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낙준 변호사 (백준법률사무소)>
1.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최낙준 변호사입니다. 피상속인이 생전에 제3자에게 자신이 사망하면 자신 소유의 재산 일부를 주겠다고 약속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사인증여라고 합니다. 피상속인이 이러한 약속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이를 문서화하기도 하지만, 작성된 문서 내용이 불분명하거나 작성 당시 피상속인의 건강상태가 좋지 못했고 한다면 피상속인 사망 후 사인증여를 두고 다툼이 발생할 여지도 있습니다.
소개해 드릴 사건은 제3자가 피상속인의 사인증여를 이유로 공동상속인들에게 증여금 청구를 하면서 분쟁이 발생한 사건입니다. 사인증여란 용어가 조금은 낯설 수 있지만, 이 사건을 통해 사인증여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이 사건 사실관계에 대하여
가. 피상속인은 2018. 6. 1. 장남과 자신의 친동생 갑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장남이 자신을 간병·보호해 주면서 이에 소요되는 각종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자신의 예금채권 중 2억 원을 장남에게 주기로 하고, 이와 함께 갑에게는 아무런 조건 없이 5천만 원을 주기로 약속하면서, 이러한 내용을 기재한 사실확인서(이하, ‘2018. 6. 1.자 사실확인서’)를 작성했습니다.
한편, 이 사실확인서에는 장남과 갑이 사실확인서 내용에 반하는 일체의 주장을 하거나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이 확인서 하단에는 피상속인, 장남, 갑 등 3명의 성명과 함께 서명, 날인, 무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피상속인의 공동상속인들 중 장남만이 위 사실확인서 작성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이후 피상속인은 같은 달 3. 위 사실확인서 내용대로 장남 앞으로 2억 원을, 갑 앞으로 5천만 원을 각 송금했습니다.
나. 2018. 12.경 피상속인이 사망하자, 장남을 포함한 공동상속인들은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을 법정상속분에 따라 공평하게 나누기로 합의하였습니다.
하지만 피상속인의 친동생 갑이 2019. 2.경 피상속인의 공동상속인들을 상대로 증여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고 나왔는데, 그 근거는 2018. 7. 1. 피상속인과 갑은 피상속인 명의의 00은행 계좌에 입금된 예금 중 절반을 갑에게 준다는 내용의 사인증여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갑은 위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2018. 7. 1.자 사실확인서’를 법원에 제출했는데, 위 확인서 하단에 망인의 성명이 기재되어 있고, 서명, 날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공동상속인들은 이 소송을 통해 ‘2018. 7. 1.자 사실확인서’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3. 이 사건에서 다투어진 내용에 대하여
가. (1) 우선, 피고 측(필자는 피고들의 대리인들 중 한명이었음)은 이 사건 소는 부제소 합의에 반하여 제기된 것으로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2018. 6. 1.자 사실확인서’는 장남과 갑이 이 사실확인서 내용에 반하는 일체의 주장 또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부제소합의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한 것이었습니다.
(2) 부제소합의가 존재하는지에 관하여 당사자의 의사를 해석하는 방법에 대하여 대법원은 “부제소합의는 소송당사자에게 헌법상 보장된 재판청구권의 포기와 같은 중대한 소송법상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 합의의 존부 판단에 따라 당사자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갈리게 되는 소송행위에 관한 당사자의 의사를 해석할 때는 표시된 문언의 내용이 불분명하여 당사자의 의사해석에 관한 주장이 대립할 소지가 있고 나아가 당사자의 의사를 참작한 객관적·합리적 의사해석과 외부로 표시된 행위에 의하여 추단되는 당사자의 의사조차도 불분명하다면, 가급적 소극적 입장에서 그러한 합의의 존재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9. 8. 14. 선고 2017다217151 판결 참조). 부제소합의 여부가 불분명하다면 쉽사리 그 합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피고 측의 본안전 항변에 대해 이 사건 제1심은 ‘2018. 6. 1.자 사실확인서’ 작성에는 이 사건 피고들(공동상속인들) 중 장남만이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피상속인이 이 사실확인서 작성 당시 향후 피상속인이 또다른 처분문서를 작성하거나 원고 갑 주장과 같은 사인증여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상황을 예상할 수 있는 상태라고 보이는데 이러한 상태에서 피상속인이 부제소 합의를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부제소합의가 존재한다는 피고 측 주장을 배척하였습니다. 이러한 제1심의 판단은 ‘2018. 6. 1.자 사실확인서’ 와 다른 내용이 기재된 ‘2018. 7. 1.자 사실확인서’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나. (1) 피고 측은 본안과 관련해서, 원고 갑이 제출한 2018. 7. 1.자 사실확인서의 진정성립을 다투었습니다. 피고 측은, 원고 갑이 제출한 사실확인서가 작성될 당시 피상속인의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고 치매에 의해 인지능력 또한 매우 저하된 상태였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밝히면서 이 사실확인서가 피상속인의 의사에 기하여 진실로 작성된 것인지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변론과정에서는 피상속인의 인지능력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었는지가 주된 쟁점으로 다투어졌습니다.
(2) 문서의 진정성립을 누가 입증해야 하는지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처분문서는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그 기재 내용을 부정할 만한 분명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반증이 없는 이상 문서의 기재 내용에 따른 의사표시의 존재 및 내용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대법원 2002. 9. 6. 선고 2002다34666 판결 참조). 문서의 진정성립의 입증책임에 대해 대법원은 “사문서에 있어서 그 진정성립을 상대방이 다툴 경우에는 문서 제출자가 이를 증명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20. 8. 27. 2020다224882 판결 참조).
만약 해당 문서가 제출자에 의하여 작성자로 주장되는 자의 의사에 기하여 작성된 것임이 밝혀질 경우, 그 다음 문서가 요증사실의 증거로서 얼마나 유용하느냐에 관한 실질적 증명력을 판단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대법원 2002. 8. 23. 선고 2000다66133 판결 참조).
(3) 이 사건에서 원고의 청구는 진정성립이 증명되지 않는 사실확인서에 근거한 것이라는 피고 측 주장에 대해, 제1심은 ‘2018. 7. 1.자 사실확인서’ 작성 이전 피상속인은 ‘파킨슨 병, 상세불명의 치매’의 병명으로 진단받은 바 있고, 그 사이 피상속인의 증상이 호전되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으므로 피상속인이 이 사실확인서에 기재된 사인증여계약의 법률적인 의미나 효과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의사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이 사실확인서는 종전 ‘2018. 6. 1.자 사실확인서’ 작성이후 불과 한 달이 지난 후 작성되었고, 그 내용은 위 ‘2018. 6. 1.자 사실확인서’에서 정한 바와 상충되는바, 원고 갑은 피상속인이 어떠한 경위로 간병인이자 보호자였던 장남을 배제한 채 원고와만 이 사건 사실확인서를 작성하게 되었는지에 관하여 납득할 만한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이 사건 사실확인서가 망인의 의사에 의하여 작성되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보면서 이 사실확인서를 근거로 한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모든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후 원고가 항소하여 진행된 항소심에서도 제1심 판단과 동일한 판단을 했습니다.
4. 마무리하며
이 사건에서 피고 측이 승소할 수 있었던 것은 법원이 ‘2018. 7. 1.자 사실확인서’작성 당시 피상속인의 인지능력이 매우 좋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한 결과라고 보입니다. 이 사건 피상속인이 판단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위 사실확인서를 작성한 이상 이 확인서의 진정성립이 부정되는 것이 당연한 결과입니다. 다만, 이 사건 피상속인과 같이 인지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경우가 아니라 인지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재산처분의 자유를 어느 선까지 존중하고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이 드는 문제입니다.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피앤피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