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낙준 변호사(백준법률사무소)
1.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최낙준 변호사입니다. 최근 경기가 악화되면서 적지 않은 회사들이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회사 폐업은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폐업회사의 자산을 양수하여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는 신설회사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되는 현실이 ‘아이러니’합니다.
폐업하려는 회사의 자산을 양수한 신설회사가 의욕적으로 새롭운 사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 폐업회사의 채권자가 위 신설회사에게 폐업회사에 대한 채권을 행사하면서 사업진행이 순탄하지 못한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이런 사건이 소송으로 진행되는 경우 주된 쟁점 중 하나가 소위 ‘법인격부인론’입니다. 필자가 신설회사를 대리하여 진행했던 구체적 사건을 통해 ‘법인격부인론’이 어떻게 문제되고, 판단기준이 무엇인지 등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이 사건에서는 ‘영업양수인의 상호 속용’ 문제도 다투어졌으나, 위 문제는 사건의 단순화를 위해 생략하기로 합니다).
2. 사실관계
가. 유한회사 ‘지리산농산’(이하 ‘소외회사’라고 함)은 양곡가공, 판매 등의 사업을 하였으나 경영상태 악화와 채무누증 등으로 정상적이 가동이 어렵게 되자, 회사 소유의 부동산, 공장시설 등을 처분하여 부채를 청산하는 방법으로 폐업을 모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소외회사의 부채 중에는 oo은행(이하 ‘원고은행’이라고만 함)으로부터 빌린 10억원의 대출금 채무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나. 한편 김00 등 3인은 주식회사를 설립한 후 소외회사가 처분을 시도하는 재산을 양도받아 같은 곳에서 양곡가공, 판매 등의 동종 사업을 하기로 하고, 소외 회사측과 협의하여 소외회사의 부동산, 공장시설이 모두 근저당 목적물로 제공되어 있는 상태임을 감안하여 위 재산을 약 2억원에 매수하기로 하였습니다. 이후 김00 등 3인은 ‘주식회사 지리산농산 농업회사’(이하 ‘피고회사’라고만 함)를 설립하였고, 위 피고회사는 소외회사와 위 부동산, 공장시설 등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소외회사에게 약정된 대금을 지급한 다음 부동산 등에 대한 소유권이전절차를 마친 후 소외회사와 같은 곳에서 양곡가공, 판매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다. 그러나, 피고회사의 사업은 곧 중단되었는데, 그 이유는 원고은행이 위와 같은 피고회사의 소외회사 재산 취득이 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그 재산에 대하여 처분금지가처분결정을 얻어 이를 집행하고, 피고회사를 상대로 그 처분행위의 취소 및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 등을 구하는 소를 제기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후 원고은행이 제기한 사해행위취소의 소는 원고 승소 판결이 선고되고 확정되었습니다.
라. 이런 상황에서 위 부동산, 공장시설의 근저당채권자 000이 피고회사가 양도받은 위 재산에 대하여 임의경매를 신청하여 경매가 진행되었습니다. 피고회사는 소외회사로부터 양도받은 재산권을 비롯한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위 경매에 참여하여 위 부동산, 공장시설 일체를 금 7억원에 낙찰받아 그 소유권을 취득하였습니다.
마. 이후 피고회사는 정상적인 사업을 영위하는 상황이었는데, 원고은행이 ‘피고회사는 소외회사의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므로 소외회사의 원고에 대한 대여금 채무 10억원을 변제할 책임이 있다’라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3. 쟁점 관련 판례
가. 대법원은 “기존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하였다면, 신설회사 설립은 기존회사의 채무면탈이라는 위법한 목적달성을 위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한 것이므로, 기존회사의 채권자에게 위 두 회사가 별개의 법인격을 갖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 할 것이어서 기존회사의 채권자는 위 두 회사 어느 쪽에 대하여서도 채무 이행을 청구할 수 있고, 이와 같은 법리는 어느 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이미 설립되어 있는 다른 회사를 이용한 경우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기존회사의 채무를 면탈할 의도로 다른 회사 법인격을 이용하였는지는 기존회사의 폐업 당시 경영상태나 자산상황, 기존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유용된 자산의 유무와 정도, 기존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이전된 자산이 있는 경우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는지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여야 한다.”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1. 5. 13. 선고 2010다94472 판결).
또한 신설회사가 법인격을 남용하였다고 인정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고 회사는 소외 1 주식회사와 상호, 상징, 영업목적, 주소, 해외제휴업체 등이 동일하거나 비슷한 점, 소외 1 회사와 일부 다른 피고 회사의 주요 이사진이나 주주 대부분이 소외 1 회사의 지배주주로서 대표이사였던 소외 1의 친ㆍ인척이거나 소외 1 회사에서 소외 1의 직원이었던 점, 피고 회사는 대외적으로 영업 등을 하면서 소외 1 회사와 동일한 회사인 양 홍보하였으며, 위 소외 1과 피고 회사의 대표이사인 소외 2도 소외 1 회사에서의 직책대로 활동한 점, 그에 따라 피고 회사가 외부에서 소외 1 회사와 동일한 회사로 인식된 채로 공사 등을 수주한 점, 피고 회사 내부적으로도 여전히 소외 1이 회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이 사건 제1심판결로 피고 회사가 소외 1 회사의 채무를 부담하게 되는 상황이 되자 이번에는 소외 1의 아들 등이 소외 2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피고 회사와 관련된 공사를 수주한 점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 회사는 소외 1 회사에 비해 직원 수 등 그 규모는 줄어들었으나 소외 1 회사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로서 소외 1 회사의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소외 1 회사와 별개의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 형식만 갖춘 것이라 할 것이어서 피고 회사가 원고들에 대하여 소외 1 회사와 별개의 법인격임을 내세워 그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거나 법인격을 남용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04. 11. 12. 선고 2002다66892 판결).
4. 사건 경과
가. (1) 원고회사는 피고회사가 소외회사의 부동산, 공장시설을 양수한 후 같은 곳에서 유사한 상호를 쓰면서 동종영업을 하고 있는 점, 피고회사의 임원 중 일부가 소외회사 임원 출신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소외회사의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아울러 소외회사에서 피고회사로 유용된 자산이 있는지, 소외회사에서 피고회사로 이전된 자산이 있는 경우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는지 여부 등을 입증하기 위해 관련단체에 문서제출명령신청 등을 하였습니다.
(2) 피고회사를 대리한 필자는 피고회사가 소외 회사의 재산을 양수한 경위와 이유, 피고회사가 소외회사의 재산을 양수하기 위한 매매대금이 소외회사에 정상적으로 지급된 점, 위 양수대금은 피고회사가 독자적으로 마련한 점, 특히 피고회사가 소외회사 재산을 양수한 행위는 원고회사의 사해행위 취소소송으로 인해 취소되었고 경매절차를 통해 취득한 사실 등을 근거로 원고의 주장을 반박하였습니다.
나.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법인격 남용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 피고회사가 소외회사의 자산과 부채를 평가하여 2억원에 소외회사의 영업용 재산을 매수하기로 하고 그 대금을 모두 지급한 점, 피고회사는 원고회사가 처분금지가처분신청 및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등으로 위 매매계약이 취소될 우려가 있어 위 매매계약에 따른 채무인수가 어렵게 되자, 소외회사의 영업용재산 대부분을 경매절차를 통하여 취득하였고 그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상당한 금액을 대출받기까지 한 점 등을 종합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하였고, 확정되었습니다.
5. 마무리하며
가. 폐업회사의 재산을 정상적으로 양수한 신설회사와 채무면탈 목적으로 위 재산을 양수한 회사는 그 외형만으로 쉽게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피고회사가 폐업회사의 재산을 양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폐업회사와 유사한 상호, 동일한 영업목적과 주소 등으로 사업을 시작하였고, 양 회사의 임원이 중복되는 등 외형상 폐업회사와 동일성이 있는 것으로 오인할 여지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설회사의 설립경과를 내부적으로 꼼꼼히 살펴보면, 채무면탈 목적이 없다는 사실 드러나게 됩니다. 피고회사가 폐업회사의 재산을 경매절차를 통해 매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위 매수비용을 폐업회사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마련하였다는 사실 등이 밝혀져 원고회사의 주장이 배척된 사건이었습니다.
나. 한편, 이 사건을 보면 원고회사가 피고회사를 상대로 사해행위취소소송을 제기하고 위 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은 점이 피고회사에게 유리하게 요소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원고회사가 사해행위취소소송을 제기하는 대신에 바로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면, 이 사건은 보다 복잡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신속한 법적 대응방법 만큼이나 신중한 법적 대응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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