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혐오의 시대에 던지는 인류학적 질문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의 위상은 처참하다. 대학의 인문 계열 학과들은 취업률이라는 단일 잣대 앞에 통폐합의 길을 걷고 있으며, 대중의 관심은 ‘돈이 되는 지식’이나 즉각적인 도파민을 제공하는 숏폼 콘텐츠에 쏠려 있다.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정답을 찾기에 급급한 시대, 우리는 거대한 실존적 위기 앞에서 길을 잃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극장가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단순한 SF 블록버스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생존’과 ‘효율’의 굴레에 갇힌 MZ세대에게 이 영화는 잊고 지냈던 인류학적 가치를 일깨우는 강력한 각성제다.
앤디 위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이야기는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는 외계 미생물로 인해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처하자, 홀로 우주로 나선 과학자 라일랜드 그레이스의 사투를 그린다. 설정만 보면 전형적인 과학적 해결법을 다룬 영화 같지만, 서사의 핵심은 예기치 못한 지점에서 폭발한다. 바로 주인공이 우주에서 만난 외계 존재 ‘로키’와 나누는 이타적 연대다.
오늘날 MZ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촘촘히 연결되어 있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고립된 세대이기도 하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타인은 협력의 대상이 아닌 극복의 대상이 되었고,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배타적 태도는 ‘혐오’라는 일상의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영화 속 그레이스는 생물학적 구조도, 언어도 전혀 다른 존재인 로키와 만난다.

여기서 인문학적 태도가 빛을 발한다. 그레이스는 정체불명의 존재를 위협으로 간주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 대신 끝없는 관찰과 대화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공통의 목표인 ‘상생’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 협력을 선택한다. 이는 효율성만을 따지는 자본의 논리나 혐오의 정서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내가 아닌 타자를 위해 나를 내던지는 행위야말로 인문학이 수천 년간 탐구해 온 ‘인간됨’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과학적 엄밀함을 유지하면서도, 결국 세상을 구하는 것은 수식이 아닌 ‘상상력’과 ‘의지’임을 역설한다. MZ세대가 직면한 기후 위기, AI의 급진적 발전, 경제적 불평등 같은 거대 담론들은 더 이상 기술적 해결책만으로는 풀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가 지금 극장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마주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그 기술을 다루는 인간의 철학적 깊이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외계인 로키와 지구인 그레이스가 서로의 언어를 치환하며 쌓아가는 우정은, 혐오와 갈등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에 ‘소통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연대의 상실에 있다. 영화는 묻는다. 인류 멸망의 순간, 당신은 옆에 있는 타자의 손을 잡겠는가, 아니면 홀로 남겨진 방주에 오르겠는가.
MZ세대에게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인문학적 텍스트다. 고립된 개인이 아닌, 거대한 우주 속에서 서로 연결된 존재로서의 우리를 발견하는 경험.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이 영화를, 그리고 인문학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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