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와 업무상 재해 ”
| ▲최창호 변호사 |
현대 사회에서 노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자아실현의 통로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측면이 있다. 특히 '과로사'는 급격한 산업화와 노동 환경의 변화 속에서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고통스러운 단면이다. 근로복지공단이나 법원이 과로사 여부를 판단할 때 적용하는 법리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정교해지고 있으나, 여전히 개별 사건에서는 치열한 법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2. 사인 불명과 입증책임
가. 사인불명
과로사 사건에서 가장 까다로운 대목 중 하나는 망인의 사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경우다. 부검을 하지 않았거나, 부검을 했더라도 직접적인 사인을 특정할 수 없는 '사인 불명'의 상황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기는 매우 어렵다.
나. 입증책임
‘업무상의 재해’를 인정하기 위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증명책임은 업무상의 재해를 주장하는 근로자 측에게 있다(대법원 2021.9.9. 선고 2017두45933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그러나 법원은 근로자가 사망 전 과도한 업무를 수행했음이 증명되고, 그 업무가 심혈관계 질환 등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비록 정확한 사인이 의학적으로 100% 입증되지 않더라도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단하는 유연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적어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인과관계가 있다. 인과관계는 의학ㆍ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하고,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질병이나 기존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되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에도 증명이 있는 경우에 포함된다. 이때 업무와 질병 또는 사망과의 인과관계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20.5.28. 선고 2019두62604 판결 등 참조). 즉, 평소 건강했던 근로자가 돌연사했고 사망 직전 극심한 업무 과중이 있었다면, '사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기보다는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긍정할 여지가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망인의 기초 질환 여부와 업무 강도 사이의 상관관계를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는 전문적인 법적 조력이다.
3. 만성적 과중 업무 판단의 척도
고용노동부 고시와 판례는 과로사의 주요 원인으로 '만성적 과중 업무'를 지적하고 있다. 이를 판단하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는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했는지 여부다. 특히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와 질병 사이의 관련성이 매우 강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업무시간은 업무상 과로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서 하나의 고려요소일 뿐, 절대적인 판단 기준은 될 수 없다(대법원 2020.12.24. 선고 2020두39297 판결). 업무시간이 52시간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야간 근무(22시~06시)가 포함되어 있거나, 휴일이 부족한 경우, 혹은 업무의 책임이 급격히 무거워진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최근 법원은 야간 근무에 대하여 주간 근무보다 훨씬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여 업무시간을 산정함으로써, 실질적인 과로 여부를 살피고 있다.
4. 감정노동의 특수성과 정신적 스트레스
과거의 과로사가 주로 제조업이나 건설업의 육체적 과부하에 집중되었다면, 현대의 과로사는 서비스업 종사자의 정신적 소진(Burn-out)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소위 '감정노동'은 고객의 폭언, 불합리한 요구, 그리고 이를 감내해야 하는 조직적 압박 속에서 심각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러한 감정노동은 자율신경계에 악영향을 미쳐 심근경색이나 뇌출혈과 같은 급성 혈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법원은 이제 감정노동의 특수성을 독립적인 과로 요소로 인정하고 있다. 근로자가 겪은 정서적 충격이나 스트레스의 정도가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섰다면, 육체적 업무시간이 다소 짧더라도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추세다. 이는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한 사법적 인식의 확장을 의미한다.
5. 여러 사업장을 이동하거나 단기 계약을 반복하는 경우
배달 라이더나 퀵서비스 기사와 같은 플랫폼 종사자, 혹은 여러 건설 현장을 옮겨 다니는 일용직 근로자의 경우 과로 여부를 판단하기가 더욱 복잡하다. 특정한 사업장에서의 근무 시간만으로는 과로 기준에 미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핵심은 '실질적인 업무의 총량'이다.
여러 개의 건설공사 사업장을 옮겨 다니며 근무한 근로자가 작업 중 질병에 걸린 경우 그 건설공사 사업장이 모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 대상이라면 당해 질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 그 근로자가 복수의 사용자 아래서 경험한 모든 업무를 포함시켜 판단의 자료로 삼아야 한다(대법원 2017.4.28. 선고 2016두56134 판결). 고용 형태가 파편화되어 있다는 이유로 근로자의 생명권 보호가 소홀해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적용된다.
6. 결론: 헌법적 가치로서의 노동자 생명 보호
과로사는 단순한 개인의 질병 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노동 구조가 낳은 비극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의 근로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가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의무로 직결된다.
과로사 사건의 심리에 있어서 사법적 판단은 단순히 의학적 소견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근로자가 처했던 구체적인 노동 환경, 그가 짊어졌던 책임의 무게, 그리고 감정적 소모까지 입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사인이 불분명하더라도 억울한 죽음이 방치되지 않도록 인과관계를 전향적으로 해석하고, 변화하는 노동 형태에 걸맞은 새로운 판단 기준을 수립해 나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법치주의의 실현이자 노동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다. 과로 없는 사회를 향한 제도적 보완과 더불어, 불행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법이 따뜻하고도 공정한 최후의 보루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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