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들어가며
안녕하십니까. 김용정 변호사입니다. 오늘은 양심적 병역거부의 의미,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지 등과 관련하여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9도17322, 판결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II. 사실관계
여호와의 증인에서 침례를 받지 아니한 피고인이 그 신도라고 주장하면서 지방병무청장 명의의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입영일부터 3일이 지나도록 입영하지 않고 병역을 거부하였다.
III.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9도17322, 판결
가. 원심 판결의 요지
원심은, 다음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가. 피고인은 아직 정식으로 침례를 받지 아니하였으나 이른바 ‘모태신앙’으로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인 어머니의 영향하에 어렸을 때부터 위 종교를 신봉하여 왔다. 나. 피고인은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하고, 신앙생활과 관련된 각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등) 피고인의 병역거부는 신앙 또는 내심의 가치관·윤리적 판단에 근거하여 형성된 진지한 양심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서 병역법 제88조 제1항이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이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보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나. 대법원 판결의 요지
(1)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윤리적·도덕적·철학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형성된 양심상 결정을 이유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의무의 이행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그 불이행에 대하여 형사처벌 등 제재를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비롯한 헌법상 기본권 보장체계와 전체 법질서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된다. 따라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이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
구체적인 병역법 위반 사건에서 피고인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할 경우, 그 양심이 과연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인지를 가려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양심을 직접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으므로 사물의 성질상 양심과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예컨대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주장에 대해서는 종교의 구체적 교리가 어떠한지, 그 교리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명하고 있는지, 실제로 신도들이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는지, 그 종교가 피고인을 정식 신도로 인정하고 있는지, 피고인이 교리 일반을 숙지하고 철저히 따르고 있는지,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오로지 또는 주로 그 교리에 따른 것인지, 피고인이 종교를 신봉하게 된 동기와 경위, 만일 피고인이 개종을 한 것이라면 그 경위와 이유, 피고인의 신앙기간과 실제 종교적 활동 등이 주요한 판단 요소가 될 것이다.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과 동일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실형으로 복역하는 사례가 반복되었다는 등의 사정은 적극적인 고려요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위와 같은 판단 과정에서 피고인의 가정환경, 성장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등 전반적인 삶의 모습도 아울러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양심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통하여 형성되고, 또한 어떤 형태로든 그 사람의 실제 삶으로 표출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모든 종교는 각각의 교리에 맞는 고유한 의식을 가지기 마련이고, 이러한 의식은 어느 한 종교를 다른 종교들과 구분하는 기준이 되거나 그 종교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 중의 하나인 것이며, 신도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에 의하여 대대로 유지·계승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어느 종교의 신도들이 그 고유의 의식에 참여한다는 것은 종교생활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이는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피고인은 자신이 이른바 ‘모태신앙’으로서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인 어머니의 영향 하에 어렸을 때부터 해당 종교를 신봉하여 왔다고 주장하면서도, 위 종교의 공적 모임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그 종교의 다른 신도들로부터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중요한 의식인 침례를 병역거부 당시는 물론이고 원심 변론 종결 당시까지도 받지 아니하였다. 비록 침례를 받았는지 여부 자체가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이 그의 내면에 실재하는지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사항은 아닐지라도, 종교적인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고 있는 이 사건의 특성상 피고인이 밝히는 양심과 불가분적으로 연계된 종교적 신념이 얼마만큼 피고인에게 내면화·공고화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단초로 삼기에는 충분하다. 더욱이 피고인은 여호와의 증인에 정식으로 입문하는 의식인 침례를 아직까지 받지 않은 경위와 이유는 물론이고, 향후의 계획 등에 대하여도 구체적으로 밝히거나 이를 뒷받침할 자료를 제시한 바가 없다.
또한 이 사건 기록에는 피고인이 자신이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로서 봉사활동을 한 자료라면서 제출한 사진 몇 장과 학교생활에 관한 자료로 제출한 초·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가 편철되어 있을 뿐, 위 종교에서 피고인을 정식 신도로 인정하고 있는지, 피고인이 교리 일반을 숙지하고 철저하게 따르고 있는지, 피고인의 신앙기간과 실제 종교적 활동이 어떠하였는지 등을 보여주는 위 종교단체 명의의 사실확인서나 그 밖에 이에 관하여 알 수 있는 다른 자료들은 제출되지 않았다.
이처럼 피고인이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라고 하면서도 아직 침례를 받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종교적 신념의 형성 여부 및 그 과정 등에 관하여 구체성을 갖춘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 있어, 피고인의 주장과 달리 가정환경 및 성장과정 등 삶의 전반에서 해당 종교의 교리 및 가르침이 피고인의 신념 및 사유체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 지속적이면서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고 보기 어려운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나아가 설령 피고인이 그 주장대로 침례를 받지 않고도 지금까지 종교적 활동을 하여 온 것이 맞는다 하더라도, 이러한 종교적 활동은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 내지 신앙에 관하여 확신에 이르거나 그 종교적 신념이 내면의 양심으로까지 자리 잡게 된 상태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행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피고인이 병역거부에 이르게 된 원인으로 주장하는 ‘양심’이 과연 그 주장에 상응하는 만큼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인지, 종교적 신념에 의한 것이라는 피고인의 병역거부가 실제로도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서는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으로서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IV. 대상판결에 대하여
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은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모집에 의한 입영 통지서를 포함한다)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일부터 다음 각 호의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 대법원은 피고인이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라고 주장하면서도 아직 침례를 받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종교적 신념의 형성 여부 및 그 과정 등에 관하여 구체성을 갖춘 자료를 제출하지 아니한 점 등을 이유로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다. 대법원은 대상판결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의 의미 및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시하였는바, 유의미한 판결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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