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정치적 무관심”
▲최창호 변호사 |
지방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다수인이 왕래하는 길에 서서 명함을 나누어주는 후보자의 자세는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대부분 명함을 받는 유권자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길을 걸어간다. 이러한 선거와 달리 대통령 선거에서는 후보자를 보기도 어렵다. 후보자의 지지를 요청하는 스피커 소리가 간혹 들릴 뿐이다. 텔레비전의 화면을 보면 사거리에 서서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는 후보자도 간혹 있다. 선거기간이 되니 허리를 굽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 통상적으로는 주민의 대표라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기도 어려운 것이 실상이다. 누구든지 당선이 되는 순간 입장이 바뀐다. 임기가 만료될 때까지는 특별히 제약을 하기도 어렵다. 국회의원의 경우에는 특정 지역을 터잡아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 되는 구도 하에서는 누가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헌법상 국민소환제도는 도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고, 선출직인 지방자치단체장 등에 대한 주민소환제도가 있을 따름이다. 걸출한 인물의 권력을 꺾기 위한 수단이나 당파 싸움의 무기로 남용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리스에서 사용된 도편추방(陶片追放, ostrakismos) 제도를 떠올려 볼 뿐이다.
우리는 플라톤과 같은 인물이 백마를 타고 와서 우리를 곤궁한 삶에서 구제해줄 것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선거가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간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한다는 생각을 하면 소중한 한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대세에 지장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선거는 다가오고 있지만, 많은 이들의 마음은 이미 멀어져 있거나 이미 결정되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이제 단순한 개인적 선택이 아닌,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드는 구조적 위협으로 다가온다고 볼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안티스테네스의 우화에 따르면 동물의 회의석상에서 열변을 토하며 모든 동물들의 평등권을 주장한 토끼들에게 사자들이 ‘너희들의 발톱과 이빨을 보여다오!“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구체적 방안을 마련한 후보를 선택하여야 한다. 어린 시절에는 투표를 통하여 나라의 운명이 바뀌고, 거리의 외침이 정치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과 정치가 나와는 무관한 ‘그들만의 리그’로 인식되는 순간 정치적 무관심은 주권자인 우리의 권리를 잠식하게 된다. 무관심의 악순환이 되기도 한다.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결코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없다. 국민 모두의 관심과 참여, 그리고 투표로 유지되는 것이다. 단순한 침묵은 변화를 불러오지 못한다. 진정한 변화는 관심으로부터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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