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금년 신년사를 통해 올 한해 가장 중요한 검찰의 책무를 밝혔다. 국민의 인권보호.
문 전 총장은 “검찰청법이 제정된 지 70년이 되는 해인만큼 이 시대 국민이 원하는 검찰로 거듭나야 한다”면서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사항을 강조했고, 이는 윤석열 신임 총장이 이어받아 해결해야 할 유산이 되었다.
1. 형사절차에서 피해자의 권리 보장.
2. 피의자와 피고인을 배려하고, 각 단계별로 충분한 정보 제공.
3. 피의자에 대한 변호인 조력권의 실질적 보장.
4. 참고인 등 제3자의 인권 침해 금지 등 신중한 수사.
5. 민생 수사에 집중.
문 전 총장의 중점 강조사항에 대한 필자의 의견은 아래와 같다.
위 1.은 이미 형사소송법과 특별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각 법 시행령, 성폭력범죄 등 사건의 심리·재판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공무원 인사관리규정,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서 상세히 규정하고 있었으므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공무원이 실정법을 준수하며 완성도 높게 인권중심의 수사, 2차 피해 방지 위주의 수사를 하면 되므로, 정신교육, 법교육이 중요할 뿐이다. 현재 법에는 부족한 부분이 별반 없다.
위 2.는 피조사자에 대한 유죄추정적 시각을 가지는 한, 또 검찰이 구속을 골인으로 간주하는 한, 나아가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처벌의사가 확고할 경우 무조건 기소를 당연시하는 한 피의자를 배려한 수사는 불가능하다. 각 사건 수사에 대해 인권침해를 감시하거나 처분결과의 적정성을 담보할 장치가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사의 전권을 가진 전국의 각 검사가 총장의 말을 들을 리도 없다. 총장은 유한하나, 검사 자신의 법적 권한은 무한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해법은 수사권 조정, 기소권 통제뿐이다.
또 피고인과 피해자에게 각 단계별 충분한 정보제공을 할 리 만무하다. 검찰보존사무규칙(법무부령)과 사건기록 열람·등사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대검 예규)을 근거로 먼저 정보제공을 할 리 없고, 피해자 등이 종결사건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신청해도 위 규칙을 토대로 거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검찰보존사무규칙 등 하위규정에서 복사금지사유로 삼고 있는 제한사유는 형사소송법 등 상위법규가 규정하지 않은 제한사유를 마음대로 정한 것이어서 무효라는 점이다. 동 규정이 무효이므로, 이에 터잡은 검사장의 불허처분이 위법하여 취소된 사례가 여러 건에 달하는 데도, 현재까지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 등 각 청 책임자는 (무효인 규정임을 알고도) 여전히 수사기밀, 사건당사자 명예보호 등의 이유로 사건당사자에게도 복사를 불허하고 있다. 이는 징계사유이자 국가배상사유다. 자칫하면 수사미진을 감추고자 하는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로 오해받을 수 있다.
그래서 대구지방검찰청이 2019년 새해를 맞아 인권 개선의 의지를 보이고 있더라도, 그는 위장에 불과하여 믿을 것이 못 된다는 필자의 글로, ‘대구지방검찰청의 인권 거듭나기’(영남일보 2019. 1. 4.자)가 있다. 이 글을 보고 모 언론사 법조출입기자가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대구지검은 불허했고, 해당 기자는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위 3.과 관련해서는, 변호인이 사기꾼이라 생각지 말고 법률전문가인 그의 글과 자료를 상세히 보아주기만 해도 좋다. 총장이 말하는 바와 같이 ‘변호인조력권 실질적 보장’이라는 거창한 용어를 쓰지 않아도 된다. 명백히 드러난 무혐의·무죄의 주장과 각 근거자료를 통해 그에 상응한 수사 처분을 하면 되는 것이지, 일부러 잘 봐줄 필요가 없다. 변호인의 주장대로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무혐의 처분을 하면 되는 것이고, 자수자에 대해서는 불구속 기소하면 되는 것이다.
위 4.와 관련해서는, 압수·수색 시 야간 수색을 금지하고, 어린 자식이 집에 있는 시간대 수색을 금지하며, 수색을 마친 공간에 대한 정리를 통해 피압수자의 인권을 존중함을 표시하면 족할 것이다. 현재의 검찰은 “제3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운운할 자격이 없다.
위 5.와 관련해서는, 다수 피해자와 그 유족들의 원한을 풀어준 ‘가습기 살균제 재수사’처럼만 수사해 주기를 국민은 바란다. 민생범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억울한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고 공권력으로 거대악에 맞서 정의를 실현해 주면 되는 것이다.
특수수사로 지대한 비난을 받다가 경찰로 수사권이 이양될 시점에 민생수사에 집중하여 앞으로는 모범적인 수사기관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전략적이고 지능적, 임시변통에 불과하여 진정성이 의심된다.
모름지기 사람은, 공무원은, 공권력은 평소 잘하여야 하고, 도리와 법칙에 맞게 힘을 사용해야 한다. 자의적 법해석으로 인권을 말살하는 공무수행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인권침해의 1순위에 항상 검찰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2019. 6. 25. 문무일 전 총장은 과거사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김학의 사건, 용산참사 사건, 유우성 간첩 조작 의혹 사건 등에 대해 해명과 사과를 했다.
특히 그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과 관련해서는, 검찰이 1차, 2차 수사를 통해 못 밝힌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취지와 더불어 진실을 밝히지 못한 것은 검사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다만 구체적 수사 애로와 관련해서는, 성관계 동영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수사의 장애요소가 됐고, 당사자 진술도 없어 기소하기 어려웠다는 취지의 해명을 했다. 그리하여 김 전 차관은 강간죄가 아니라 성접대를 포함한 1억 7천만원의 뇌물죄로 구속기소된 상태다.
한편 윤중천 사건 수사외압에 대해서는, 검찰청, 경찰청, 국가기록관을 압수·수색했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고, 공무원들은 수사에 불려와 자신의 직권남용 의혹 부분은 진술하지 않아 제대로 수사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했는 바, 이는 공무원들이 피의자가 되자 특혜를 받은 것으로 읽혀져 타당하지 않은 해명이라 생각한다. 수사에 불려 나와 자신의 범죄 의혹과 관련해 진술하지 않는다는 것이 수사의 장애사유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용산참사 사건은, 처음에 기록을 바로 공개했으면 의혹이 부풀려지지 않았을 것인데 당시로서는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그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으나, 개인정보를 비실명 처리할 시간과 자원이 주어졌음에도 그러한 일반적 노력을 게을리한 채 개인정보보호법 뒤로 숨는 변명이라면 이는 옳지 않다. 당시 수사기록이 방대했다는 것은 필자도 들은 바가 있으나, 검찰청의 막대한 인력을 제때에 상당히 동원하였는지 추가로 해명돼야 한다.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서는, 검사가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증거를 면밀히 살피고 증거의 연결성을 따져봤어야 했는데 과오가 있고, 다만 당시 검사들이 고소돼 수사 중이므로 수사에서 밝혀질 것이라는 원론적 사과만을 하여 부족하다. 검사가 경찰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것이 검사의 객관적 성질, 높은 법리수준인데, 검사라는 사람들이 증거를 면밀히 살피지 않고 증거 간의 연결성을 따져보지 못했다면 이는 경찰보다 나을 것이 없는 수준을 자인한 꼴로,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간 검사의 경찰에 대한 상대적 우위를 검찰에서 주장해 왔는지 의문이다.
다만 문무일 총장과 같이 깨인 공무원이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공정한 검찰권 행사라는 본연의 소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깊이 반성한다’는 발언, ‘국가 권력에 의해 국민의 인권이 유린된 사건에서 국민 기본권 보호 책무(사건 실체를 축소·은폐하지 않고, 가혹행위에 따른 허위 자백·조작증거를 제때 걸러내야 했던 책무)를 소홀히 했음’을 자인하는 발언을 통해 국민에게 사과한 처신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 총장이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검찰 과거사 재조사와 관련한 검찰의 암울한 시기에 취임하여 검찰 개혁의 바람 앞에서 국민의 뜻을 헤아리려 노력한 모습과 온화하고 담담하게 대처했던 인간적 모습을 생각하면 국가의 주요 인재가 퇴장하는 시점에 수고의 박수와 아쉬운 마음을 전한다.
대구 형사전문·이혼전문 변호사 | 법학박사 천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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