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어사전에서 ‘어른’이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난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다. 시간은 흘러가고 나이를 먹으며 초·중·고를 마치고 대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인생, 나는 어쩌다 어른이 되었다. 아니,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이 책의 주인공 '윌'도 마찬가지로 어른다운 행동을 하는 어른은 아니다.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 '월'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마커스와 우연히 관계를 맺게 된다. 12살의 마커스는 아이지만 너무 어른 같다. 깊은 인간관계를 원하지 않던 윌에게 마커스를 통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상했다. 윌은 마커스가 그리웠다. 알을 깨고 나온 후로 윌은 벗거 벗은 채로 모든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방황하는 기분이 어떤지 마커스와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이 세상에 충고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하나 있다면 그건 마커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커스는- 그러니깐 옛날의 마커스는- 사라지고 있었다. p. 383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으로 평생 빈둥빈둥 살고 있는 윌의 삶에서 즐거움보다 의미가 중요한 것일까? 삶의 의미를 쫓고 있는 마커스에게 윌은 삶의 즐거움, 아이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윌은 마커스의 생활을 간섭하게 되면서 어른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 둘의 관계는 평범하지는 않지만, 삶에서 즐거움과 의미 중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서로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변화하고 성장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 방송이지만 EBS특강으로 최인철 교수의 ‘행복: 삶에서 즐거움과 의미’에 관한 강의내용이 떠올랐다. 인상 깊었던 내용 중에 행복의 척도가 되는 즐거움과 의미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사람의 일상생활을 측정하여 그래프화 한 것이다.
결론은 삶의 '행복'에 있어서 우리는 즐거운가, 아니면 의미가 있는가로 나눠서 판단하고 선택하게 되는데 그래프의 오른쪽 위로 방향성을 가지고 분포되어 가는 것을 비추어보면 즐거움과 의미는 양분된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의미 때문에 즐거움을 포기할 필요도 없으며, 즐거움을 찾을수록 자기 삶에서 의미를 줄어들 거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즐거움 속에 의미도 있고, 의미가 있는 곳에 즐거움도 함께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닉혼비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윌과 마커스가 서로를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하는 것, 즉, 삶의 즐거움과 의미가 서로 밀접하게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다. 성장소설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보는 소설 같지만, ‘아이답게, 어른답게’가 아닌 ‘나답게’ 변화하고 성장해 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소설이기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윌과 마커스이지만, 이 책에서 가장 ‘나답게’변화하고 성장해 가는 캐릭터를 뽑자면 마커스의 엄마인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고 키우며 힘겹게 삶을 이어 나간다.
남편과 이혼하고 둘만 남게 된 삶, 이 아이 때문에 자신의 삶이 더 무겁게 느껴지고 그런 자신이 죄책감이 들어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그녀의 착각은 둘이서 잘 헤쳐 나가고 있다고 합리화 시키며, 자신이 아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커스가 윌과 어울리면서 이 세상에 둘이 아닌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 있는 마커스를 보며,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자식에게 둠으로써 오는 무게감을 조금은 떨쳐버리게 된다.
일단,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게 그리 나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며, 사회에서 규정짓는 누구의 엄마, 아내가 아닌 ‘나답게’살아가야 함을 잊지 않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첫 걸음이다.
연휴 동안 카페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면서 읽었던 책이었는데, 잠시 고민을 내려놓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즐거운 독서시간이었다.
'미소'로 찬찬히 읽어내주는 人 ㅣ은향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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