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학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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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호 변호사 |
독일에서는 강독, 세미나, 연습으로 대학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 독일에서 공부하신 교수님 중에는 강독의 형식으로 본인이 저술한 교재를 저자 직강을 하신 분이 계셨다. 함께 공부하던 학생 중에는 자를 가지고 와서 펜으로 교재에 줄을 치면서 공부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친구가 지금은 대법관이 되었다.
헌법학을 공부하는데 기본적으로 정치학, 역사학 등에 대한 기초 소양이 토대가 되어 있으면 학습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로크의 정치철학 등을 미리 공부하였으면 기본권을 이해하는데 많은 기초가 쌓여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을 공부하면 헌법재판 부분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헌법의 구체화법이라 일컬어지는 행정법을 공부하면 헌법학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된다. 결국 법학의 많은 부분을 공부할수록, 세상을 많이 알수록 헌법학 학습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어찌보면 모든 법학 과목을 전부다 공부한 후에 헌법학을 다시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87년 현행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헌법재판소에서는 기본권에 관한 많은 결정을 생산하였다. 헌법재판소 이후의 우리 헌법은 드디어 ‘살아 있는 법’으로서 기능을 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외국의 이론을 중심으로 공부를 하였는데,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면서 우리 주변의 사건이 헌법적 판단을 받게 되었다. 그후 헌법학 교과서는 헌재의 결정을 수록하여 소개하는 일이 많아졌다.
학부 시절에는 권영성, 김철수, 최대권 교수님의 강의가 있었다. 권영성 교수님의 헌법학원론은 수험서로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었고, 김철수 교수님의 헌법학개론은 초보자들이 읽기에는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4학년 때에는 김철수 교수님의 ‘정치와 법’을 수강하기도 하였다. 최대권 교수님은 법사회학적 접근을 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검사로 일을 하다가 부부장검사가 되었을 때 헌법재판소 파견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헌법재판소에 3년 근무하던 동안 헌법학의 바다에 푹 빠질 수 있었다. 헌재에 파견된 것을 기회로 헌법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박사과정 입학 시험을 보는 것도 큰 일이었다.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검사로 근무하였을 뿐 헌법학을 공부하지 아니한지 15년이 넘었는데, 다시 헌법학 교과서를 가지고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학문의 경향도 바뀌고, 배우는 것도 많이 변경되었는데, 출제경향을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모교 출제예상 교수님의 중간고사, 기말고사의 기출문제를 수집하고, 최신 논문들도 모두 수집하여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운이 좋아 합격을 한 후 박사 과정에 입학하여 성낙인, 정종섭, 송석윤 교수님들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전업 학생으로 공부하는 것도 힘든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것은 참으로 힘들었다. 독일어 원서를 읽는 것도, 일본어 번역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미국 판례는 읽어도 요지를 추출해 내는 것이 용이한 일은 아니었다. 무릇 학문을 하려는 사람은 외국어를 잘 하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연구관을 조세권조, 기본권조, 사회권조로 나누어서 업무를 분장하였다. 형사 업무에 경험이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 기본권조에 소속되게 되었다. 검사들은 기소, 불기소, 혐의없음 등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헌법연구관들은 기본권의 보호영역, 위헌, 합헌 등과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 자목련이 피어 있고, 백송이 내려다보고 있는 헌법재판소 마당을 걸으면서 기본권을 논의하였던 많은 추억이 생각난다. 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공부 모임을 만들어 독법강독도 하고, 영문 강독도 하면서 공부를 지속하였다. 지도교수인 성낙인 총장님의 헌법학 교과서를 여러 번 읽으면서 많은 의견을 전해드렸고, 성 총장님 교재의 서문에 필자의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최근 헌법학 강의를 하면서 보니 요즘 학생들은 헌법학 교재를 가급적 구입하지 않으려고 한다. 교재를 구입하지 않고, PPT로 내용을 요약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문해력이 많이 저하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헌재 연구관을 역임한 한수웅 교수님의 ‘헌법학’은 상당히 수준이 높아서 헌법재판 의견서를 작성하는데 많이 참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함께 연구관으로 근무한 동료 중에 각급 대학의 헌법학 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헌법 시험 출제를 할 때 박스에 헌재 결정을 넣어 놓고, 합헌인 것은 모두 몇 개인가 하는 식의 객관식 문제를 출제하면 답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주관식으로는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작성해보라고 하면 금방 실력의 차이가 드러난다.
헌법학 공부를 하다보면 뜬 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구나 하는 경우도 있고, 몇 자 되지도 않는 헌법조문으로 국가의 조직, 작용뿐만 아니라 기본권에 관한 내용을 모두 포섭하고 있으니 쉽지 않다는 느낌을 가질 때도 있다. 헌법재판소 국선대리도 하면서 기본권 보호를 위하여 열심히 의견서를 작성하여 얼마 전에는 기소유예처분취소 결정을 받기도 하였다. 행정소송을 하면서는 위헌법률심판제청도 해 보았다. 지난 해에는 행안부장관에 대한 탄핵사건에도 관여하면서 법률가로서의 경험을 넓혔다. 매월 마지막주 목요일에 헌법재판소에서는 선고를 한다. 우리의 삶에 깊이 스며있는 헌법학의 향기를 느끼며 오늘도 헌법학 교과서를 열어보고,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미를 새겨본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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