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딸들의 반란”등에 의한 여성의 법적 지위 향상과 그 단상(斷想) ①
최평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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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딸들의 반란”이란 말은 한 번 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2003년 12월 18일 법률심인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공개변론을 연적이 있는데 그때 유력 조간신문 1면 톱으로 “딸들의 반란”이란 글씨가 대문짝 만하게 실렸다. 필자도 궁금해 하면서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용인 이씨 사맹공파 ◌◌종중(이하 종중)이 종중 소유 임야를 아파트 건설업체에 매각하여 받은 금액인 350억원을 종중원들에게 차등 분배하면서 시작되었다. 즉 성년 남자에게는 1억 5천만원, 며느리들에게는 3,300만원, 미성년 남자에게는 (연령에 따라) 1,650만원 ~ 5,500만원, 미출가 성년 여자에게는 3,300만원, 미성년의 여자에게는 (연령에 따라) 1,650만원 ~ 2,200만원을 각각 지급하였고, 출가한 여성들에게는 한 푼도 배분하지 아니하자 출가한 여성들이 격렬하게 항의하였고 이에 종중은 며느리들이 받은 3,300만원에 미치지 못하고 미성년 여자에게 분배하는 최상단인 2,200만씩을 뒤에 분배하였다. 이에 불만을 가진 종중의 후손인 출가한 여성 5명이 종중을 상대로 종중 규약에 종회의 회원자격을 성년의 남자로 제한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원고들 역시 중중의 종중원 자격이 있음을 확인하는 종회회원확인소송(종중원확인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참고로 종중이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제사 및 종원 상호간의 친목 등을 목적으로 하여 공동선조의 후손들로 구성되는 자연발생적인 관습상의 단체인데 우리 판례는 종중을 비법인 사단으로 보면서도 다른 비법인사단(예를 들어 직장·지역주택조합 등)과 달리 공동선조의 사망과 동시에 그 자손에 의하여 성립되는 것으로서 종중의 성립을 위하여 특별한 조직행위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특별하게 사용하는 명칭이나 서면화된 종중규약이 있어야 하거나 종중의 대표자가 선임되어 있는 등 조직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여 다른 비법인사단에 비하여 종중의 당사자능력을 광범위하고 느슨하게 인정하여 왔다. 이는 일본과는 다른 점이다. 민사소송법상의 당사자능력은 민법상의 권리능력에 대응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자연인이나 법인만이 권리능력을 가지고, 비법인사단은 민법상 권리능력은 인정되지 않지만, 소송수행 편의를 위하여 민법과 달리 비법인사단에 대하여 민사소송법상 당사자능력을 인정한다(소위 형식적 당사자 능력자)(민사소송법 제52조).
“딸들의 반란”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이미 패소가 예견된 것이나 다름이 없어 보였다. 왜냐하면 종래 대법원 판례는 "종중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 제사, 종원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한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이상의 남자를 종원으로 하여 구성되는 종족의 자연적 집단으로서 혈족 아닌 자나 여자는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태도를 일관되고 확고하게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예상대로 제1심과 제2심 법원(서울 고등법원)에서는 원고 여성들에게 패소판결이 선고되었다. 이에 원고 들은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상고이유에서 관습상의 종중의 구성원을 성년의 남자라고 단정하는 것은 헌법상의 (남녀) 평등의 원칙(양성평등의 원칙)에 반하고, 또한 개인의 존엄과 행복추구권도 침해한다고 주장하였다.
대법원은 성년의 여성도 과연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각계 각층의 의견을 들어 보기 위하여 사법사상 처음으로 공개변론을 열게 되었다. 그 당시 200여명의 방청객 들이 대법정을 가득 메울 만큼 남녀평등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었고,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로 진행되었다.
대법원에서 진행 된 공개변론에서 원고측 변호사는 “여성에 대해서만 종중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남녀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고, 피고측 변호사는 “종중의 본질은 공동선조에 대한 분묘수호와 제사를 모시는 것"이라며 출가한 여성이 사실상 종중원으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참고인으로 나온 성균관 전례연구위원장은 "우리나라는 부계혈통을 계승하는 부권중심제도의 국가이므로 구성원은 당연히 최고 조상을 중심으로 한 남자 후손들이라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하여 유교의 이념에서 나온 남존여비나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인식을 보여주었고, 반면에 법대 L교수는 "헌법상 양성평등의 원칙과 개정 가족법의 취지 및 변화하는 종중의 관습에 비춰볼 때 특별한 규정이 없는 종중의 경우 성년이상의 종원이면 남녀 구별없이 종회원의 자격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판례를 변경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다수의견은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남자만을 종중의 구성원으로 하고 여성은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종래의 관습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봉제사 등 종중의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출생에서 비롯되는 성별만에 의하여 생래적으로 부여하거나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것으로서, 변화된 우리의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아니하여 정당성과 합리성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종중 구성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만으로 제한하는 종래의 관습법은 우리나라의 헌법질서에 반하는 것이므로 이제 더 이상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판단하면서 원심법원의 판결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사건을 환송하였다. (이에 대하여는 별개의견과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있었다).
분쟁의 씨앗이 된 종중소유임야를 매각한 시점이 1999. 3. 고등법원에서 판결이 선고된 것이 2011. 12. 11. 대법원에서 공개변론을 연 것이 2003. 12. 18. 최종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판결이 선고된 날짜가 2005. 7. 21. 이었다. 이렇게 긴 여정이 이지만 민사소송에서는 처분권주의(處分權主義)가 적용되므로 비록 종중원은 성년 남자로 구성된다는 것이 부당하다고 하더라도 법원이 스스로 알아서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시정해 주지 않는다. 누군가가 법원의 판단을 요구하여야 구체적 사건성이 있어 법원이 판단을 해준다.
다만 돈과 관련된 분쟁이 아니였다면 이렇게 소송까지 하였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즉 돈이 안되는 일이면 종중의 구성원은 성년 남자만으로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여성들이 이렇게 소송을 제기했을까 하는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하튼 돈의 분배 문제로 시작한 소송이지만 출가한 여성 5명은 오래된 관습이라는 굴레를 깨고 남녀평등시대를 열어 저치는 아주 큰 일을 한 것은 분명하고 그 의미는 지대하다고 할 것이고, 결국 “딸들의 반란”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하고 정당한 요구를 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여기서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고유 의미의 종중 이외에 공동선조의 후손 중 일부에 의하여 인위적인 조직행위를 거쳐 성립된 종중유사단체라는 것이 있는데 대법원은 이러한 단체에 대해서도 당사자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종중유사단체는 비록 그 목적이나 기능이 고유 종중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공동선조의 후손 중 일부에 의하여 인위적인 조직행위를 거쳐 성립된 경우에는 사적 임의단체라는 점에서 고유종중과 그 성질을 달리하므로, 그러한 경우에는 사적 자치의 원칙 내지 결사의 자유에 따라 구성원의 자격이나 가입조건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어서 공동선조의 후손인 여성을 그 구성원에서 배제하고 있는 정관의 효력도 유효하다고 한다. 다만 대법원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고유의 종중이 아니라 그 구성원 중 일부만으로 범위를 제한한 종중유사단체의 성립을 인정하려면 고유종중이 소를 제기하는데 필요한 여러 절차(종중원 확정, 종중총회소집, 총회결의, 대표자 선임 등)를 우회하거나 특정 종중원을 배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단체의 실질이 고유 종중인데도 종중 유사단단체임을 표방하였다고 볼 여지가 없는지 그 성격을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한다.
한편 부동산 실명법(약칭) 제8조 제1항에서 말하는 종중에 대한 특례규정은 고유종중만을 말하고 종중유사단체는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최평오 교수
고려대학교 법학과 박사과정 수료(민사소송법 전공)
한국 민사소송법학회, 민사집행법학회, 도산법학회 회원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민사절차법연구센터 전임 연구원
한빛변리사학원 민사소송법 전임교수
특허청 및 특허심판원 민사소송법 전임교수(2008.3∼20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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