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동안 법원에 근무하다가 개업한 뒤 매일 이러저러한 사연을 안고 찾아오는 상담객을 많이 만나지만, 가급적 검찰청에 고소하거나 법원에 소송제기를 만류하고 있다. 이런 내 처사에 직원들은 수임사건이 줄어든다며 불만이지만, 법은 최후에 찾아야 할 무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법원에 근무하는 동안 고작 1~2백만 원의 금전 피해자가 민사소송이 아닌 사기죄로 형사고소를 하겠다는 것이나 피해자라며 상습적으로 수 십 건씩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악덕 민원인들을 익히 보아왔던 터여서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크게 믿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개업 후 반년이 지날 무렵부터는 아예 형사사건은 사양하고 있다. 사실 변호사가 아닌 법무사로서는 형사사건에 고소장이나 구속적부심신청 혹은 진정서나 탄원서를 작성해주는 정도이고, 그나마 법원에 제출하는 소장이나 각종 신청서 등과 비교할 때 그다지 결과도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1년쯤 전 어느 날, 30대 중반의 예쁘장한 여성이 찾아와서 휴대폰에 남편과 낯모르는 여성이 완전 나체로 뒤에서 껴안고 있는 사진을 제시하면서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하겠다고 상담 했다. 대형거울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 같은 전신 모습이었는데, 그 사진을 당신이 찍었는지 아니면 남편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을 복사한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낯모르는 사람이 자기 휴대폰으로 보내온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사진은 남편이 아닌 상대방 여성에게서 보낸 것이 분명한데, 불륜을 저지른 남편을 칭찬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 상대방이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만일, 당신이 어떤 남자와 밀회를 한다고 할 때 상대방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그의 부인에게 비밀로 할 것인지 이런 사진을 보낼 것인지 생각해보라며, 이것은 불륜을 한 남편에게 금전을 요구하다가 거절하니 가정파탄을 초래하려는 심사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편과 진정으로 이혼할 의사가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그 발신자에게 ‘남자가 얼마나 못났으면 바람 한번 못 피우느냐? 당신이 보내준 사진을 근거로 내 남편을 유혹한 당신을 간통죄로 고소하겠다’고 역습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만일 발신자 전화를 알지 못한다면 남편에게 물어서라도 그렇게 문자를 보내라고 했다. 그러면 남편도 자신의 잘못을 빌면서 아내의 넓은 아량을 고마워할 것이라고 하니, 그녀는 지금까지 고생고생하며 재산을 일궜고 남편과 부부사이도 원만하고 자녀도 공부 잘하고 있다며 반신반의 하면서 돌아가더니, 며칠 후 고맙다며 음료수 한 상자를 사들고 온 적이 있었다.
마침 1년 전 오늘인 2015년 2월 26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간통죄를 위헌 결정하여 간통죄가 폐지된 날이다.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후 간통죄는 형법상 범죄일 뿐 아니라 민법상 이혼사유가 되었지만(제840조 1항), 세계적인 추세는 개인사생활인 간통을 국가가 과도하게 강제할 문제는 아니라며 간통죄 폐지가 대세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통죄 존폐문제와 위헌성이 오랫동안 논란을 벌여오다가 1990년 9월 간통죄의 위헌여부가 헌법재판소에서 합헌결정을 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1992년 4월 법무부가 간통죄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형법개정시안을 마련· 입법예고함에 따라서 간통죄 위헌결정은 이미 예상됐는데, 2015년 헌법재판소에서도 간통죄 위헌결정에서 “가정과 혼인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에 맡겨야지, 형벌을 통해 타율로 강제할 수 없다”며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봤다.
물론 아직까지도 간통죄 폐지가 옳은 결정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지만 간통을 합법화한 것은 아니어서 가령, 상간자를 집안으로 불러서 간통했을 경우에 배우자는 그 상간자를 주거침입죄로 고소할 수 있고 이혼소송에서 위자료의 인상을 하는 등 다른 형태의 응징도 가능하다. 또 제도적으로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 사이에서 상대방의 외도로 이혼을 하게 될 경우에 재산분할과 자녀 양육권 문제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이른바 ‘혼전계약서 작성’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간통죄 폐지 이후 풍속도는 부정행위를 저지른 배우자가 전업주부인 경우에는 소유 재산이 거의 없어서 손해배상 청구로는 효과적인 응징이 어렵고, 또 소득이 있는 남편이나 아내들도 재산을 빼돌려 위자료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렇지만, 간통죄 폐지로 기혼자들이 불륜을 쉽게 저질러 이혼이 급증할 것이란 우려와 달리 지난 1년 동안 접수된 이혼 소송은 39,372건으로 2014년도의 41,050건 보다 오히려 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재판을 거치지 않는 협의이혼도 2014년 113,388건보다 3.5% 줄어든 109,395건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간통죄 폐지 이전에는 사법기관이 불륜 증거수집에 관여(?)했으나 이제는 소송을 건 당사자가 배우자의 외도를 입증할 책임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이유도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또, 법을 잘 알지 못해서 배우자의 간통 사실을 인쇄물이나 SNS 등에 올리며 망신을 주려고 하다가 오히려 명예훼손죄의 가해자로 몰리는 경우도 생겼다.
며칠 전 A사장이 찾아와서 우연히 한 이혼녀를 알게 되어 사귀면서 적잖은 금전지원을 주었는데,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기에 그만 만나자고 했더니 ‘자기는 잃을 것이 없다며 간통사실을 널리 퍼뜨리겠다’고 협박해서 고민이라고 상의 했다. 그래서 최근 방송인으로서 인기를 얻던 모 변호사가 불륜녀로 지목된 상대방의 남편으로부터 형사고소가 아닌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사실을 예로 들면서 만일 그럴 기미가 보인다면 아내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인쇄물이나 SNS를 증거로 아내가 당신을 간통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고 말해주라고 일러주었다. 또, 아내에게 알리기 전이라도 아내의 동의를 얻어서 아내의 명의로 그녀의 은행계좌를 가압류해두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일러주었다. 이래저래 법무사는 형사사건에는 관여하기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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