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낙준 변호사 (백준법률사무소)
채무자가 채무 면탈 목적으로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다고 볼 수 있는 사례
1.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최낙준 변호사입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사건은 대여금반환채무를 지고 있는 회사가 이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경우, 채권자가 새로운 회사를 상대로 대여금반환청구를 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입니다.
‘법인법 부인론’ 자체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주제로 보이지만, 실제 소송에서 이를 주장·입증하는 것은 상당히 까다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피고 회사의 설립이 ‘법인격 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는데(필자 사무실은 원고인 채권자 측을 대리했습니다), 법인격 남용이 문제될 수 있는 하나의 사례로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 이 사건 사실관계
가.우선 사건의 개요를 살펴보면, 갑이 ‘을’법인을 사실상 운영하는 홍**의 요청을 받고 ‘을’법인에게 약 3억 원을 대여해주었는데, ‘을’법인의 재정 상황이 악화되면서 변제기일에 위 대여금을 변제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갑은 위 대여금을 받기 위해 ‘을’법인의 자산을 살펴보던 중 ‘을’법인의 모든 자산이 ‘정’회사에게 모두 이전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갑은 ‘을’법인이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정’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보고, ‘정’회사를 상대로 ‘을’회사가 부담하는 대여금반환채무의 이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나. 갑은 아래와 같은 사실관계를 통해‘을’법인이 갑에 대한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정’회사를 설립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 ‘을’법인은 공장부지 및 공장 건물로 구성된 부동산, 각종 기계설비 등을 소유하며 여기에서 유기질비료의 제조, 판매 등 사업을 영위하였는데, 이 부동산, 기계시설 등은 홍**이 대부분 조달한 자금으로 마련하였고 그 운영 또한 홍**이 조달한 자금에 의존하는 등 사실상 홍**의 개인기업이나 마찬가지 법인이었습니다.
‘을’법인은 운영자금이 추가로 필요하자, 갑으로부터 3억 원을 차용하였는데, 당시 ‘을’법인의 부채는 자산 가액을 상당히 초과하는 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을’법인 소유의 부동산에 관하여 채권최고액 10억 원의 근저당권을 취득한 00은행이 위 부동산에 대한 임의경매개시결정을 얻어 경매실행에 나서자, ‘을’법인의 사주인 홍**은 ‘을’법인의 근저당채무액을 변제하는 대신 그 기회를 이용하여 제3자를 내세워 위 부동산을 매수(경락)하고 이와 함께 ‘을’법인의 각종 기계시설도 양도받게 하여 그 제3자 이름으로 ‘을’법인의 사업을 사실상 계속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즉, ‘을’법인에 대하여는 채무만을 남기고 형해화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2) 위 부동산 매수(경락)대금를 위해 홍**은 금융기관 및 사채업자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한 다음 위 경매절차에서 위 부동산을 제3자인 박@@ 명의로 매수(낙찰)하고 그 매수대금(낙찰대금)을 박@@ 명의로 납입하게 하여, 결국 박@@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칠 수 있도록 했습니다.
(3) 한편 홍**은 위 부동산 경락에 앞서 박@@ 명의를 빌려 ‘병’이라는 상호의 개인사업체를 창업한 다음 ‘을’법인의 영업권, 생산시설, 장비 등 일체를 위 박@@에게 양도하는 조치를 하였습니다.
홍**은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병’이라는 상호 아래 종전 ‘을’법인의 사업장소에서 ‘을’법인의 부동산, 시설뿐만 아니라 인력까지 그대로 승계하여 ‘을’법인의 사업을 계속하는데 성공하자, 약 2년 후 자신의 장남과 차남 및 박@@ 등을 내세워 ‘정’회사(주식회사)라는 상호로 회사를 설립, 등기하면서 대표이사를 박@@, 이사를 자신의 장남, 감사를 자신의 차남으로 각 선임, 등기하였습니다.
이후 ‘정’회사는 위 박@@과 ‘병’(박@@의 개입사업체)의 사업 일체를 ‘정’회사 앞으로 포괄양도하는 내용의 사업양도계약을 체결하였고, 이에 따라 ‘을’법인의 종전사업은 ‘정’회사가 이를 그대로 승계하여 계속하였습니다(위 사업의 승계는 모두 대가의 지급 없이 무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즉 갑은, ‘을’법인이 갑에 대한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정’회사를 설립하여 그 자산을 모두 이전한 것이고, 이는 회사제도를 남용한 것이므로 ‘정’회사는 갑에게 ‘을’법인의 갑에 대한 채무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보고, ‘정’회사를 피고로 대여금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3. 쟁점 및 법원의 판결
가. 기존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하였다면, 신설회사의 설립은 기존회사의 채무면탈이라는 위법한 목적달성을 위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한 것이므로, 기존회사의 채권자에 대하여 위 두 회사가 별개의 법인격을 갖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 할 것이어서 기존회사의 채권자는 위 두 회사 어느 쪽에 대하여서도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06. 7. 13. 선고 2004다36130 판결 참조). 이 사건 원고 갑이‘을’법인은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정’회사를 설립했다는 사실을 주장·입증할 수 있다면 ‘정’회사는 ‘을’회사가 부담하는 갑에 대한 이 사건 대여금반환채무에 대해 변제책임이 인정될 것입니다.
나.제1심은, ‘정’회사와 ‘을’법인이 기업의 형태·내용이 같고 홍**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는 회사라는 사정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박@@이 경매절차에서 ‘을’법인의 이 사건 부동산을 적법하게 매수하였고 그 매수 대금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차용하여 마련하였다는 점, 박@@이 ‘을’법인으로부터 생산시설 등을 매수할 당시 위 생산시설 등에 대한 평가가 부당하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 등을 종합하여, ‘정’회사가 ‘을’법인의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원고 갑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 항소심은, 위 제1심의 판단과 다르게, 홍**이 ‘을’회사의 채무 누적으로 이 사건 부동산에 임의경매절차가 개시되자 박@@에게 부탁하여 이 사건 부동산을 담보로 박@@ 명의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금원을 차용하도록 하여 매수(낙찰)대금을 마련했고, 특히 박@@이 별다른 재산이 없어 궁극적으로 위 채무는 이 사건 부동산 등을 이전받은 피고 ‘정’회사가 담보제공자로서 그 변제책임을 이행할 수 밖에 없다는 점 등을 종합하여, 피고 ‘정’회사는 ‘을’법인의 자산을 이전받아 ‘을’법인의 기존채권자들에 대한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을’법인과 홍**에 의하여 설립되었다고 보고,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위 항소심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4. 마무리하며
특정 법인의 부채가 자산 가액을 초과하는 상황에서 부채만을 그대로 존속시킨 채 그 소유의 부동산, 생산시설 등 자산 일체를 제3회사에게 양도하고 사업까지 중단함으로써 법인으로서의 실체가 없게 된 경우, 즉 형해화된 경우에는 제3회사의 설립은 채무 면탈의 목적이 있는 것으로 봄이 경험칙상 상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경험칙상 상당하다고 보여도 소송에서 이를 주장·입증하여 법원을 설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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