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단계 변호인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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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호 변호사 |
고소란 범죄의 피해자나 피해자와 일정한 관계에 있는 고소권자가 수사기관에 대하여 범죄사실을 신고하여 범인의 처벌을 구하는 의사표시를 의미한다. 우선 수사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는 연락을 받는 경우에는 고소사건인 경우 경찰서 민원 포탈을 이용하여 정보공개청구를 통하여 고소사실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뢰인에게 정보공개를 통하여 고소사실의 내용을 확인하여 오도록 조치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말로 듣는 것과 문자로 된 서면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범죄사실에 대한 의뢰인의 입장을 듣고, 고소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고소인측에서 제출한 입증자료를 검토하여야 한다. 정보공개단계에서는 고소인이 제출한 자료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사안의 개요를 파악한 후 의견서를 작성하면서 변론의 방향을 세워야 한다. 특사경 중에서는 정보공개제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고소장을 열람 또는 복사하여 주지 않는 경우도 가끔 있다. 정보공개제도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고소장의 앞면에 있는 간단한 범죄사실만 복사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소인이 어떠한 증거자료를 제출하였는지, 수사진행과정에서 추가 고소장이 제출되었는지 여부는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물론 사건이 기소된 이후에는 수사목록 열람 등사(형소법 제266조의3 제5항)를 거쳐 수사의 진행상황을 시간순으로 알 수 있다.
변호사는 사건의 선임단계에서 광범위한 자료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의뢰인의 말만 신뢰할 경우 수사진행 단계에 따라 새로운(불리한) 자료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말은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의뢰인의 말을 믿었다가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다른 사실관계가 드러나는 경우에 방어하기가 쉽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변호인이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사실을 주장하였다가 허위임이 밝혀지면, 그 주장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어 유리한 처분을 받기 어렵게 된다. 프라이버시의 침해가 적다면 의뢰인의 건강보험 내역 등을 확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수사의 방향을 잡아가는 초동수사에서는 초동수사를 담당한 수사관을 설득하여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뢰인이 실체적 진실을 사실대로 진술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실체적 진실이 의뢰인에게 불리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의뢰인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이 명백하다고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체적 진실을 넘어서는 무리한 주장은 금물이다. 주장을 하는 경우에는 주장입증 공통의 원칙에 따라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자료를 제출하여야 한다. 초동수사에서 불리한 방향으로 수사가 진행되면, 사후에 이를 뒤집기 쉽지 않다. 따라서 초동수사단계에서 적극적 대응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즉 변호인의 효율적인 조력(effective assistance)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피의자신문조서가 작성되면, 그 동안의 수사진행 상황에 따라 실체적 내용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한다. 이 경우에 수사관의 시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기소가 된 경우라면 공소장일본주의에 따라서 기록을 읽지 않고 재판에 임하는 재판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선행적으로 적극적인 의견서를 제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로스쿨을 수료한 신임 변호사들은 범죄사실 기재례를 반드시 학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범죄의 성립에 필요한 구성요건을 범죄사실 기재례에 반드시 기재하여야 입체적인 의견서가 완성될 수 있다.
피의자에 대한 변호인은 사안의 개요, 사실관계(추정), 법률관계, 결론(불송치 또는 불기소 요망, 선처요망) 등의 순서로 의견서를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소인에 대한 변호인은 범죄사실, 필요한 경우 법률조문, 당사자 관계, 사건의 경위, 법률관계, 수사요망 사항(상세히), 결론(엄벌 요망)을 기재한 후 고소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충분히 확보(참고인 진술서, 통화내역, 금전거래 내역, 장부, 사진 등)하여 제출한다.
피의자 인적사항을 모르고 휴대전화 번호만 아는 경우에는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요청부터 시작하게 된다. 수사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요리를 잘 해서 숟가락으로 떠먹기만 하면 되도록 자료를 수집하는 경우에는 성공률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이목을 끄는 사건도 아니고, 금전적 민사관계에 유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사자 이외의 제3자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없는 과거의 사실을 확정지어야 하는 사건의 경우에 열정적인 수사관을 만나지 않으면 제대로 진행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수사관 ‘복’이 있어야 사건이 잘 풀리게 된다.
불기소 처분을 받거나 불송치 결정을 받게 되면, 검찰항고 또는 이의신청을 하여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의견서를 작성함에 있어 원처분의 요지, 처분의 부당성(사실관계, 법률관계), 결론(검사의 처분에 대하여는 재기수사, 직접경정, 공소제기 또는 경찰의 불송치에 대하여는 재수사요청)을 기재한다. 이의신청에는 기한의 제한이 없다.
수사는 생물과 같아서 수사과정에서 많은 일이 발생한다. 프라이버시가 침해되기도 하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신속한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불면의 밤을 지새우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인권친화적 수사를 하겠다는 기관도 있으나, 이는 적법절차를 준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하여야 할 것일 뿐 기본적으로 수사는 수사대상자 또는 수사객체의 인권을 침해하는 ‘최소한의 악’이라 할 수 있다. 수사는 사회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법률의 수권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기본권 침해행위인 것이다. 형사절차의 이상은 적법절차준수와 실체적진실발견이라는 양 축을 이상으로 하고 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의 도래를 현실의 세상에서 기대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본다.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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