지만 마침내 자전거를 타 보인 것이다. 모두들 박수를 치며 격려해 주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떤 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남과 비교하며 부끄러워하거나, 좌절하는 일은 줄어드니 말이다. 낯이 두꺼워지는 걸까. 하루도 빼먹지 않고 꿋꿋하게 2주간의 강습을 마쳤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정해진 시험에 합격하여 빛나는 수료증을 받았지만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이제 어설프지만 바퀴를 굴리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고 뿌듯할 뿐이었다.

 

세종시에서는 1년에 3만 원을 내면 무제한으로 곳곳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우선 빌린 자전거를 타고 공원 뒷길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내가 다니는 자전거 길은 한적해서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겁이 나서 자전거를 세우고 지나가길 기다렸다. 커브는 엄두도 내지 않았다. 연습이 대가를 만든다고 했던가. 배운다는 것, 익힌다는 것은 시간 속의 무한반복이어서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자전거 타기를 체득해가는 중이다. 날렵한 안장 위에서 상체를 숙이고 도로 위를 질주하는 은륜의 행렬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나는 어쩌면 평생, 이 생에서는 동호회에서 타는 경주용이나 산악자전거를 타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는 많이 익숙해지고 기술이 섬세해졌음을 느낀다.

 

나무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현자(賢者)라고 불리는 나무, 나무를 닮고 싶어서일까. 언젠가부터 나의 좌우명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에게 ‘늦음을 두려워 말고 다만 멈춤을 두려워하라(不怕慢 只怕站)’는 말을 해준다. 지금껏 배우고 익힌 것 가운데 자전거를 배운 기쁨이 다른 무엇보다 큰 까닭은 남보다 늦되어 힘들게, 어렵게 배워서일 것이다. 결핍은 더 큰 자극으로 다가오는지 모른다. 더 늦고, 더 많은 실패로 나는 행복해졌다고 믿고 싶다. 배움의 지난한 과정을 지나고 나면 쉽고 편해짐을 몸으로 체득한 점이 정말 좋다. 모든 배움의 과정이 그러하다면 마음만 먹으면 나는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이다. 성취의 결과와 속도에서 남과 비교하는 것은 무한한 우주의 시공간 속에서 무의미할 뿐이라고 생각해 본다.


「저녁에서 밤으로 가는 초입 아련히 내려앉는 어둠의 밀도가 참 마음에 들어, 신호등 앞에서나, 호숫가 산책길에서나 누굴 마주쳐도 낯가림을 면하게 해주네, 허술한 옷차림에도 뻔뻔해지다가 점점 더 으쓱 어깨가 올라가지 페달을 밟는 순간부터! 누가 지구를 돌려봤는가? 거대한 풍차의 끄트머리를 한 발씩 디뎌 굴리듯, 풍경은 3차원의 깊은 안개 속으로 꼬리를 감춘다 쓰윽, 등받이 없는 왕좌에서 천상천하유아독존 나는 이제 지상에 빌붙어야 사는 불쌍한 짐승도, 없는 길을 내며 용을 쓰느라 창피한 줄 모르고 허공에서 똥을 갈기는 새들과는 영 다른 족속이지 머리 위엔 멀리서 달려오느라 허기진 별들이 반짝이며 박수, 박수를 보내고, 달리지 않으면 넘어질까 아슬아슬 공중 부양 중 바람의 갈기를 접수하고, 마군처럼 다가오는 어둠도 두 개의 동그라미로 헤쳐가 앞으로 앞으로! 여름 날벌레가 시절을 핑계 삼아 악수를 청하지만 미안 난 바빠, 신나게 지구를 돌려야지 지구를 돌려보면 알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 언제나 제자리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거든 낙마하여 지상의 짐승이 되는 그 자리로, 그래도 기억한다네 안장 높이만큼 고귀했던 순간을 증명하는 바람의 서명을, 시립한 검은 수목들의 비호를, 달을 향해 날아오르던 한 마리 짐승의 독백을」


올여름, 어스름한 저녁 시간에 자전거를 타면서 「기억」이란 제목으로 한 편의 시를 썼다. 조금 멋있어지고, 아름다워졌다고 뻐기는 지상의 한 마리 짐승에게 가만히 등을 두드려 주고 싶다.

 

[약력]

1998년 『예술세계』 수필 등단

2005년 『문학시대』 시 등단

계간 『문파』 주간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한국예총 전문위원

 

[저서]

시집 『푸른 장미』 수필집 『꿈을 잇는 조각보』

산문집 『노매실의 초가집』 『서울시 도보 해설 스토리북』

clean40@hanmail.net

 

[좌우명]

막에서 씨 뿌려 오아시스 만들고

중에서 꽃을 피워요

직하게 나누며 살아요

제를 마치는 날까지

 

신에게 홀대받더라도 다듬고, 기다리고, 가꾸어가는

꿈인 정원사가 되겠다.

[저작권자ⓒ 피앤피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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