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낙준 변호사(백준법률사무소)
1.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최낙준 변호사입니다. 근래 성년후견제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필자가 수행한 한정후견 개시 사건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필자는 위 사건에서 한정후견 개시 청구가 위법·부당하다고 다투는 측의 대리인이었기 때문에, 피후견인으로 지정된 사건본인의 입장에서 후견개시제도를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성년후견 개시 사건에서 정신감정 결과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1심법원이 청구인의 신청을 기각하였고, 청구인이 다시 항고하여 항고심이 항고기각 결정을 내리기까지 2년 넘게 진행된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청구인측과 참가인측의 여러 주장이 있었지만, 아래에서는 핵심쟁점만 기술하겠습니다).
2. 사실관계
가. 청구인 ‘갑’은 3형제 중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재산을 형제들과 공동상속하였고, 3형제 사이에 상속재산 분할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진 후 그 협의에 따른 현실적인 분할 절차가 지연되면서 형제간 분쟁 발생이 우려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나. 그러던 중 청구인 ‘갑’은 3형제 중 막내 ‘을’이 알콜중독으로 인해 정신과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고, 이러한 정신적 제약으로 인해 거액의 재산을 기부하는 등 재산을 낭비한다는 이유로 ‘을’을 사건본인으로 하여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하였습니다. ‘을’은 위 심판청구서를 법원에 제출하면서 ‘을’의 현재 상태(병증)를 소명하기 위해 ‘문서(진료기록)송부촉탁’ 및 ‘정신감정촉탁’ 등을 함께 신청하였습니다.
다. ‘을’은 평소 의지하고 있던 3형제 중 차남인 ‘병’에게 “한정후견 개시를 원하지 않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하였고, ‘병’은 ‘을’을 위해 위 심판청구에 이해관계인으로 참가하여 한정후견 개시 청구의 위법·부당성을 다투게 된 사건입니다(필자는 참가인을 대리하게 되었습니다).
3. 관련규정
가. 민법 제12조 제1항은 “가정법원은 질병,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 대하여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미성년후견인, 미성년후견감독인, 성년후견인, 성년후견감독인, 특정후견인, 특정후견감독인,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청구에 의하여 한정후견개시의 심판을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가사소송법 제45조의 2 제1항은 “가정법원은 성년후견 개시 또는 한정후견 개시의 심판을 할 경우에는 피성년후견인이 될 사람이나 피한정후견인이 될 사람의 정신상태에 관하여 의사에게 감정을 시켜야 한다. 다만, 피성년후견인이 될 사람이나 피한정후견인이 될 사람의 정신상태를 판단할 만한 다른 충분한 자료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한정후견 개시의 요건은 ① 정신적 제약이 있고, ② 이로 인해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해야 하며, ③ 정신적 제약과 사무처리 능력의 부족 사이에 인과관계의 존재 등이라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의 쟁점은 사건본인에게 정신적 제약이 있는지,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지 등이라 할 것입니다. 청구인 '갑‘이 법원에 ‘문서(진료기록)송부촉탁’ 및 ‘정신감정촉탁’ 등을 신청한 것 역시 사건본인의 정신적 제약 등을 소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 한편 가사소송법 제37조 제1항은 “심판청구에 관하여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재판장의 허가를 받아 절차에 참가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가사소송규칙 제21조 제1항은 “법 제37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이해관계인의 참가신청은 참가의 취지와 이유를 기재한 서면으로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병’은 사건본인 ‘을’과 형제관계에 있는 자로서 신분상·법률상 이해관계가 인정되므로, 이 사건 심판에 참가하기 위해 법원에 참가신청서를 제출하여 위 심판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4. 사건 경과
가. 청구인이 법원에 신청한 사건본인에 대한 정신감정촉탁 신청이 채택되었고, 이후 감정의로부터 감정서(이하, 'A감정서'라고만 함)가 회신되었는데, 그 취지는 ‘사건본인에게 정신과적 증상이 지속되고 있어 사무처리할 능력이 부족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위 'A감정서'의 감정내용은 필자가 느낀 사건본인의 상태와는 차이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사건본인에 대한 지능지수(IQ), 사회지수(SQ) 등 심리검사를 생략한 채 감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위 감정서를 작성한 병원은 사건본인이 최근에 강제입원(행정입원)되었던 정신병원이었다는 점에서 법원이 위 병원을 감정기관으로 지정한 것이 적절한지도 의문이 드는 상황이었습니다.
지능지수(IQ), 사회지수(SQ) 등 심리검사 결과는 독립적 생활, 경제활동 등 사무를 처리할 능력을 판단하는 핵심지표로서, 사건본인에 대한 심리검사를 생략한 채 정신감정을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정신적 제약이 있는 성인이라도 지능지수(IQ), 사회지수(SQ) 등이 정상인의 지수에 가깝다면 타인의 도움 없이 가정생활, 직장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 A감정서는 도저히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나. 이에 따라 참가인측은 법원에 사건본인에 대한 또다른 감정촉탁을 신청하였고, 위 신청이 채택된 후 다른 병원의 감정의로부터 감정서(이하, ‘B감정서’라고만 함)가 회신이 되었는데, 위 감정서에 따르면 “사건본인은 지능(IQ), 사회성숙도(SQ)가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는 아닌 상태로서, 자기 의사결정이 가능하며 독립적인 생활과 경제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 참가인측은 위 심판절차에서 청구인측과 참가인측이 각 신청한 정신감정촉탁 결과가 상반되지만, 청구인측의 감정서가 부당하다는 점, 사건본인이 한정후견 개시를 원하지 않고 있으며 치료의지가 강하다는 점 등을 주장하며 청구인의 주장을 반박하였습니다. (위 심판청구에서는 사건본인의 기부행위를 낭비로 볼 수 있는지도 다투어졌으나 이 사건의 핵심은 정신적 제약으로 인해 사무처리능력이 있는지 여부라 할 것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생략하였습니다.)
라. 법원은 청구인측과 참가인측의 주장이 대립되자, 여러 차례 심문기일을 열어 청구인과 사건본인, 참가인의 주장을 확인하는 한편 수명법관을 통해 사건본인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법원은 B감정서를 인용하면서 청구인의 한정후견 개시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5. 마무리하며
근래 성년후견제도의 활용을 검토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지만, 성년후견제도의 주된 목적이 피후견인의 재산관리가 아닌 복리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필자는 이 사건을 통해 정신적 제약이 있지만 사무처리 능력이 충분히 있는 사람도 자칫 피한정후견인으로 지정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성년후견제도는 반드시 필요한 제도일지라도 그 운영에 있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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